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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잠 잠 잠...

한국에 머무를 때,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여성안심귀가길'이라는 글자가 퍽이나 낯설고 기묘하게 여겨진 기억...


지난 토요일(8월29일) 오후, 정말 어렵사리 캐나다로 돌아온 이후 일주일 내내 잠만 잔 것 같다. 자고 자고 또 자고... 그런데도 피로는 전혀 풀린 것 같지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퇴근해 저녁을 먹고 나면, 금새 졸음이, 그야말로 밀물처럼 몰려온다. 식곤증 때문일 수도 있지만 밀려드는 수면욕의 강도가 속수무책으로 강하다. 도무지 안 자고 버틸 기력이 없다. 


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잠에 빠진다. 그리곤 어느 순간 잠깐 눈을 뜬다.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 3,40분 뒤척이다 또 잔다. 다시 눈을 떠 보면 자정. 또 3, 40분 뒤척이며 잠깐 킨들이나 넥서스 7을 보다가 잠을 청한다. 눈 뜨면 새벽 3시. 다시 잠. 알람이 운다. 6시30분. 다시 눈이 감긴다 10분만... 퍼뜩 눈을 뜨니 7시33분. ... 뭐라고 7시33분? 허겁지겁 나와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뒤따라 나온, 역시 겨우겨우 일어난 아내는 아침을 차려주고... 그래도 자전거로 출근하는 덕택에 집에서는 사이클용 복장을 갖추는 일 외에는 달리 할 게 없어서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다. 회사에 도착할 무렵이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기 때문에 샤워가 필수다. 따라서 씻고 근무 복장으로 갈아 입는 것은 회사 라커룸에서다.


화요일도 비슷하게 흐른다. 수요일도, 목요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시퀀스다. 잠, 잠, 잠. 시차 적응하기가 이렇게 힘들었었나? 새삼 2년 전, 그리고 그 이전, 한국에 다녀온 뒤에 어떠했는지를 떠올려 본다. 하지만 이번만큼 징그럽게 헤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이란 종종 사실과 다른 - 대개는 과소 평가된 - 그림을 보여주고 그에 견주어 현재는 거의 언제나 더욱 절박하게 받아들여지는 법이니까 이런 추측이 꼭 맞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잠, 잠, 잠, 오직 잠자는 일만 지성으로 했는데도 왜 피로는 풀릴 생각을 않는 걸까? 몇 가지 이유가 떠오른다. 하나는 길고 깊은 잠을 못 잤다는 것. 아무리 오랜 시간을 잤어도 중간 중간에 깨고 다시 잠을 자는 경우, 일어나도 제대로 잔 것 같지 않기가 십상이다. 몸은 여전히 찌뿌둥하고, 피로는 여전히 웅덩이에 고인 탁한 물처럼 몸속에 남아 있다. 게다가 깨는 시간대 (아침 6시 안팎)이, 공교롭게도 가장 깊고 달콤한 잠에 빠질 무렵이다. 그 지점에서 알람이 울어대니, 일으키려는 몸이 천근만근일밖에...


또 한 가지 큰 이유는 막내 성준이다. 평소라면 늦은 시간에 속하는 10시에도 말똥말똥하다. 잠 잘 생각조차 않는 것 같다. 11시가 지나고 자정이 지나도,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잠을 청해도, 이 녀석은 여전히 낭랑한 목소리로 "Dad" "Mom"을 외쳐대며 온갖 요구와 불평과 이야기를 제 방에서 해댄다. 


자라고 한 지 10분쯤 지나 - 그 동안은 조용하므로 아, 자는구나 안심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 "Dad, Mom, I'm thirsty"라고 말한다. 머리맡에 엄마가 물컵을 가져다 놓았으니 저 혼자 마실 수 있는데도 그런다. 다시 잠이 까무룩히 들 무렵, 또 목소리가 들려온다. "Dad, mom, I can't sleep" 밤이라서 그런가 이 녀석의 목소리는 유난히 더 낭랑하고 크게 들린다. 그 소리에 다른 방의 동준이도 잠이 깨어 뭐라고 중얼대고... 어렵사리 잠자리에 돌려놓은 지 다시 2, 30분이나 지났을까? 문 여는 소리, 쿵쿵 걷는 소리가 들리고 "I'm going to the bathroom!" 하고 우리에게 보고를 하는 과잉친절을 베푼다. 그런 것까지는 시시콜콜하게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핏대를 올려 한 마디 해보는데, 그새 또 잠이 깨고 말았다. 이런 젠장! 시계는 어느새 자정을 넘어가고 있다.


잠이 들었다. 들었다고 느꼈다. 문득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성준이다. 왜 그러느냐고 녀석의 방에 가서 물으니 잠이 안 와서 그렇단다. 이 녀석의 훌쩍임은 진짜다. 어쩌면 그리 민감하고 눈물이 많은지 조금만 감정이 상하면 울음바람이다. 내가 밤에 잠을 자지 않으면 키 크는 호르몬이 나오지 않아서 키가 크지 않는다고, 내 딴에는 녀석의 잠을 독려할 의도로 한 이야기를 오밤중에 상기하면서, 잠이 안 와서 잠을 못 자니, 키가 안 클 거 아니냐고, 훌쩍이는 것. 아니다, 괜찮다 제트래그 때문에 잠시 이러는 거다, 라고 했더니 그게 뭐냔다. 그래서 다시 한국과 캐나다의 낮밤이 반대여서 네가 지금 잠을 못 자는 거다, 지금 한국은 낮 시간 아니냐 운운, 설명하다 보니 또 잠이 깨버렸다. 아이를 우리 방으로 부른다. 애지중지하는 커다란 베개 (동물 그림이 들어 있어서 'Animal Pillow'라고 부른다)를 들고 엄마 옆으로 들어온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2시를 넘고...


이 사진이 꼭 우리 같다. 엄마 아빠는 잠을 자는데, 오른쪽 두 녀석은 말똥말똥...


이런 심난한 잠자리를 한 주 내내 하고 나니, 잠은 잤으되 잔 것 같지 않고,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은 자꾸만 '보류'로 밀린다. 아내는 아마도 나보다 더 피곤했던 모양으로, 목요일 아침에는 내가 일어나는 기척조차 못 느끼고 내처 잤다. 커피 콩을 가는 요란한 소리도 전혀 못 들은 듯했다. 그래서 깨우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집을 나왔다. 아침은 서브웨이에서, 점심은 마침 동료들과 함께하기로 한 날이었다. 나중에 10시가 넘어 전화를 걸었더니 내 전화벨 소리에 그제사 잠이 깼노라고 말했다. 동준이 성준이도 아직 이불속이라는 이야기... 오늘 밤은 좀 나아질까?  


올해의 노동절 긴 휴일 (Long weekend)은 예년보다 일주일 늦은 9월7일(월)이다. 그 때문에 학교도 8일부터 개학이다. 평소처럼 개학했더라면 두 녀석 모두 수업 시간에 곯아떨어질 뻔했다. 이번 긴 주말 동안, 깊고 편한 잠을 자보련다. 그러면 제트래그도 끝나겠지. 한국을 다녀온 후유증이 일주일 이상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