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생애 첫 가족 라이딩 한국을 다녀온다고 3주를 빼먹는 바람에 동준이한테 배정된 BC 주정부의 오티즘 펀드가 좀 남았다며, 매주말 수영만 하기보다는 자전거를 한 번 태워보면 어떻겠느냐고 아내가 내게 의향을 물었다. 펀드는 주로 동준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는 보조교사의 급료로 쓰였다. 동준이가 다니는 학교의 보조교사를 학교 밖에서도 커뮤니티 센터의 수영장에 가거나 운동을 시키는 데 딸려 보냈다. 보조교사는 '노벨'이라는 이름의 스리랑카 출신 남성인데, 키는 나보다 작지만 라디오 아나운서 뺨치는 목소리에, 차분하고 침착한 성정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동준이도 잘 따른다. 장거리 달리기를 이미 토요일에 마친 터여서, 일요일이 비었다. 근처 '시모어 보전구역' (Lower Seymour Conservation Reserve, "LS.. 더보기
2016년 보스톤 마라톤 "Accepted..." 무슨 합격 통지서라도 받은 기분이다. 내년으로 120회를 맞는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내 지원서가, 커트라인을 통과해 수용되었다는 이메일을 오늘 받은 것이다. 내 나이대 (45-49세)의 보스톤 마라톤 참가 자격 하한선은 3시간25분이다. 보스톤 마라톤이 인정하는 다른 마라톤 대회에서 그 시간 안에 들면, 일단 등록을 할 자격이 생긴다. 만약 3시간24분30초, 3시간24분45초 등과 같이, 그 시간대에 턱걸이한 사람들이 많으면 제한 시간 안에 들어와 놓고도 참가 자격을 얻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2년전 보스톤 마라톤 대회중 테러리스트의 폭탄 공격이 발생한 이후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서, 그런 불행한 일이 더 많아졌다는 보도를 접했다. 보스톤 마라톤에 참가 자격.. 더보기
알차게 보낸 주말 어떻게 주말을 보내야 '알차게 보냈다'라는 평가를 받는가? 나만의 사전에 따르면, 뭔가 집안일을 하나 둘쯤 해서 아내에게 생색을 낼 만한 '표'가 나야 한다. 내가 얼마나 먼 거리를 뛰었느냐, 자전거를 탔느냐 따위는 '알차게 보냈다'라는 판단의 기준에 들기는 하지만 가산점이 거의 없다. 우선순위에서도 한참 밀린다. 점수를 많이 따려면 뭐든 집안일을 해야 한다. 일요일 아침에 뛰다가 만난 새들. 템플턴 고등학교 앞 보도에 조성된 장식물인데 유난히 올빼미가 많았다. 아마 올빼미가, 그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혜나 지식을 상징하는 것처럼 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이미지 관리 면에서는 올빼미가 가장 남는 장사를 한 새다. 각설하고, 그런 기준에 따르면 이번 주말은 퍽 알찼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 더보기
켈빈 문 로 '슬픈기사가 아닌데도 눈물까지 났다. 추석이라서 그랬나?' 페이스북의 절친 - 이런 표현이 가당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 중 한 분이 이런 짤막한 소갯글과 함께 아래 기사를 공유했다. '배우가 공연을 망친 자폐증 어린이를 도리어 옹호했다'라는 내용이다. 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폐증'으로 흔히 알려진 오티즘 (Autism) 이야기만 나오면 촉각이 곤두서고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당장 해당 기사를 읽어보았다 (덧붙이자면 'Autism'은 이 증상 자체의 변주 범위가 워낙 넓고 복잡해서, 그러면서도 제대로 진단할 수 있는 역량이 아직 안돼서, Autism Spectrum Disorder'라고 'Spectrum'을 넣는다). ABC뉴스 기사. 브로드웨이 뮤지컬.. 더보기
늙어서 더 멋진 배우들 '늙어서도 멋진 배우', 라고 하면 말이 되지만 '늙어서 도리어 더 멋있어진 배우'라는 게 말이 되나? 나이 든다는 것, 늙는다는 것은, 어느 나라의 문화를 들여다보든 ‘추하다’거나 ‘약하다’, ‘슬프다’와 같은 이미지와 대체로 동일시되는 마당 아닌가. 늙을수록 더 현명해진다거나,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는 식의 말이나 캠페인은, 역설적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거나, 그런 일이 드물기 때문이라고, 다소 거칠게 말한다면, 단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넷플릭스로 케빈 코스트너를 보면서,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디즈니의 교훈성 다분한 스포츠 영화 ‘맥팔랜드, 미국’ (McFarland, USA, 2015년)를 보면서, ‘아, 늙어서, 늙어가면서, 도리어 젊은 시절보다 더 멋있.. 더보기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가 돌아왔다. 얼굴이 별로 좋지 않다. 피로와 슬픔이 뒤범벅 된 얼굴이 어찌 좋을 수 있으랴… 아내의 공항 도착 시간이 12시30분인데 성준이를 학교에서 데려와야 하는 시간이 2시40분, 동준이의 스쿨버스가 집에 들르는 시간이 그 직후다. 아내를 공항으로 데리러 나가기가 어정쩡했다. 공항까지 가는, 혹은 공항에서 집까지 오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안팎을 잡는데, 아내가 비행기에서 내려 세관을 통과해서 공항 밖까지 나오는 시간은 종잡기가 어렵다. 여기에 부친 짐을 찾아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따라서 큰 짐만 없다면 공항에서 전철 타고 워터프런트 역까지 와서 시버스로 노쓰밴으로 오는 게 더 낫겠다는 계산이었다. 2시30분에 시버스가 론스데일 부두에 닿았고, 곧 아내가 나왔다. 엇, 그런데 제법 큰 이.. 더보기
