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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봄맞이 장거리 달리기

4월27일로 예정된 빅서 마라톤까지 한 달 남짓 남았다. 올해 마라톤 등록이 마감되는 데 채 한 시간도 안 걸렸을 정도로 인기 폭발인 캘리포니아 주의 그 빅서(Big Sur) 마라톤이다. 작년, 아직 에드먼튼에 있을 때, 등록이 시작되자마자 접속해 등록하는 바지런을 떤 덕택에 나도 어찌어찌 이름을 넣을 수 있었다.빅서 마라톤은 바닷가를 따라 달리는 코스가 워낙 아름다워서, 평소 달리기에 그리 열성이 많지 않은 사람들조차 '죽기 전에 한 번 뛰어보자'는 일종의 '버켓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새 열정이 식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심신이 피곤해진 것인지, 달리기에 대한 열성이 표나게 줄어든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장거리는 고사하고 5, 6마일 단거리조차 빼먹은 채 주말을 고스란히 흘려보내기도 했다. 오른발의 아킬레스 건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그런 게으름에 더없이 좋은 핑곗거리를 제공했다.



이래선 안되겠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보스톤 마라톤 출전 자격은 언감생심, 적어도 탈없이 완주는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면 웬만한 기본 훈련은 꾸준해 해야 할터. 특히 매주 한 번씩은 적어도 하프 마라톤 거리 이상의 장거리를 뛰어서, 기본 체력을 유지해야만 했다. 앞으로 남은 6주중 적어도 네 번은 13~17마일 정도의 장거리를 뛰고, 나머지 2주 정도는 마라톤 체력을 비축하는 'Tapering'에 투자하기로 했다. 


한 주 내내 쾌청하던 하늘이, 주말이 되면서 먹구름을 모으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더 거세어지기 전에 뛰어버리자고 생각했다. 아침 7시30분쯤 집을 나왔다. 집 뒤, 시모어 산을 탈까 하다가,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출퇴근길, 버스로만 오가던 'Second Narrows Bridge'를 타보기로 했다. 여기에서 Narrows는 '좁은 수로'를 뜻한다. 라이온스 게이트 브리지(Lions Gate Bridge)와 더불어, 노쓰쇼어 (웨스트밴쿠버, 노쓰밴쿠버)와 밴쿠버/버나비를 잇는 두 다리 중 하나다. 


다리가 두 개밖에 없다 보니 교통량이 많은데, 오늘은 토요일인 데다 이른 아침이어서 다리가 한산했다 (위). 



그 다리 양 옆으로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인도/자전거 도로가 놓여 있다. 그 위에서 찍은 사진 중 하나다. 인도가 그처럼 좁은 이유는 가능한 한 차도를 많이 만들겠다는 의도 때문이기도 할테고, 워낙 다리가 긴 데다 양 끝이 주로 공장 지대여서 차를 이용하지 않는 보행인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더군다나 교통량이 많아서 소음이 여간 큰 게 아니다.



다리 위에서 밴쿠버 쪽으로 본 그림이다. 앞에 언급한 대로 배를 건조하는 회사가 물가에 있다. 모든 게 큼직큼직하고 거칠거칠하다. 주택가 특유의 아기자기함은, Second Narrows 양 옆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은 노쓰밴쿠버 쪽 풍경이다. 이쪽은 작은 배들을 정박해 두는 시설들로 빼곡하다. 개인용 배와 요트들이다. 오른쪽의 텐트 모양 건물들은 배를 보관하는 시설.



눈을 들어 더 멀리 바라보면 이렇게 밴쿠버의 마천루/다운타운과 항만 시설이 드러난다. 내가 이용하는 버스는 노쓰밴쿠버에서 저 멀리 다운타운까지 30분 안팎에 주행한다. 



바닷가 철도다. 곡물창고와 그 곡물을 실어나르는 철도 시설이다. 역시 소박하거나 낭만적인 맛은 없다. 



1.5 km쯤 되는 다리를 건너 버나비의 '달동네'로 허덕대며 올라왔다. 비탈이 가파르고 길어서 뛰는 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지만, 이것도 다 훈련이려니 생각하니 견딜 만했다. '달동네'라고 하지만 가난하다는 한국식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아담하거나 고급스러운 집들이 많이 몰려 있는 지역이다. 지대가 높아서 그만큼 전망도 좋기 때문이다.



버나비 지역의 트레일을 따라 달리다 노쓰밴 쪽을 찍었다. 



버나비에 자리잡은 셰브론(Chevron)의 정유 공장. 이렇게 밴쿠버 지역에 정유 공장까지 있는데도 정작 기름값은 정유 공장 하나 없고, 석유 운송비까지 고려해야 하는 빅토리아보다 리터당 20센트 가량 더 비싸다. 무슨 조홧속인지 모르겠다. 빅토리아가 BC주의 수도여서? 아무튼 불쾌하기 짝이 없는 불공정 행위이고 수수께끼다. 



버나비 지역의 한 주택가와 공원. 세컨드 내로우즈 다리로부터 꽤 멀리까지 달려온 터라, 자동차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아담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 주택가 주변을 돌면서 내려다 본 풍경 중 하나. 구름 낀 첩첩산중 지역이 노쓰밴이다.



어린이들이 놀고 있으니 조심하시오, 하는 경고 표지가 전봇대에 붙어 있다. 역시 토요일인 데다 가랑비까지 내려서 거리는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다리의 반대 쪽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하필 공사중이라 인도/자전거 도로를 이렇게 막아놓았다. 



Second Narrows Bridge의 정식 이름은 '철강 노동자 추모 다리' (Ironworkers Memorial Bridge)이다.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숱하게 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사고사로 목숨을 잃었고, 그래서 붙은 이름이란다. 



그 다리 옆으로 저런 탑 모양의 크레인 시설이 서 있다. 구체적인 용도는 잘 모르겠지만 웬지 위압적이고 흉물스럽다. 굳이 필요가 없다면 철거하는 게 미관상 더 낫지 않을까 싶은 구조물들이다. 



라이온스 게이트 브리지도 그렇지만, 이 다리도 그 밑으로 거대한 선박들이 많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반원형으로 가운데가 높이 올라간 형상이다. 그래서 이처럼 오르막길 풍경이 만들어진다. 



노쓰밴으로 돌아와, 강을 따라 난 트레일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막 피기 시작한 벚꽃, 잎들을 틔우기 시작한 나무들이 봄의 도래를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