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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쥐스탱 트뤼도라고?

선거가 끝났다. 하루아침에 집권당이 바뀌었다. 10년 가까이 집권해 온 스티븐 하퍼의 보수 토리당이, 진흙탕 흑색 선거전 대신 긍정적 정책 제시하는 데 주력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 저스틴 트루도의 자유당에 대패했다. 캐나다는 올해 43세의 젊고 패기 있는, 그러나 실제 정치력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트루도를 새 총리로 뽑은 셈이다. 나는 트루도보다 토마스 멀케어가 트루도보다 더 경륜과 정치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그가 이끄는 신민당 (NDP)를 지지했지만 초반의 기세를 유지하지 제대로 못한 데다, '될 데를 밀어주자'는 전략적 투표 탓에 자유당에 대거 표를 빼앗기면서 제3당에 머물렀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캐나다의 건전한 정치 문화가 더없이 좋다. 정치를 못한다 싶으면 가차없이 표로 심판해 버리는 나라.  



쥐스탱 트뤼도라고?

한국 언론에 모처럼 캐나다 총선 소식이 실렸는데, 그 내용의 얄팍함이 실로 참기 힘든 수준이다. 게다가 쥐스탱 트뤼도라? 그가 불어권인 퀘벡 출신이라고 그렇게 쓴 모양인데, 아무리 캐나다가 영불 bilingual이라고 해도 영어가 주류이고, 그는 퀘벡이 아닌 캐나다 연방 정부의 총리다. 저스틴 트루도라고 불러야 맞다고 본다. 


게다가, 제발 그런 얘기는 좀 뺐으면 했던, 트루도가 잘 생겼다는 얘기, 트루도 어머니가 연예인들과 염문을 뿌렸다는 얘기, 한 마디로 지엽말단의 원초적 가십이 잔뜩 끼어들었다. 그리고 동아일보에 따르면 피에르 트루도가 '현대 캐나다를 만든 아버지'란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부르는데? 피에르 트루도를 캐나다의 케네디라 부른다며? 케네디가 '현대 미국을 만든 아버지'냐? 물론 케네디처럼 캐나다에서 인기가 많았던 사람이었고, 청중을 끌어모으는 능력이 탁월한 선동적 대중 정치인이었다는 뜻으로 알아 들었다. 하지만 피에르 트루도는 케네디처럼 논란도 많았던 인물이다. 현대 캐나다를 만든 아버지 운운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얘기다. 특히 그 때문에 엄청난 재정적, 심리적 피해를 입은 알버타 주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장총이라도 들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지엽말단적인 얘기든, 핵심을 벗어난 얘기든, '사실'을 쓰는 건 좋다. 없는 얘기를 지어내지는 말아달라 제발! 감탄하기보다 한탄하고 개탄하고 실망스러울 때가 훨씬 더 많은 한국 언론의 보도 양태는, 이번에도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기대에 부합했으니 즐거워야 할텐데, 씁쓸하기 짝이 없다.


JUST NOT READY?


알버타 주 에드먼튼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에드먼튼 저널'의 10월19일 만평. 맬컴 메이즈 (Malcolm Mayes)라는 이의 작품이다. 이 분은 워낙 뛰어난 풍자 실력으로, 한낱 지방지에 만평을 연재하고 있지만 전국 규모의 언론상을 많이 받았고, 따르는 팬도 많은 인기 언론인이다. 


이 만평의 풍자가 얼마나 절묘한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캐나다의 집권당인 보수당은 총선일을 잡기 훨씬 전부터 저스틴 트루도를 공격해 왔다. 그 중 가장 일관된 홍보 문구는 트루도의 이름을 이용해서 아직 40대 초반인 그가 정치적 연륜도 짧고 경험도 일천해, 캐나다를 이끌 준비가 안 됐다는 메시지로 'Justin Trudeau, Just Not Ready'라고 실로 줄기차게, 솔직히 말하면 지겹도록, 때로는 역겹도록, 외쳐 왔다. 그런데 트루도가 이끄는 자유당이 보수당을 박살내고 다수당으로 올라섰으니, 저런 말이 나올 만도 하지 않겠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