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얘기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가 돌아왔다. 얼굴이 별로 좋지 않다. 피로와 슬픔이 뒤범벅 된 얼굴이 어찌 좋을 수 있으랴… 


아내의 공항 도착 시간이 12시30분인데 성준이를 학교에서 데려와야 하는 시간이 2시40분, 동준이의 스쿨버스가 집에 들르는 시간이 그 직후다. 아내를 공항으로 데리러 나가기가 어정쩡했다. 공항까지 가는, 혹은 공항에서 집까지 오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안팎을 잡는데, 아내가 비행기에서 내려 세관을 통과해서 공항 밖까지 나오는 시간은 종잡기가 어렵다. 여기에 부친 짐을 찾아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따라서 큰 짐만 없다면 공항에서 전철 타고 워터프런트 역까지 와서 시버스로 노쓰밴으로 오는 게 더 낫겠다는 계산이었다. 



2시30분에 시버스가 론스데일 부두에 닿았고, 곧 아내가 나왔다. 엇, 그런데 제법 큰 이민 가방 하나가 더 있다 짐이 없다더니… 애초에 그럴 줄 짐작했어야 하는데… 


아내와 함께 성준이 학교로 간다. 10분이 좀 넘게 걸려 빠듯하게, 2시45분에 학교 앞에 닿는다. 다행히 성준이 학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일까지 준비해야 할 ‘어젠다’를 적는 중이다. 교실 밖에 선 나를 보자마자 금방 흥분된 표정이 된다. 그런데 평소보다 좀 더하다. 


Dad, dad, you know what? You should see this. Come here, follow me!” 낄낄대면서 나를 교실로 다시 끌고 들어간다. 스케치북을 펼친다. 가족 그림을 그리라고 한 모양인데, 이 녀석이 유독 아빠만 아주 광대로 그려놓았다. 옷차림도, 캡틴 언더팬츠도 아닌 마당에 ‘빤스’만 달랑 입혀놓았고, 배경이 화장실 (toilet)이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화장실 유머를 좋아하는지…). 안경은 뱅뱅 돌아가는 이상한 모양이고, 머리에는 리본을 달고, 귀마개까지 씌웠다 (아직 색깔은 입히지 않았는데 핑크색 귀마개란다). 신발은, 제 말에 따르면 토끼 모양의 슬리퍼 (bunny rabbit slipper)를 신겨놓았다. 낄낄낄... 저 혼자 좋다고 마구 웃어댄다. 오늘 아침에, 걸어가기 싫다는 걸, 채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힘들다고 하느냐고 좀 꾸지람을 줬더니 그게 쌓였던 모양이다. 자식 쪼잔하기는 꼭 제 아빠를 닮아서... 



밖으로 나오면서, 오늘은 차를 가져왔노라고 하니 성준이의 표정이 퍽이나 밝아진다.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앞장서서 미니밴 쪽으로 열심히 뛰어간다. 먼 발치에서 보니, 성준인 차 옆에 가서야 비로소 엄마가 돌아온 걸 눈치 챈 모양이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성준이가 엄마한테 안기는 모습이 보인다. 


Are you happy to see mommy again, Songjoon?


Yeah, yeah! Now I don’t have to eat your crazy masterpiece any more!” 


이제 아빠가 만들어주는 이상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니 그게 제일 행복하단다. 핫도그에 치즈와 터키 브레스트 한 장씩 더 얹은 소행 하나로, 아빠는 졸지에 ‘crazy cook’이 돼 버렸다. ㅜㅜ



동준이의 스쿨버스를 기다리며 부엌에서 어색한 셀카. 내가 쓴 선글라스는 아내가 사온 나이키 스포츠 선글라스. 왜 당신 것을 사지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맘에 드는 게 없었다나... 사실 기내 면세품의 대부분이 여성용인데...


집에 와서 대충 짐을 부리고 풀고 있으니 동준이의 스쿨버스가 집앞에 와서 선다. 평소처럼,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나와 집으로 후닥닥 뛰어가서, 뻔히 현관 문이 열려 있는데도 초인종을 서너 번 누르고 - 아침에 학교에 갈 때도 그런다 - 백팩을 집어던지듯 카운터 탑에 올려놓는다. 엄마를 본다. 예의 ‘복수 키스’ (multiple kisses). 왼볼 오른볼 목… 하지만 동준이가 엄마의 부재를 진정으로 인식했던 것 같지는 않고, 마찬가지로, 엄마의 귀환을 실감했다고 여겨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아닐 거라고, 동준이도 엄마가 와서 좋아할 거라고, 믿는다.


아내가 돌아왔다. 집안이 훤해진 것 같다.

 


아내가 한국에서 사온 옷걸이. 한샘 제품인데 6만원짜리를 2만원에 팔더라며, 포장이 크지 않아서 가져왔도라고... 성준이가 조립을 도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