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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쓰밴

조용한 주말, 복면가왕, 그리고 하이든 금요일 오후,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 집에 닿기 직전 반드시 올라야 하는 '깔딱 고개', 500 미터 남짓한 마운틴 고속도로 구간을 넘고 나면, '아, 드디어 주말이구나!' 하는 느낌이, 마치 전류가 통하듯 짜릿하게 온몸으로 전해 온다. 금요일의 저녁 식사는 더더욱 달콤하고, 거의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밀려오는 심신의 편안함은 이루 형언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토요일도 더없이 안락하다. 아무런 약속도 없고, 미리 짜놓은 계획도 없다. 다들 마음껏 늦잠을 자도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푹 놓고 자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눈을 뜬다. 그것도 평소보다 일찍. 새벽 다섯 시! 평일이라면 '아, 아직도 한 시간 반을 더 잘 수 있구나' 안도하면 다시 눈을 붙이고, 어떻게든 더 깊이 잠들어 보.. 더보기
다시 달리기 일요일 아침, 채 일곱 시가 되기 전, 가볍게 뛴다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사위는 어두웠지만 하늘의 별은 맑고 선명하기만 했다. 밤새 비가 살짝 내려 바닥은 축축했다. 오카나간 마라톤 이후 2주 만에 재개하는 달리기다. 지난 일요일에는 달리기 대신 30 km 남짓 자전거를 탔다. 몸무게의 몇 배나 되는 충격을 고스란히 다리에 싣는 부담은, 특히 마라톤을 뛴 뒤에는 적어도 2주 정도 삼가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었다. 그래서 마라톤을 뛴 뒤에는 늘 2주 정도를 쉬어 왔다. 점심 시간에도 뛰는 대신 부지런히 걸었다. 오랜만에 종종 걸음을 치듯 뛰어보니 더없이 상쾌한 기분이다. 론스데일 부두 쪽으로 가려다, 일곱 시 10분이나 20분쯤이면 해가 뜨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출을 보겠다는 욕심에 세컨드 내로우즈 다.. 더보기
생애 첫 가족 라이딩 한국을 다녀온다고 3주를 빼먹는 바람에 동준이한테 배정된 BC 주정부의 오티즘 펀드가 좀 남았다며, 매주말 수영만 하기보다는 자전거를 한 번 태워보면 어떻겠느냐고 아내가 내게 의향을 물었다. 펀드는 주로 동준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는 보조교사의 급료로 쓰였다. 동준이가 다니는 학교의 보조교사를 학교 밖에서도 커뮤니티 센터의 수영장에 가거나 운동을 시키는 데 딸려 보냈다. 보조교사는 '노벨'이라는 이름의 스리랑카 출신 남성인데, 키는 나보다 작지만 라디오 아나운서 뺨치는 목소리에, 차분하고 침착한 성정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동준이도 잘 따른다. 장거리 달리기를 이미 토요일에 마친 터여서, 일요일이 비었다. 근처 '시모어 보전구역' (Lower Seymour Conservation Reserve, "LS.. 더보기
알차게 보낸 주말 어떻게 주말을 보내야 '알차게 보냈다'라는 평가를 받는가? 나만의 사전에 따르면, 뭔가 집안일을 하나 둘쯤 해서 아내에게 생색을 낼 만한 '표'가 나야 한다. 내가 얼마나 먼 거리를 뛰었느냐, 자전거를 탔느냐 따위는 '알차게 보냈다'라는 판단의 기준에 들기는 하지만 가산점이 거의 없다. 우선순위에서도 한참 밀린다. 점수를 많이 따려면 뭐든 집안일을 해야 한다. 일요일 아침에 뛰다가 만난 새들. 템플턴 고등학교 앞 보도에 조성된 장식물인데 유난히 올빼미가 많았다. 아마 올빼미가, 그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혜나 지식을 상징하는 것처럼 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이미지 관리 면에서는 올빼미가 가장 남는 장사를 한 새다. 각설하고, 그런 기준에 따르면 이번 주말은 퍽 알찼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 더보기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가 돌아왔다. 얼굴이 별로 좋지 않다. 피로와 슬픔이 뒤범벅 된 얼굴이 어찌 좋을 수 있으랴… 아내의 공항 도착 시간이 12시30분인데 성준이를 학교에서 데려와야 하는 시간이 2시40분, 동준이의 스쿨버스가 집에 들르는 시간이 그 직후다. 아내를 공항으로 데리러 나가기가 어정쩡했다. 공항까지 가는, 혹은 공항에서 집까지 오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안팎을 잡는데, 아내가 비행기에서 내려 세관을 통과해서 공항 밖까지 나오는 시간은 종잡기가 어렵다. 여기에 부친 짐을 찾아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따라서 큰 짐만 없다면 공항에서 전철 타고 워터프런트 역까지 와서 시버스로 노쓰밴으로 오는 게 더 낫겠다는 계산이었다. 2시30분에 시버스가 론스데일 부두에 닿았고, 곧 아내가 나왔다. 엇, 그런데 제법 큰 이.. 더보기