국민문화예술훈장 맨 아래 박아놓은 유튜브 비디오를 본 것은 지난 주다. 다른 채널로 우연히, 유명 소설가 줌파 라히리 (Jhumpa Lahiri)가 미국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 훈장'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본 것인데, 그 뒤에도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아 블로그로 포스팅 한다. 그 자리에서 오바마가 했다는 말이 인용문으로 나왔는데 절로 웃음이 피식 나오는 말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전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우리 위대한 시인 중 한 분인 에밀리 디킨슨은 이런 말을 했죠. "진실은 너무나 드문 것이어서, 그것을 말하는 것은 한없이 즐겁다." 진실은 너무나 드물어서, 그것을 말하는 것이 즐겁다 ... 이건 특히 워싱턴 정가에 딱 들어맞는 말이죠. (웃음.) 우리가 오늘 치하하는 여러분, 국민문화예술훈장의 수혜.. 더보기
이젠 맥주도 끊는 게 낫겠다 세계 1, 2위의 두 맥주 회사가 합병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세계 제1위의 AB InBev는 버드와이저, 코로나, 스텔라 아르투아, 벡스, 호가든 같은 유명 브랜드를 거느린 벨기에의 다국적 기업 (2014년 매출액 약 55조원)이고, SABMiller는 그롤쉬, 밀러, 페로니, 필스너 우르퀠 같은 브랜드를 품은 영국의 다국적 기업 (2014년 매출액 약 26조원)이다. 거느린 브랜드들의 다양성에서 눈치챌 수 있다시피, 이들 기업 자체가 이미 여러 기업들의 인수 합병체다.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두 다국적 기업이 또 하나로 합치겠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사에서 보듯 둘이 하나가 되면 전세계 맥주업계 수익의 절반을 점유하게 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들의 합병이 말이 된다고 긍정적으로 평했지만, 그렇.. 더보기
로티세리 치킨 나는 살림에 서툴다. 그 살림 중 '요리'라는 대목에 초점을 맞춘다면 서툴다는 표현조차 아까울 정도로 초라하다. 결혼하기 전까지 10년 넘게 싱글로 객지 생활을 했지만 스스로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조차 없다. 그 게으름, 그 호기심 결핍의 대가를,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톡톡히 치른다. 월요일 새벽녘, 문득 잠이 깼다. 성준이 점심을 뭘로 싸지? 가장 먼저 떠오른 물음이었다. 동준이는 보조 교사가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사주기로 했으니 그렇다치고, 성준이는 뭘 싸줘야 하나? 따지고 보면 별일도 아닌데 그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다음 저녁은, 내일 아침은, 점심은, 저녁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젠장... 아내가 꼼꼼히 메모해 둔 내용을 본다. 아내가 부재한 나흘 동안.. 더보기
부음 아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저 짧은 글 안에, 얼마나 많은,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을까 짐작하려 애써 보지만 부질 없다. 토요일 새벽 두 시였나, 세 시였나? 아내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국에서 온 전화다. 이민 온 지 어지간히 시간이 지난 다음이라 캐나다와 한국 간의 시차를 잘 알기 때문에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가 이런 시간에 전화가 걸어 올 일은 거의 없다. 뭔가 비상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니나다를까, 장인 어른의 부음 소식. 아내가 흑, 하고 흐느낀다. 지난 8월의 3주간 한국에 들어갔을 때도, 혹시 모르니까 장례식에 입을 옷 한 벌씩 챙겨오라는 말을 들었던 터다. 그러나 그렇게, 그저 시간 문제였을 뿐, 당신의 병중이 워낙 심각했으므로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라고 짚어 본다고, 상실의 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