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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게이먼, 마이클 코넬리...

잊기 전에, 무슨 책을 읽었고, 어떤 감상을 가졌는지 짧게라도 적어놓아야겠다는 조바심에서... 시간이 꽤 지난 탓에 소설의 줄거리마저 아슴하다는 게 아쉽다. 특히 Far Far Away는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



2013년 6월 출간. 내가 좋아하는 닐 게이먼의 신작. 하지만 기대만큼 큰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연작의 한 편, 또는 장편의 한두 장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싶은 느낌도 든다. 결말이 결말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몇십 년만에 서섹스 지방 시골을 다시 찾아 온 화자가, 길 끝에 작은 연못과 함께 자리잡은 낡은 농장을 찾는다. 장례식에 참석하러 왔다가 한두 시간 남는 시간을 소비하려 지향없이 돌아다닌 것인데, 자신도 미처 깨닫기 전에, 어린 시절의 믿을 수 없는 마술적 추억을 안겨준 그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 어린 시절 만났던 그 농장의 '헴스탁' 여인들 중 할머니와 어머니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아직 그곳에 살고 있다. 그보다 네 살 더 많았던, 믿기 힘든 모험이 벌어졌던 시절 열한 살이었던 딸은 없다. 40년도 더 넘은 과거에, 그 농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추억하는 것이 200쪽 남짓한 이 소설의 뼈대이다. 


평행 우주 이론을 떠오르게 하는 다른 세계들의 존재, 생명의 물 (오리들이 노니는 연못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소설의 제목 그대로 '대양'이다), 시간을 지키는 세 명의 여신 등 닐 게이먼 특유의 신화적 상상력이 이 소설에도 잘 살아 있다. ★★★☆



내가 좋아하는 또 한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단편 '잭나이프'. 오 헨리의 단편을 살짝 연상시키는 반전으로 읽는 재미를 높여준다. 해리 보쉬가 미제 사건을 다루는 'Open Unsolved Unit'에서 담당한 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아마존닷컴의 '오리지널 단편' 중 하나로 나왔다. ★★★ 


참고로, 코넬리의 해리 보쉬 시리즈를 소재로 한 영화 - 라고 해야 하나, TV물이라고 해야 하나? - 가 아마존닷컴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파일럿 프로그램은 코넬리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뼈의 도시' (City of Bones)를 영상으로 옮겼다.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감상해 보실 것. 타이투스 웰리버 (Titus Welliver)라는, 내게는 좀 낯선 배우가 보쉬 역을 맡았는데, 소설에서 묘사된 보쉬보다는 좀 나이들어 보이지 않나 싶다. 하지만 강렬한 인상이 보쉬의 성격과 잘 맞는 것 같다.



스웨덴의 민완 여형사이자, 주지츠(일본의 무술로 그로부터 유도가 발전됨) 유럽 챔피언 출신에, 일류 요리사를 남편으로 둔 복 많은 여자 아이린 후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헬렌 투르스텐의 신간. 15년여 전, 의문의 화재와 그로 인한 사고사로 후스가 인연 아닌 인연을 맺게 된 발레리나 소피 말름보그가 처참하게 불타 죽은 시체로 발견되면서, 여러 의문에도 불구하고 사고사로 처리된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수사 내용과 어쩔 수 없이 겹친다. 15년여 전에 벌어진 에피소드가 전반부에 소개되고, 후반부는 당시 후스가 만났던 사람들의 후일담이자, 어떤 점들이 그들을 '용의자' 선상에 올리는지 알려주는 단서들이다. 과로로 일시 기억 상실증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남편, 수사 대상인 발레리노 중 한 명과 사랑에 빠지는 딸 등 후스의 개인사도 흥미롭게 얽혀든다. ★★★★



무척이나 인상깊게 읽은 청소년 소설 (YA). 하지만 해피엔딩에 이르는 과정이, 심지어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나)마저 견디기 어려울 만큼 길고 힘들고 괴로웠다. 하지만 이것은 읽기 힘들거나 너무 잔인하거나 따분했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야기 속에 워낙 깊이 빠져들었기 때문에 주인공과 그만큼 절실한 교감을 나눌 수 있었고, 그래서 그가 고통받고 심지어 죽음의 위기에 몰릴 때, 독자들 또한 주인공이 느꼈을 절박감과 고통을 고스란히 맛보았다는 뜻이다. 


제레미 존슨 존슨은 한 유령의 목소리를 듣는다. 다름 아닌 '그림 동화집'의 그림 형제 중 한 명인 제이콥 그림의 목소리이다. 목소리를 듣지만 그를 보지는 못한다. 제이콥은 제레미를 도와주면서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암흑속 악의 존재로부터 지켜준다 (하지만 그 악의 존재가 언젠가 제이콥을 찾아오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청소년 동화, 라고 하기에는 이야기의 깊이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자못 깊다. 울림도 크다. ★★★★



읽다가 중도에 그만둔 책. 발상도 그럴듯함을 넘어, 실제 미국에 대한 테러리스트 단체나 다른 적국의 공격이 벌어진다면 이런 양상과 방식일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이다. 강력한 전자기 펄스 (Electro Magnetic Pulse (EMP), 핵폭발에 의해 생긴 고농도의 전자 방사)로 인해 순식간에 모든 전력이 끊기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묵시록적 시나리오이자, 미국 정부가 이런 공격에 대해 좀더 치밀하고 과학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읽다가 그만둔 이유는 소재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건 전개와 등장 인물들이 그저 그래서였다.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이 내 눈에는 미국의 전형적인 매파, 혹은 수구 꼴통처럼 비쳤다. 그게 참기 힘들었다. 또 한 가지 짜증스러웠던 것은 이미 여러 권의 소설에다 논문까지 낸 대학 교수면서도 'should have' 'must have' 같은 말을 'should of' 'must of'로 틀리게 쓴다는 점이었다. 미국의 저학력층에서 그저 들리는 발음을 좇아 그렇게 쓴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언필칭 중견 소설가이자 교수까지 그렇게 쓰는 줄은 미처 몰랐다. 더 황당한 것은 출판 편집자가 그것을 바로잡지 않았다는 점. 아무튼 별로 정이 안 가는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