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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알차게 보낸 주말

어떻게 주말을 보내야 '알차게 보냈다'라는 평가를 받는가? 나만의 사전에 따르면, 뭔가 집안일을 하나 둘쯤 해서 아내에게 생색을 낼 만한 '표'가 나야 한다. 내가 얼마나 먼 거리를 뛰었느냐, 자전거를 탔느냐 따위는 '알차게 보냈다'라는 판단의 기준에 들기는 하지만 가산점이 거의 없다. 우선순위에서도 한참 밀린다. 점수를 많이 따려면 뭐든 집안일을 해야 한다.



일요일 아침에 뛰다가 만난 새들. 템플턴 고등학교 앞 보도에 조성된 장식물인데 유난히 올빼미가 많았다. 아마 올빼미가, 그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혜나 지식을 상징하는 것처럼 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이미지 관리 면에서는 올빼미가 가장 남는 장사를 한 새다.


각설하고, 그런 기준에 따르면 이번 주말은 퍽 알찼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퍽 고된 집안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아래 사진에서 보는, 부러져 창고 지붕 위로 넘어진 커다란 나뭇가지들을 제거한 일이다. 사실은 저 두 가지뿐 아니라 아예 나무 자체를 잘라버렸다. 스스로 대견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저 큰 나뭇가지들을, 변변치 않은 작은 톱으로 처리했기 때문인데, 대학원을 갓 마치고 온타리오 주의 미시사가 시청의 도시임업과에서 잠깐 일한 '노가다'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여긴다.  



미시사가 시의 공원들에서 자라는 외래 침입종 나무들을 톱으로 숱하게 잘라낸 2003년의 여름이, 부러진 나뭇가지를 슬근슬근 톱질하는 동안 슬금슬금 머릿속으로 돌아왔다. 아니, 줄줄 흐르는 땀방울로 돌아왔을까? 톱질은, 행위 자체는 지극히 단순하고 반복적이지만 육체적으로 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고, 언뜻 단순해 보이는 그 반복 행위도 일정한 요령과 일관성을 잘 유지해 줘야 톱질 자체가 덜 힘들다.



톱질 자체를 저녁 무렵이나 돼서야 시작한 탓에, 잔가지 처리는 다음날로 미뤘다. 톱질이 늦어진 까닭은 집 지붕 처마를 막는 작업 때문이었다. 집 지붕 끝은, 집안 환기를 돕기 위해 숨구멍처럼 공간이 있는데, 새들이 자주 날아들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새 두 마리는 아예 그 안에 집을 짓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른 아침,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면 후두둑 새 두 마리가 처마 끝 빈틈에서 나와 날아가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망을 사다가 빈틈을 죽 막았다.



다행히 지붕 처마 끝 전체가 빈 공간을 지닌 것은 아니고, 앞으로 비죽 나온 지붕 부분의 맨 끝과, 그 지붕이 꺾여 올라가며 다른 지붕과 만나는 지점만 환기용 구멍이 가로 길이만큼 조성되어 있다. 안쪽 환기 구멍은 지난 주에 막았고, 어제는 맨 앞 부분을 마저 막았다. 사다리 놓고 올라가서 망을 붙이고 그 위로 얇고 긴 판자를 대서 못질을 하는 일은, 단순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못질하는 자세가 잘 나오지 않은 탓이다. 못을 위로 박아야 하므로 망치질도 거꾸로 쳐대야 하니 걸핏하면 못이 아직 자리도 잡기 전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지기 일쑤였고, 망치도 제 각도롤 잡지 못한 채 헛놀림을 하곤 했다. 그래도 어쨌든 막았다. 그렇게 막는 동안 길 가쪽 전봇대 위에서 새 한 마리가 끼룩끼룩 울었는데, 그 새가 우리집에 불법 체류하려던 새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래 사진들은 일요일에 26 km 정도를 뛰면서 찍은 것들이다. 뛰다 사진 찍느라 잠깐 서거나 걷다 하는 일은, 달리기와 걷기를 병행하는 훈련법을 전도하는 제프 갤로웨이의 방식과 어느 면에서 닮은 꼴인데, 마냥 달리지 않고 이따금씩 걷거나 몇 초 정도 쉰 다음 - 대개는 사진을 찍느라 - 다시 뛰는 방식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느껴졌다. 다리가 그새 충전된 느낌이었다. 또 걱정한 만큼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 마라톤 대회에서 이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