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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생애 첫 가족 라이딩

한국을 다녀온다고 3주를 빼먹는 바람에 동준이한테 배정된 BC 주정부의 오티즘 펀드가 좀 남았다며, 매주말 수영만 하기보다는 자전거를 한 번 태워보면 어떻겠느냐고 아내가 내게 의향을 물었다. 펀드는 주로 동준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는 보조교사의 급료로 쓰였다. 동준이가 다니는 학교의 보조교사를 학교 밖에서도 커뮤니티 센터의 수영장에 가거나 운동을 시키는 데 딸려 보냈다. 보조교사는 '노벨'이라는 이름의 스리랑카 출신 남성인데, 키는 나보다 작지만 라디오 아나운서 뺨치는 목소리에, 차분하고 침착한 성정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동준이도 잘 따른다. 


장거리 달리기를 이미 토요일에 마친 터여서, 일요일이 비었다. 근처 '시모어 보전구역' (Lower Seymour Conservation Reserve, "LSCR"로 약칭)으로 가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미니밴 안에 자전거 다섯 대를 싣기는 무리여서 넉 대만 겨우 우겨넣고, 나는 미리 자전거로 LSCR 주차장까지 가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한 시간쯤 일찍 나와서 트레일 정상에 자리잡은 시모어 댐을 찍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운전하는 미니밴이 막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토요일의 장거리 달리기에서 만난 가을 풍경. BC주의 와인 산지로 유명한 오카나간 지역의 중심, 컬로우나 (Kelowna)에서 벌어지는 오카나간 마라톤까지 꼭 일주일 남았다. 이제 슬슬 마일리지를 줄이면서 체력을 아낄 때다. 이번엔 24km 남짓을 달렸는데, 어쩌다 보니 오르막길을 유독 많이 탔다. 노쓰밴이 확실히 산촌은 산촌이다. (One week to go to run the BMO Okanagan Marathon in Kelowna next Sunday. Ran 15+ miles, climbing up and down a lot of hills. Also enjoyed fall colours that seemed spreading fast.)


가족끼리 자전거를 탄다 탄다 말만 무성했지, 실제로 온가족이 각자의 자전거를 타고 시모어 트레일을 달려본 적은 아직 없었다. 그러니까 일요일의 가족 라이딩이 '생애 처음'이 되는 셈이었다. 세상에나! 지난 5월에도 온가족이 나온 적은 있지만 그 때는 동준이와 성준이만 자전거를 타고 엄마와 나는 무모하게도 도보로 쫓아다니는 형국이었다.


시모어 트레일의 초입에서 약 1 km 남짓 올라가면 나오는, 직선으로 1 km 가까이 뻗은 평지 트레일에서 왔다 갔다 왕복하는 방법을 택했다. 아내나 아이들이나 갈 데 없는 자전거 초보들인지라 비탈을 올라가기도 힘들고, 내려올 때는 또 가파른 구간들에서 겁을 집어먹을테니 일단 편평한 지역에서 기본 기술부터 착실하게 익히는 게 상책이었다. 


먼저 동준이. 자전거를 타거나 내리거나 끊임없이 소리를 질렀고, 특히 지나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이! 하이!" 하고 인사를 했다. 자전거는 가장 잘 탔다. 에드먼튼에서 동준이와 비슷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자전거 캠프도 참가한 터여서, 자전거를 제법 안정되게 굴렸다. 자전거의 기어를 바꿀 줄 모르고, 브레이크를 잡거나 커브를 트는 게 다소 서투르기는 했지만 중심을 잡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노벨과 함께 왔다 갔다, 제법 잘 탔다. 대견했다.



자전거를 타고 난 뒤, 주차장 근처에 모여서 기념 사진 한 장.


성준이도 의외로 잘 탔다. 한국 들어가기 직전, 어린이들을 위한 자전거 캠프에 일주일간 보낸 보람이 있었다. 아직 자전거가 좀 큰 편이라 출발할 때 좀 애를 먹기는 했지만 일단 출발하고 나면 제 나름대로 기어를 바꿔 가면서 어느 정도의 비탈도 잘 올라갔다. 그래 앞으로 자주 타면 금방 늘겠다.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는 데는 아내가 가장 더뎠다. 워낙 겁이 많기도 하고, 어렸을 때 자전거를 별로 타보지 않은 탓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두 번이라도 자전거를 타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자기도 모르는 새 자전거를 굴린다. 자전거 타기를 기억해내는 몸이 여간 신기하지 않다. 아내도 곧잘 자전거를 타는 듯했지만 혹시라도 넘어질 때를 대비해 안장을 너무 낮게 잡았다. 그러다 보니 페달을 밟는 힘이 제대로 나오기 힘들고, 평지에서는 그런대로 가지만, 약간의 경사진 언덕만 나오면 자전거가 좌우로 부들부들, 위태위태하게 흔들린다. 


LSCR의 평지 트레일을 대여섯 번이나 왕복했을까? 그늘이 져서 그런가 성준이는 춥다며 집에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일단 맛이라도 들였으니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어느 종목이나 일이 다 그러하듯이, 자전거 타기도 자꾸 해봐야 익숙해지고, 재미도 찾아지는 법일 테다. 다음 주에는 마라톤을 뛰러 BC주의 나파밸리인 오카나간 밸리로 짧은 휴가를 갈테니 자전거를 타기는 어려울테고, 그 다음 주쯤 다시 나와볼 참이다. 아래는 가민의 VIRB로 찍은 비디오.


Bike riding w/ fam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