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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雪国 밴쿠버 밤사이 눈이 내렸다. 적설량은 3 cm 안팎? 밴쿠버의 기준으로 보면 폭설이었다. 평소보다 늦잠을 자고 근처 정거장으로 나가 7시 버스를 기다렸다. 예정보다 5분쯤 늦게 온 버스는, 그러나 정거장 직전에서 210번이라고 적힌 신호등을 끄더니 그야말로 유유히, 그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나가 버리는 게 아닌가! 버스 안에 승객이 많았지만 더 이상 못태울 정도로 만원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고 비탈진 도로 - 명색이 '마운틴 하이웨이'다 -에 눈이 쌓여서 정차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눈은 이미 다 녹은 상태여서 미끄럽지도 위험해 보이지도 않았다. 대체 왜? "노쓰 밴쿠버 버스들이 저렇다니까요?" (Typical North Vancouver, eh?) 나처럼 그 버스를 기다리던 남자가 냉소적인.. 더보기
회의 출근길, 버스에서 내려 2, 300 m 바다쪽으로 걸어내려가면 보이는 사무실 풍경. 일곱시 무렵이다. 뒤에 보이는 'Province'라는 표지를 단 빌딩은 밴쿠버 지역의 양대 일간지 - 하지만 모회사는 같다 - '밴쿠버 선'과 '더 프라빈스'의 건물이다. 새 직장에서 일한 지 꼭 두 달이 됐다. 아직 여러가지로 헤맨다. 일이 달라 헤매고, 직장 문화가 달라 헤맨다. 누가 누군지 파악 못해 헤매고, 어디에 어떤 양식을 써야 할지 몰라 헤맨다. 분야 자체는 '프라이버시', 혹은 '정보 프라이버시'라는 말로 넓게 포괄될 수 있으므로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속내는 많이 다르다. 심지어 관련 법의 내용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작업의 강도와 밀도이다. 이미 모든 정책과 규정.. 더보기
스탠리 공원 순환로 토요일 늦은 아침, 자동차의 앞 유리 (윈쉴드'Wind Shield'라고 한다)를 갈려고 밴쿠버로 내려갔다가 일반 유리 대신 열선이 들어간 것으로 교체하기로 마음을 바꾸면서 작업 일정도 바뀌는 바람에 일도 못보고 곧장 다시 집으로 올라가야 할 처지가 됐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밴쿠버까지 내려온 이상 스탠리 공원에서 달리고 돌아가기로 했다 (본래 유리 교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밴쿠버 다운타운의 보도를 뛸 요량으로 이미 달리기 복장을 갖춘 상황이었다). 하늘이 꾸물꾸물, 언제라도 비를 뿌릴듯 회색이었다. 그 때문인지 날씨가 맑을 때보다 주변 건물이며 풍경이 더 가깝게 보였다. 스탠리 공원 초입에서 내다본 풍경. 아파트와 오피스 빌딩이 밀집된 다운타운 지역이다. 스탠리 공원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을 콘크.. 더보기
'그린 팀버' 도시 숲 아내와 아이들을 꼭 걷게 해주고 싶었다. 처가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그린 팀버 도시근교림' (Green Timbers Urban Forest)의 트레일. 총 183 헥타르 (약 450 에이커)에 이르는 커다란 숲이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숲 주위로만 걸어도 5 km쯤 된다. 나는 달리기를 주로 이 숲에서 했다. 해가 아직 떠 있을 때는 숲속 트레일들을 이리저리 돌았고, 어두울 때는 그 주변 인도로, 불빛이 있는 곳만 따라서 뛰곤 했다. '온대우림'이라는 이름답게 워낙 비가 자주 내리는 지역이다 보니 나무줄기는 하나같이 이끼를 덮고 있고, 고사리와 버섯이 지천이다. 부러진 나무는 저절로 썩어 비료가 되도록 내버려두었고, 그런 나무에도 이끼가 끼고 잎이 덮여 더더욱 '원시림' 같은 .. 더보기
스카이프 아내,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동안 스카이프(Skype)를 이용해 서로 얼굴을 확인했다. 구글 토크, 페이스북 등 다른 대안도 있었지만 본래부터 써와 익숙한 스카이프에 주로 의존했다. 카메라에 얼굴 들이대는 것이 마냥 재미있는 성준이는 카메라에 종주먹을 들이대며 집에 함께 있을 때면 수시로 하는 격투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주로 저녁 때 전화를 걸어서 그런지 동준이는 주로 '식사중'이셨다. 행복한 콧소리가, 엄마 쪽에서는 너무 시끄러웠겠지만 내게는 제법 흥겨운 노랫가락처럼 들리기도 했다. 오늘이 이삿날이다. 아내 혼자 잘하고 있을까? 아침에 전화를 했더니 이삿짐 트럭이 와서 짐을 싣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한 시간 시차가 나는 밴쿠버의 사무실에 앉아 있다. 새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자꾸 빠.. 더보기
