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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꼭꼭 싸매라, 살 보일라...Bundle Up Warm!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하긴 이상 난동이 너무 오래 갔다. 12월부터 겨울이 시작된 것으로 쳐도 한 달 반 동안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적이 거의 없었던 셈이니, 에드먼튼과 새알밭의 겨울이 좀 유난스럽긴 했다. 그러더니 지난 토요일 밤, '
한랭전선이 서부 프레어리 (Prairie) 주로 향하고 있다'라는 경고가 날씨 사이트에 떴다. 드디어 시작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 식료품을 사러 집을 나서는데, 미니밴에 달린 온도계가 차고를 나서자마자 금새 -16도를 가리킨다. 그러더니 영하 19도와 20도 사이를 오락가락... 체감온도는 영하 25도였다. 간밤에 내린 눈을 치우는데, 밖에 노출된 볼이 금세 얼얼해졌다. 그 얼얼함의 감각이, '이런 날씨에서는 도저히 못 뛰겠다'라는 판단을 내려주었다. 그래서 새알밭의 커뮤니티 센터 겸 체육관인 서버스 플레이스(Servus Place)까지 차를 몰고 가서 트랙을 돌았다. 돌고 돌고 또 돌고... 참 사람들이 많았다. 집안에 있을 때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처럼 집안에만 콕 틀어박혀 이불 뒤집어쓰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데 와보면 전혀 별천지다. 아, 참 사람들 부지런하다 싶다. 전인권의 노래 그대로다.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속에 
다시 돌고- 돌고- 돌고- (춤을 추듯) 돌고 (노래하며)
운명처럼 만났다가 헤어지고 소문 되고 
아쉬워지고 헤매이다 다시 시작하고 다시 계획하고 
우는 사람 웃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속에
다시 돌고- 돌고- 돌고- (춤을 추듯) 돌고 (노래하며)

어두운곳 밝은 곳도 앞서다가 뒤서다가
다시 돌고- 돌고- 돌고- "

이번 주 내내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모양이다. 예보만 봐도 진저리가 쳐진다. 오늘 아침의 체감 온도는 영하 45도였다!


이런 추위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뼛속 깊이 스며드는 추위? 미친 추위? 그저 표현이 짧고 말이 짧다. 밖으로 나설 엄두도 안나고, 정말 어디 따스한 곳에 틀어박혀 겨울잠이라도 두어 달 자다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번 주 내내 영하 20~30도의 강추위가 기승을 부릴 전망인데, 이런 수준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애들을 운동장으로 내모는 학교들에서도 모든 야외 활동을 중단한다. 영하 20도가 일종의 문턱이다. 이보다 더 추워지면 실외 활동 금지다. 영하 10도만 돼도 피부를 노출할 경우 쉽사리 동상에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두 세배의 저온에서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블로그에서 '영하 20도가 마일드하다는 동네'라고 너스레를 떤 게 2009년이었다. 가급적이면 날씨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세상이 문명화 될수록, 또 신기술과 첨단 건축 기술, 난방 기술이 일상화 될수록, 날씨 변화는 사람들의 생활에 별반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한국에 살면서 계절의 변화, 날씨의 변화에 중뿔나게 민감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군대에서 지낸 기간을 제외한다면. 

그런데 캐나다에 와서 날씨에 무척이나 연연하게 됐다. 토론토에 살 때보다는 저 먼 북쪽 와와에서 살 때, 그리고 그보다 더 북쪽인 새알밭에 살면서 하루하루의 날씨 변화에, 특히 겨울의 기후에 주목하게 됐다. 기후가 혹독할수록 우리 삶은 그 영향권 아래 더 뚜렷하게 놓일 수밖에 없다. 

따뜻한 BC주로 이주해 볼까 여러 번 생각했고, 바라기도 했다. 지금도 옮길 마음이 굴뚝 같다. 문제는 급여 수준에서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내 분야의 경우, 적게는 연간 1만 달러에서, 많게는 4만달러까지 차이가 난다. BC쪽이 박하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 물가를 비롯한 생활비는 BC쪽이 10~15%쯤 더 비싸다. 도대체 저쪽 공무원/직장인들은 어떻게 살까? 그곳에 친구와 지인이 많은 내 중국계 동료는 "그냥들 산다"라고, 도인처럼 말했다. 그리고 그런 불리한 급여 조건임에도 사람들이 그 쪽으로 가는 이유는 "날씨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얘기가 잠시 다른 데로 흘렀다. 요는, 날씨가 지금처럼 요령부득으로 추워져 버리면 그저 따뜻한 어딘가로 날아가버리고 싶은 생각밖에 안든다는 뜻이다. 영상의 기온에서, 눈 쌓이지 않고 얼어붙지 않은, 뽀송뽀송한 도로나 트레일을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결국 중요한 것은 날씨에 너무 애면글면하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 희망과 낙관을 가지고... 어느새 밤 길이보다 낮 길이가 더 길어지고 있으니, 그만큼 봄도 멀지 않았을테고...(그런가?) 이까이꺼...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써 심상한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