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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쓰밴

Just do it! 일요일 아침 여섯 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기온도 뚝 떨어져 긴팔 재킷에 타이즈를 입었어도 을씨년스러웠다. 처마 밑에 서서, 멀리 가로등 불빛 아래로 쉼없이 그어지는 사선의 빗줄기를 보며 잠시 망설였다. 아 뛰지 말까? 몇 시간 뒤면 비가 갠다는 일기 예보인데 그 때까지 기다릴까? 몸도 찌뿌둥하고 컨디션도 별로인데 그냥 쉬어버릴까? 창밖으로 보이는 비나 눈은 실제보다 더 세차 보이고 더 을씨년스러워 보인다는 말은, 대개는 맞지만 오늘 아침만은 예외인 듯싶었다. 무엇보다 바람이 문제였다. 그 바람을 안고 언덕을 천천히 뛰어 올라가는데, 불과 몇 분 안돼서 가슴 께가 축축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방수가 되는 재킷을 입었는데도 그랬다. 아, 다른 방향으로 먼저 갈 걸 그랬나? 하지만 갈 때든 올.. 더보기
비온 뒤의 산책 - LSCR 두어 달 만에 왔다. 느낌으로는 그보다 더 오랜만인 것 같다. 여름이 끝나고 밤이 길어지면서 아침에 뜀뛰기가 어려워지면서 노쓰밴에서 뛰는 일도 줄었다. 평일에는 점심 시간을 이용해 스탠리 공원을 돌았고, 주말에는 함께 뛰는 직장 동료를 배려해 주로 카필라노 계곡 부근이나 앰블사이드 공원 부근을 뛰었다. 그나마도 10월의 빅토리아 마라톤 이후 2주를 쉬느라, 정작 집 뒤에 가까이 있는 '하부 시모어 보전 지역' (Lower Seymour Conservation Reserve, LSCR)은 퍽 오랫동안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지난 2, 3주 동안 비가 징하게도 내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렸다. 더욱이 이번 주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장맛비가 각각 90mm, 70mm씩 쏟아져, 노쓰밴 일부 지역의 집들이 침수되.. 더보기
노쓰밴의 가을 일요일 아침, 빅토리아 마라톤 이후 2주 만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회사 동료인 존과 함께 달리기 위해 그의 집까지는 자전거로 간 뒤 (왕복 15km 정도), 10km 남짓을 뛰다 걷다 했다. 노쓰밴쿠버는 어느덧 깊은 가을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 주만 더 지나면 11월이고, 일광시간절약제도 끝난다. 벌써 한 해가 이울었구나! 점심 때는 자전거 용품을 사러 스포츠용품점 MEC에 들렀다가, 린 계곡 (Lynn Creek) 트레일을 따라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풍성한 가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침 브리지만 공원 표지판에 트레일의 주요 단풍나무들인 Vine maple 잎과 Bigleaf Maple 잎이 간밤의 비바람 결에 붙어 제법 운치를 냈다. Big Leaf Maple은 이름 그대로 잎이 엄청 .. 더보기
린 캐년 공원 산보 9월1일이 노동절이어서 월요일까지 쉬는 '긴 주말'(Long Weekend)이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기가 웬지 미안하고 손해보는 느낌이어서 점심 직전, 근처 린 캐년(Lynn Canyon)의 트레일을 잠깐 걷다 오기로 했다. 막내 성준이는 숲길 걷는 게 늘 마뜩찮다. 지루하고 재미없다며, 'boring'을 연발한다. 그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거다. 숲이 많으면 도심이 그립고, 도심에만 있으면 숲이 그리운 거다. 카메라를 나무 난간 위에 놓고 타이머로 찍었다. 가족 사진이다. 성준이는 늘 찌푸린 표정이다가도 사진 찍는다고 하면 짐짓 '치이즈~!' 표정을 만들 줄 안다. 동준이는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설령 그게 저를 향한 게 아닌 경우에도 '치즈!'라고 말하며 고개를 쳐든다. 린 캐년 공원의 입.. 더보기
재미난 거리 이름 동네 근처를 뛰면서 거리 이름을 눈여겨볼 때가 있다. 지역마다 거리 이름을 정한 기준이 다른 것 같다. 내가 사는 동네는 흔히 '린 밸리' (Lynn Valley) 지역으로 통칭되는데, 그 때문인지 거리 이름마다 뒤에 '린'을 달았다. AlderLynn, AylesLynn (이건 읽기도 어렵다. 에일즈린인가?), ArborLynn, BelleLynn, BriarLynn, CrestLynn, Floralynn, GreyLynn, LauraLynn, MerryLynn, WestLynn, Viewlynn... 그런가 하면 유명 문필가들이 이름을 빌린 곳도 있었다. 린 밸리 윗쪽으로 올라가 프롬 산 (Fromme Mt.) 근처 골목을 지나가는데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워낙 긴 이름이니 눈에 띄지 .. 더보기
잃어버린 세대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이 흔하다. 본래 그 말 'lost generation'이 가리키는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중에 자란 세대를 가리키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통해 대중화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어디에서나 대충 갖다 쓰는 듯하다. 이를테면 한국의 요즘 대졸자와 20대들을 그렇게 일컫기도 하고, 어제 집어든 이 지역의 주간지 'North Shore Outlook'에 따르면 치솟는 집값을 감당 못해 태어나고 자란 노쓰밴이나 웨스트밴 (웨스트 밴쿠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요즘 젊은 세대를 지칭하기도 한다. 별로 치밀하게 잘 취재된 것 같지 않고, 그저 '카더라'에 많이 의존한 기사 아닌 기사로 비쳤지만, 어쨌든 노쓰밴의 신참인 내게는 퍽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 내용은 나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