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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Winter Redux 수요일은 봄이었다. 눈부신 햇살, 버스가 지나가며 일으키는 먼지, 서서히 물을 머금어 가는 나뭇가지... 아 이제 봄이 왔구나! 그러더니 목요일, 겨울이 돌아왔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한 기세더니 오후 2시쯤부터 눈발이 날렸다. 눈발은 점점 더 촘촘해져서 폭설로 변했다. 얼마 안 있어 온 도로가 눈에 뒤덮였고, 퇴근할 무렵에는 교통 사고 때문에 통근 버스가 우회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눈은 계속 내렸다. 어둑어둑 밤이 돼도 그칠 줄 몰랐다. 물기 머금은 눈은 묵지근해서 넉가래로도 잘 밀리지 않았다. 토론토에서 눈 치우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진저리가 처졌다. 다음 날. 눈발이 그친 듯하더니 오후에 다시 돌아왔다. 폭설은 아니었지만 펄펄 날리는 눈발의 기세는 여전히 만만치 .. 더보기
미줄라, 몬태나 올해 여름 휴가를 보내기로 한 곳이다. 가는 김에 하프 마라톤도 뛰기로 했다 (사실은 그 반대로, 마라톤 대회 일정에 맞춰 휴가 날짜를 잡았다 하하). 보스와 미리 상의하고, 허가를 '득'했음은 불문가지. 미줄라 (Missoula)는 몬태나 주의 한 도시. 주도는 아니지만 몬태나 주에서 가장 번성하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 (주도는 그보다 훨씬 더 작은 헬레나 (Helena)다. 인구가 채 3만도 안된다). 도시 인구는 7만이 조금 못되고, 그 주변까지 더하면 10만이 조금 넘는 정도지만 몬태나 대학이 있는 대학 도시답게 무척 개명한 동네로 꼽힌다. 아웃도어 전문 잡지인 '아웃사이드'는 미줄라를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동네'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로키산맥과도 멀지 않고, 인구 밀도.. 더보기
드디어 새알밭에서 스키 타기! 지척에 스키장을 두고도 스키 장비가 없어 차로 30분 이상 운전해 가야 하는 이웃 동네 '셔우드 파크'(Sherwood Park) - 공원 이름이 아니라 동네 이름입니다 - 에서 스키를 타곤 했는데, 얼마전 스키 장비 대세일 때 스키 일습을 구입한 덕택에, 드디어 동네에서 스키를 탔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스키는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는 다운힐 (Downhill) 스키가 아니라, 평지 (낮은 둔덕도 가끔 포함되지만)를 다니는 '크로스 컨추리' (Cross Country) 스키를 가리킵니다. 지난 3년 동안은, 계속 빌려서 탔습니다. 그래도 비용이 만만했던 데다, 크로스 컨추리 스키를 얼마나 타랴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겨울을 날수록 산을 내려오는 다운힐보다, 강이고 들판이고, 눈 쌓인 데면 어디든 내.. 더보기
주말의 폭설 금요일 밤부터 눈이 내렸다. 일찍부터 대설 주의보가 나온 상황이라 예상하기는 했지만 쉼없이 내리는 눈을 보는 마음은 별로 편치 못했다. 눈은 토요일 하루 종일 그치지 않았고, 일요일 아침에도 여전히 잔설을 뿌리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눈을 치웠는데도 밤새 내린 눈 때문에 치운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올 겨우내 내린 적설량 합계 (10cm 남짓)보다, 주말 사흘간 내린 눈의 양(15cm 이상)이 더 많다고 했다. 아침 먹기 전에 치우겠다고 했더니 아내는 아침을 먹고 다 함께 나가서 눈을 치우잔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 함께 눈을 치웠다. 물론 성준이는 늘 그렇듯이 너스레와 희소리에만 강했고, 정작 눈 치우는 데는 관심도 없었다. 눈 치운 자리 위로 자전거를 타기 바빴다. 오히려 동준이가 .. 더보기
성준이의 '수술' 오늘, 예정보다 열흘쯤 더 일찍 성준이의 이[齒]를 수술했습니다. '이를 수술했다'라고 하니까 표현이 좀 이상한데, 썩은 이를, 아니 이들을 치료하는 수술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썩은 이가 하필이면 어금니여서 뽑을 수가 없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약간씩 썩은 이가 세 개쯤 더 있어서, 어금니 부분은 덮고, 다른 부위는 긁어낸 뒤 코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썩은 이를 발견한 것은 벌써 몇 달 전입니다. 병원에 갔지만 여느 치과에서는 성준이처럼 어린애를 치료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취를 시켜야 하는데 그런 전문가와 시설이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그런 치과를 찾아갔더니 예약이 워낙 밀려 있어서 3월 초에나 된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게 지난 해 11월이었습니다. 그래서 12월 밴쿠버의 외할.. 더보기