밴쿠버 근황 점심 때면 걷는 산책로. 이 길을 따라 2 km쯤 더 올라가면 스탠리 공원으로 연결된다. 밴쿠버는 겨울이 혹독하지 않기 때문에 단열과 난방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그래서 크고 넓은 유리들로 이뤄진 건물이 유독 많다. 그런 건축 양식은 깔끔하고 시원시원한 느낌을 준다. 친구에게, 잘 지내지? 한국도 이젠 가끔 소슬바람 부는 가을이겠다. 가을녘이면 유난히 아침 커피가 더 맛있는 것 같다. 별일 없니? 한국에 들어갔을 때 잠깐 만나긴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재회의 기쁨을 제대로 누린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아쉽다. 나는 9월30일부터 밴쿠버의 새 직장에 다닌다. 정신없이 바쁘다. 모든 내용과 형식과 구조를 처음부터 만들고 꾸미고 세워야 하는 자리여서 심리적 부담과 압박도 상당하다. 이렇게 스.. 더보기
첫 출근 싱클레어 센터 빌딩. 내 사무실은 이 건물 3층에 자리잡고 있다. 여권 발급 업무를 해주는 캐나다 연방정부 부서도 이곳에 있다. 밴쿠버의 전통 빌딩 중 하나인 싱클레어 센터에는 베르사체 같은 고급 브랜드 상점들이 들어와 있다. 참 곤하게 잤다. 산악 시간대에서 태평양 시간대로 거슬러 올라온 덕택에 한 시간을 벌었지만 심신은 여전히 노곤했고 계속 잠을 불렀다. 5시30분에 알람이 울었다. 샤워하고, 가능하면 매일 하려고 하는 - 하지만 주말이면 건너뛰곤 하는 - 간단한 코어 트레이닝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사과며 귤, 바나나 따위 스낵을 챙기고, 비는 그쳤지만 혹시나 싶어 우산을 넣고, 밖으로 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5시59분이다. 스카이트레인 역까지 나를 데려다줄 버스를 타러 종종 걸음을 친다. 버스역까.. 더보기
비 내리는 밴쿠버에 오다 리치몬드의 밴쿠버 국제공항으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웨스트젯.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고, 간혹 거센 바람이 불어 기체를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했다. 9월29일/ 일/ 흐림, 비 약간 밴쿠버행 웨스트젯에 앉아 있다. 태평양 시간으로 오전 10시44분, 산악 시간대로는 11시44분, 점심 때다. 머리속이 멍하다. 내일부터 새 직장에 출근이다. 하지만 별다른 실감은 없다. 아직은 얼떨떨할 따름이다. 공항으로 오는 미니 밴 안에서, 성준이는 아빠만 밴쿠버에 가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자기도 같이 가면 안되겠느냐고 묻는다. 다음 주 목요일에 다시 볼 거라고 하자 금방 진정이 된다. 엄마 컴퓨터로 라퓨타에 나오는 로봇을 볼 수 있느냐고 또 묻는다. 안된다고, 아빠 컴퓨터로만 된다고 대.. 더보기
SOLD!! 드디어 집이 팔렸다. 지난 목요일 (19일) 집앞에 'For Sale' 간판을 내건 지 꼭 8일 만이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납덩이 하나 내려놓은 듯 속이 후련하다. 야호~! 아니, 만세~!라고 소리라도 마음껏 내지르고 싶은 기분이다. 아내는 집이 최종적으로 팔렸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밴쿠버의 부모님께, 또 한국의 언니들께 그 낭보를 달뜬 목소리로 전했다. 집을 과연 얼마나 빨리 팔 수 있을까, 어느 정도나 손해를 감수하고 팔아야 할까 걱정했다. 2009년 구입가는 35만3천달러. 여기에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부동산 중개료 1만5천달러를 더하면 아무리 못 받아도 36만8천달러는 받아야 그나마 큰 손해 안보고 팔았다고 할 수 있을 터였다. 이사 들어오면서 집안 전체를 마루바닥으로 바꾸느라 소비한 1만달러.. 더보기
이별 없는 시대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돌아온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기억은 이미 한 달이나 두 달쯤 지난 것처럼 아득하고 희미하다.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리며 뜨거운 김을 아지랑이처럼 피워올리던 아스팔트처럼, 내 두뇌의 일부도 예년보다 유난히 더 무더웠다는 8월의 폭염 속에서 기억 장애를 일으켰는지도... 한 달이나 휴가를? 그게 가능하냐? 한 달이나 휴가를 올 수 있다면 네가 그 회사에 필요 없다는 얘기 아니냐? 등등 온갖 덕담이나 악담 속에서, 정말로 한 달을 한국에서 - 그리고 나흘은 일본에서 - 보냈는데, 한없이 길 것만 같았던 시간은 마법사의 손 아래서 퐁~! 하고 연기를 불러일으키며 사라진 비둘기처럼 어느새 훅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포항으로 전주로 서천으로 청주로 서울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