돌아오니 밴쿠버는 어느덧 가을! 알람을 꺼놓고 잤다. 눈을 뜨니 커튼이 부옇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시계를 보니 막 8시가 지난 시각이다. 피로가 많이 가신 느낌이다. 역시 자연스럽게 눈이 떠질 때까지 자는 게 좋아! 아내와, '오늘 밤만' - 대체 이런 말을 얼마나 되풀이했는지! - 엄마 아빠랑 자겠다며 우리 방에 들어온 성준이는 아직 꿈나라다. 부엌으로 가 커피를 내린다. 8시30분. 뛸까? 오늘도 쉬고 내일 뛸까? 그러면 이틀을 쉬게 되는 셈인데... 자전거 통근을 핑계로 하루 건너씩 달리겠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거고... 뛸까? 말까? 오늘 두 시간 넘게 장거리를 뛰고 오면 페더러의 유에스 오픈 테니스 경기를 놓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마음속에서 티격태격 하는 와중에 주섬주섬 옷 갈아 입고, 벨트용 미니 물병 두 개.. 더보기
잠 잠 잠... 한국에 머무를 때,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여성안심귀가길'이라는 글자가 퍽이나 낯설고 기묘하게 여겨진 기억... 지난 토요일(8월29일) 오후, 정말 어렵사리 캐나다로 돌아온 이후 일주일 내내 잠만 잔 것 같다. 자고 자고 또 자고... 그런데도 피로는 전혀 풀린 것 같지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퇴근해 저녁을 먹고 나면, 금새 졸음이, 그야말로 밀물처럼 몰려온다. 식곤증 때문일 수도 있지만 밀려드는 수면욕의 강도가 속수무책으로 강하다. 도무지 안 자고 버틸 기력이 없다. 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잠에 빠진다. 그리곤 어느 순간 잠깐 눈을 뜬다.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 3,40분 뒤척이다 또 잔다. 다시 눈을 떠 보면 자정. 또 3, 40분 뒤척이며 잠깐 킨들이나 넥서스 7을 보다가 잠을.. 더보기
비와 자전거 비가 내렸다. 단비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 비 많기로 유명한 - 대체로 ‘악명 높은’에 가까운 - 밴쿠버에서, 이토록 애타게 비를 기다린 적도 드물었던 것 같다. 빗속 달리기부러 알람을 꺼놓고 잤더니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각에 잠이 깼다. 여섯 시가 막 넘었다. 평소의 출근 시간에 맞추자면 조금 서둘러야 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뛰어야 한다는 뜻. 주룩주룩이 아니라 투둑투둑, 아직까지는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마운틴 하이웨이를 잠시 타다가 커크스톤 애비뉴를 거쳐 동준이가 다니는 서덜랜드 중고등학교 (세컨더리) 트랙에 갔다. 트랙은 바닥이 고르다. 뛸 때 발목의 긴장감이 훨씬 덜하다. 그만큼 속도를 내기도 좋다. 집까지 가는 길이 3km쯤 되니까 1마일만 뛰고 가자. 부러 시계를 안 본 채 .. 더보기
가뭄 자전거 수리가 더디다. 필요한 부품, 특히 앞 바퀴를 고정하는 포크를 교체해야 하는데 지난 주 화요일 쯤이면 되리라던 게, 그로부터 일주일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언제 되느냐고 물으면 어깨만 으쓱, 부품이 오면 오는 거지 자기들로서는 알 수 없다는 대답. 답답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임시변통으로 아내의 자전거를 타보기로 했다. 출근을 앞두고 연습차 동네 뒷산 - 시모어 보전 지역 (LSCR) - 으로 라이딩을 나갔다. 많은 상품이나 제품, 서비스가 그렇듯이, 자전거도 어느 수준까지는 값과 성능이 대체로 비례한다. 싸면 싼 이유가 있는 것이고, 비싸면 비싼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내의 얼라이트 (Alight) 자전거는 가벼운 라이딩이나 가까운 거리의 출퇴근 용이다. 여러모로 성에 안 찰 수.. 더보기
휴가 시작 옛 직장 후배이자 친구가 밴쿠버로 놀러 왔다. 한국과 캐나다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잘 알기 때문에 일삼아 찾아오기가 - 놀러온다는 핑계를 대더라도 -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다른 친구, 선배 들에게도 여러 번 캐나다로 놀러오시라는 말을 했었지만 정작 와준 사람은 거의 없다. 거기에 무슨 불만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찾아오기가 비용 면에서나 시간 면에서나, 또 체력 면에서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후배가 고맙고 반갑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후배는 금요일 오후에 왔다. 밴쿠버 다운타운의 일식집에서 저녁을 먹고 바닷가 (Seawall)를 잠깐 거닐었다. 한여름의 저녁 햇빛이 눈부셨다. 토요일 아침, 노쓰밴의 론스데일 부둣가에 왔다. 보여주고 싶은 곳은 많지만 시간이 부족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