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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머리가 나쁘면...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 라는 말이 있다. 속담인가? 그런데 내 경우에는 손발에만 그치지 않고 애먼 아내에게까지 영향이 미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당혹스럽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회사에서 입을 옷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이다. 오전만 일하고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어서 도시락도 간식도 챙기지 않으면서 짐이 가벼워졌고, 그래서 가방을 작은 것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만 깜빡한 것이다. 점심때 뛸 운동복과 속옷은 챙겼으면서... (하긴 지난 주인가 지지난 주인가에는 허리띠를 놓고 와서 허리띠 없이 하루를 버틴 적도 있다. 바지가 내 허리에 딱 맞았기를 다행이지, 혹시라도 헐렁한 바지를 챙겨왔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사실은 오늘 하루 동안 집에서 일하면서 오전.. 더보기
노쓰밴의 가을 일요일 아침, 빅토리아 마라톤 이후 2주 만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회사 동료인 존과 함께 달리기 위해 그의 집까지는 자전거로 간 뒤 (왕복 15km 정도), 10km 남짓을 뛰다 걷다 했다. 노쓰밴쿠버는 어느덧 깊은 가을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 주만 더 지나면 11월이고, 일광시간절약제도 끝난다. 벌써 한 해가 이울었구나! 점심 때는 자전거 용품을 사러 스포츠용품점 MEC에 들렀다가, 린 계곡 (Lynn Creek) 트레일을 따라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풍성한 가을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침 브리지만 공원 표지판에 트레일의 주요 단풍나무들인 Vine maple 잎과 Bigleaf Maple 잎이 간밤의 비바람 결에 붙어 제법 운치를 냈다. Big Leaf Maple은 이름 그대로 잎이 엄청 .. 더보기
나나이모 - 빅토리아 여행 빅토리아 마라톤을 뛰기 위해 캐나다 추수감사절 주말 동안 나나이모와 빅토리아를 여행했다. 10월10일 금요일에 출발해, 마라톤을 뛴 12일 일요일에 다시 페리로 귀가한, 짧은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혹시 못 보았거나 놓친 곳은 나중에 다시 가보자고 어렵지 않게 위안삼을 수 있었다. 빅토리아의, 빅토리아의 고풍스럽고 보수적인 이미지와는 웬지 잘 어울리지 않는 벽화. 다른 벽화들은 빅토리아의 역사와 풍물을 표현한 데 견주어, 이 벽화는 젊고 가볍다. 원색이어서 아무렇게나 찍어도 사진이 강렬했다. 밴쿠버에서 빅토리아가 있는 밴쿠버 섬으로 배를 타고 가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써리 근처까지 한 시간 가까이 운전해 내려가야 하는 츠와슨(Tsawwassen)의 터미널을 이용하는 것이고, .. 더보기
입사 1주년 달력에서 또 하루를 떼어내고 보니 9월30일. 아하, 지금 직장에 들어온 지 꼭 1년이 됐구나, 깨닫는다. 묘한 기분이다. 한 편으로는 스스로 대견하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웬지 서운하다. 누가 중뿔나게 '입사 1주년 축하!'라며 폭죽이라도 날려주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날 입사했던 친구는 채 10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그 친구가 있었더라면 커피라도 함께하면서 서로의 어깨를 다독였을 듯도 한데... 그나저나, 아마존에 주문한 '러너스월드'의 2015년 달력이 어제 도착했다. 2013년부터 사기 시작했는데 참 살뜰하게 잘 쓴다는 생각에 별로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매일 한 장 한 장 줄여가면서, 달리기와 관련된 상식, 조언, 팁, 영감 어린 명언들을 읽는 맛.. 더보기
