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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비와 자전거


비가 내렸다. 단비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 비 많기로 유명한 - 대체로 ‘악명 높은’에 가까운 - 밴쿠버에서, 이토록 애타게 비를 기다린 적도 드물었던 것 같다. 


빗속 달리기

부러 알람을 꺼놓고 잤더니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각에 잠이 깼다. 여섯 시가 막 넘었다. 평소의 출근 시간에 맞추자면 조금 서둘러야 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뛰어야 한다는 뜻. 


주룩주룩이 아니라 투둑투둑, 아직까지는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마운틴 하이웨이를 잠시 타다가 커크스톤 애비뉴를 거쳐 동준이가 다니는 서덜랜드 중고등학교 (세컨더리) 트랙에 갔다. 트랙은 바닥이 고르다. 뛸 때 발목의 긴장감이 훨씬 덜하다. 그만큼 속도를 내기도 좋다. 집까지 가는 길이 3km쯤 되니까 1마일만 뛰고 가자. 부러 시계를 안 본 채 속도를 붙였다. 1마일이 됐다는 신호가 드르륵 진동으로 팔목에 온다. 7분39초 페이스로 뛰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수리를 마친 인디 2. 마치 자전거판 스티브 오스틴이나 소머즈를 보는 느낌 (나와 같은 세대만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일듯). 앞바퀴와 연결된 포크는 2015년형 인디 2에서 가져왔고, 오른쪽 브레이크 레버는 디오레 (Deore)에서 떼어왔다. 후미등은 사고 때 사라져서 케이스만 남아 있다.


빗속 사이클링

수리를 맡긴 지 3주 가까이 지난 7월22일(수)에 드디어 자전거를 찾았다. 비 올 때는 서치 S1 대신 인디 2를 타겠노라고 했더니, “인디 신세가 처량하게 됐네?”라고 아내가 농담을 던진다. 서치 자전거에서 응급처치 기구들이 든 미니백과 미니 펌프를 옮겼다. 후미등이 없어져 서치에서 쓰던 것을 옮겨 달아보니 규격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고무줄로 동여맸다. 전조 경광등은 사고 때 긁힌 것을 다시 붙였다. 상처는 자심한데 여전히 불은 잘 들어온다.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서니, 투둑투둑 시원찮게 떨어지던 비가, 어느새 주룩주룩으로 바뀌었다. 제법 비다운 비다. 이 정도로 이삼일 계속 내리면 가뭄 해갈에 큰 도움이 될 듯싶다. 상의만 우비를 걸치고 하의는 평소 입던 사이클링 반바지를 그대로 입었다. 사이클링 신발에 커버를 씌울까 하다가 그냥 가기로 했다. 회사에 가서 뭉친 신문지로 처방하면 퇴근 무렵에는 마를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자전거 도로는 한산했다.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평소 교통량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듯싶었다. 사고 이후부터 이용하기 시작한 ‘아다낙 자전거 도로’ (Adanac Bikeway)가 특히 두드러지게 달라진 교통량을 잘 보여주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맑은 날에는 하루 1천여 사이클리스트들이 이 도로를 이용한다고 했는데, 오늘 아침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자전거가 적었다. 


아다낙 바이크웨이는 최근에야 알게 된 길이다. 사고를 당한 직후, 좀더 안전한 길이 없을까 찾다가, 2km 남짓 더 돌아가지만 자전거 도로가 잘 조성된 아다낙 길을 알게 됐다. 여전히 일시 정지 표지판만 선 건널목이 많아 조심해야 하지만 밴쿠버 지역을 통과하는 동안 자전거 도로가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게 심리적으로 여간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전에 타던 길은 1km 남짓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 데다 차도마저 좁아서 늘 위험하다고 생각해 왔다. 


오늘처럼 오랜만에 비가 내리면, 특히 오랫동안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가 비가 내리면 처음 한두 시간 동안 도로는 매우 위험한 상태가 된다. 포장도로의 석유 성분이 올라오면서 도로를 매우 미끄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더 조심해야 하고, 속도도 평소보다 줄여야 한다. 아니나다를까, 마운틴 하이웨이와 키스 (Keith) 로드가 만나는 지점에서 자전거 사고가, 그것도 퍽 심각하게, 났던 모양이다. 앰뷸런스와 소방서 트럭이 경광등을 번쩍이며 길 한 켠에 서 있었다. 소방대원이 자전거를 나르는데, 반으로 부러진 모양이었다. 여느 스틸 재질이 아닌 카본 자전거여서 그렇게 뚝 부러졌을 수도 있지만, 사이클리스트는 크게 다치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런 장면을 봤을 때, 그리고 내 경우처럼 사고를 당한 다음에,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반응할 것 같다. 자전거는 너무 위험해. 그러니 승용차를 타거나 버스를 이용해야 해.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예측할 수 없는 위험들로 가득차 있다. 그런 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물론 중요하겠지만, 교통사고의 염려 때문에 자전거를 포기하는 것은, 꼭 바람직한 선택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날 수 있다. 나는 내 능력의 범위 안에서,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사고를 당한다면, 그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요는, 사물이나 사안을 흑백의 이분법적 논리로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라는 식의 단정은 바람직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늘 조심하고 긴장하자. 속도를 줄이자. 교통 신호를 준수하고, 정해진 규칙을 따르자. 사고의 위험성 하나 때문에 자전거를 아예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