태평양 띠의 한 점 토피노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 있는 토피노(Tofino)라는 곳에 갔다. 차를 2백대 넘게 싣는 거대한 페리로 한시간반쯤 바다를 건너 밴쿠버 아일랜드로 갔고, 그곳에서 다시 차로 3시간쯤 구불구불 산길을 달려 목적지에 닿았다. 이른바 '태평양 환'(Pacific Rim)의 한 점을 이루는 토피노는 그 주변의 절경, 하늘을 찌를듯 거대하게 치솟은 온대 우림의 거목들, 마치 띠를 두르듯 삼면으로 놓인 크고 작은 섬과 협곡의 해협, 드높은 파도 들로 수많은 관광객과 서핑 하는 이, 카약이나 카누 타는 이, 새 구경꾼 들을 끌어모으는 곳이다. 이 지역을 통할하는 클레이오쿼트 사운드(Clayoquot Sound)는 1990년대초, 그 일대의 벌채를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과 목재 회사들 간의 싸움 덕에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더보기
St. Andrews by the Sea, NB 세인트 앤드루스 여행 벼르고 벼른 끝에, 캐나다 이민 6년 만에, 드디어 해양주들 중 하나인 뉴브런즈윅 주를 다녀왔다. 웨스트젯 항공사의 4박5일 패키지로 세인트 앤드루스에 숙소를 잡고, 근처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위 사진은 숙소인 알공퀸 호텔. 호텔 자체가 세인트 앤드루스의 명소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그 위용과 아름다움이 각별하다. 세인트 앤드루스의 정식 이름은 세인트 앤드루스 바이 더 씨 St. Andrews-by-the-Sea, 말 그대로 '바닷가의 세인트 앤드루스'이다. 아마 스코틀랜드의 원조, 그리고 골프의 발상지이기도 한 세인트 앤드루스와 구별 짓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을 것이다. 세인트 앤드루스는, 거칠게 단순화한다면 콜로라도주의 애스펜, 혹은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주의 위슬러쯤에 해당한다... 더보기
에헤헤~헤, 에헤헤~헤, 에헤헤헤헤... 어릴 때 딱따구리 '우디 우드페커'를 참 좋아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다시 보고 폭력성이 좀 지나치다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디는 여전히 참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토론토의 다운타운, CN타워와 야구장인 로저스센터 (구 스카이돔), 농구/아이스하키장인 에어캐나다 센터 등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이 우디, 는 아니지만 그와 '동족'인 딱따구리 두 마리를 만날 수 있다. 만화속 우디는 이른바 '도가머리 딱따구리' 혹은 '붉은 북미산 딱따구리' (Pileated Woodpecker)라고 부르는 딱따구리인데, 만화에도 나온 대로 빨간색 머리가 아주 멋쟁이인 새다. 임학을 공부하고, 그 분야에서 잠깐 일을 할 때, 두어번 이 도가머리 딱따구리를 직접 보았다. 정말 예쁘고 매력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만화속 우디보.. 더보기
바다가 보이는 언덕 어제는 날씨가 맑았다. 화창했다. 시계도 좋았다. 그래서 잠깐, 집 근처를 산보했다. 집 근처 동네중 가장 그럴듯한 곳이 '리지우드 로드' (Ridgewood Road) 부근이다. 지대가 높아서 바다가, 아니 호수가 보인다. 사실 영어로는 그냥 비치 (beach)라고 하니까 해변인지 호변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말에서는 그게 차별된다. 온타리오 주는 바다와 면해 있지 않다. 따라서 온타리오 주에는 바다가 없다. 그러나 5대호 중 하나인 온타리오 호수는 '바다'라고 불러도 크게 손색이 없어 보인다. 특히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이건 바다와 다를 바 없다. 물이 짜지 않다는 점, 파도가 높지 않다는 점 정도가 다른 점이랄까? 실로, 가없이 뻗은 온타리오호의 수평선을 보면서 '이.. 더보기
알체스 알체스! 캐나다에서 무스(Moose)는 일종의 아이콘이다. 비버, 곰과 함께 캐나다를 상징하는 세 동물 중 하나로 꼽힌다. 곳곳에서 무스가 보이는 것도 따라서 별로 놀랄 것이 못된다. 토론토에서 발견되는 무스들은 그를 '예술화'한 것들이다. 무스 형상에 갖가지 색깔이나 장식을 덧입히는 일종의 '무스 프로젝트'가 있었던 모양이다. 여러 병원이나 이름난 건물 앞에, 온갖 컬러풀한 무스가 종종 눈에 띄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 중 진짜 매력 있게 보이는 무스 동상은 거의 없다는 사실... 진짜 무스를 보자면 한참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고... (북쪽의 숲속에 들어간다고 무스가 '나 여깄다~"라며 나타나주는 것도 아니지만...). 무스의 학명도 흥미롭다. 속과 종이 똑같은 알체스, 알체스이다 (Alces alce..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