떠나는 사람들, 혹은 떠나게 하는 회사 이젠 가을 햇살한낮의 햇살이 어느새 다시 반갑고 살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땡볕이 짜증스럽고 견디기 어려워 나무나 건물의 그늘만 찾아 걷던 게 불과 몇 주 전인데, 어느새 그 ‘한여름’이 지나간 게다. ‘8월 염천’이라는 표현을 쓰기가 민망한 밴쿠버지만, 직사 광선의 따가움이 불편하고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점심 시간의 산보는 늘 그늘이 잘 형성된 트레일로만 다니는 것으로 굳어졌었다. 그 시간의 정규 프로그램인 달리기도 새벽 시간대로 옮겨진 지 오래였다. 새벽 달리기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달리기 시작한 게 언제였더라? 가민 커넥트(Garmin Connect)의 기록을 보니 7월8일부터다. 이제 두 달 남짓 된 셈이다. 그 사이에 낮의 길이는 점점 더 짧아지는 대신 밤의 길이는 점점 더 길어졌다.. 더보기
린 캐년 공원 산보 9월1일이 노동절이어서 월요일까지 쉬는 '긴 주말'(Long Weekend)이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기가 웬지 미안하고 손해보는 느낌이어서 점심 직전, 근처 린 캐년(Lynn Canyon)의 트레일을 잠깐 걷다 오기로 했다. 막내 성준이는 숲길 걷는 게 늘 마뜩찮다. 지루하고 재미없다며, 'boring'을 연발한다. 그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거다. 숲이 많으면 도심이 그립고, 도심에만 있으면 숲이 그리운 거다. 카메라를 나무 난간 위에 놓고 타이머로 찍었다. 가족 사진이다. 성준이는 늘 찌푸린 표정이다가도 사진 찍는다고 하면 짐짓 '치이즈~!' 표정을 만들 줄 안다. 동준이는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설령 그게 저를 향한 게 아닌 경우에도 '치즈!'라고 말하며 고개를 쳐든다. 린 캐년 공원의 입.. 더보기
재미난 거리 이름 동네 근처를 뛰면서 거리 이름을 눈여겨볼 때가 있다. 지역마다 거리 이름을 정한 기준이 다른 것 같다. 내가 사는 동네는 흔히 '린 밸리' (Lynn Valley) 지역으로 통칭되는데, 그 때문인지 거리 이름마다 뒤에 '린'을 달았다. AlderLynn, AylesLynn (이건 읽기도 어렵다. 에일즈린인가?), ArborLynn, BelleLynn, BriarLynn, CrestLynn, Floralynn, GreyLynn, LauraLynn, MerryLynn, WestLynn, Viewlynn... 그런가 하면 유명 문필가들이 이름을 빌린 곳도 있었다. 린 밸리 윗쪽으로 올라가 프롬 산 (Fromme Mt.) 근처 골목을 지나가는데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워낙 긴 이름이니 눈에 띄지 .. 더보기
20원짜리 새책 어제 아마존에 주문한 책과 운동화가 도착했다. 이건 아마존에서 배송한 게 아니라 아마존에 일종의 가게를 낸 다른 책방 - 이 경우는 '베터월드북스'라는 곳 - 에서 온 것이다. 이 책은 작년에 나온 신간인데 책값이 20달러도 아니고 2달러도 아닌, 무려 0.02달러였다. 아마존의 할인 가격도 13.46달러인데 어떻게 20원일 수가 있을까? 그것도 새 책이? 혹시 6.5달러의 배송료에 책값이 포함되어 있을까? 어쨌든 6.52달러에 책을 샀다. 이것도 이른바 글로벌 경제의 한 영향일텐데, 그래도 머리 속에서 논리적으로 값을 이해하려니 쉽지 않다. 이건 아마존에 직접 주문한 사코니 (Saucony)의 미라지(Mirage)라는 신발이다. 주로 달리기 경주 때마다 신는 사코니의 킨바라(Kinvara)를 버릴 때가.. 더보기
미친 비용 청구서 나: 당신들 비용 청구서가 잘못된 것 같아서 전화 한다. 미국 앰뷸런스 서비스: 무슨 문제냐? 나: 청구 내역 중에서 'ALS1 Emergency'라는 항목이 있고, 그게 2,100달러로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 우리는 당신네 앰뷸런스의 응급 서비스를 받지 않았다. 당신들이 도착하기 전에, 마침 공항에서 비행편을 기다리던 사람들 중에 의사가 둘 있었고, 그 사람들이 응급 처치를 하고 우리를 도와줬다. 앰뷸런스는 그 뒤에 와서 내 아이를 싣고 근처 응급실로 옮겨주었을 뿐이다. 앰뷸런스: 그런 건 상관없다. 그 비용은 앰뷸런스가 출동할 때마다 부과되는 기본 비용이다. 나: 2천달러가 기본 비용이라고?? 앰뷸런스: 그렇다. 오늘 아침에 통화한 내용이다. 할 말이 없다. 정말 미친 것 .. 더보기
시모어 산 하이킹 시모어 산에 올랐다. 등산다운 등산을 해본 게 얼마 만인지... 아마 이민 온 이후 처음이 아니었을까? '하이킹 전문가'라고 부를 만한 직장 동료 숀과 함께였다. 숀은 틈만 나면 밴쿠버 인근의 산들을 오르고 캠핑을 하는 친구로, 주변 산들의 이름까지 거의 꿰고 있었다. 아래 사진들은 산을 오르며 찍은 것들. 토요일 오전 10시, 시모어 스키장의 주차장에서 출발해 1시간쯤 올랐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이곳 저곳에 쌓여 있었다. 초록색 반바지를 입은 친구가 숀이다. 나한테 하이킹의 재미를 경험하게 해준다며 오전 시간을 냈다. 이후에는 다른 친구를 만나 근처 비숍 산에 올라 1박2일 캠핑을 할 거라고 했다. 캐나다 서부에는 로키 산맥만 있는 게 아니다. BC 주 전체에 높고 낮은 산들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