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Belonging: Solidarity and Division in Modern Societies』 (소속된다는 것: 현대 사회의 유대와 분열)
지은이: 몽셰라 귀버나우 (Montserrat Guibernau)
출간일: 2013년 9월10일
출판사: 폴리티 (Polity)
종이책 분량: 242페이지
영국 런던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민족주의와 인종의 다양성을 연구하고 있는 몽셰라 귀버나우 교수는 개개인의 정체성과 자율성, 선택의 자유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개인주의’가 현대 사회의 한 특징을 규정한다는 일반의 통념이 잘못된 것이라는 문제 제기로 이 책을 시작한다.
오히려 어느 집단이나 조직, 공동체, 종교, 민족, 국가 등에 때로는 자율적으로, 때로는 강압에 못 이겨 소속됨으로써 한 개인의 정체성도 일정 부분 – 때로는 상당 부분 – 영향을 받고 새로운 양상으로 변모하거나 조정될 수밖에 없어서, 때때로 ‘개인적 정체성’(individual identity)을 칼로 무 자르듯 뚜렷하게 분리하거나 구별해내기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많은 경우 개인의 정체성은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된 상태 – 혹은 그렇다는 신화 – 에서보다, 그 개인이 스스로의 의지와 취향에 따라 특정한 집단이나 공동체를 선택함으로써 더 명료하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그 집단이나 공동체를 선택하는 순간까지는 개인의 자유 의지였지만, 일단 거기에 ‘소속’되면 그로부터 요구되는 일정한 규칙과 문법, 가치 체계, 의례 등을 따라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그 집단/공동체의 정체성과 화학 작용을 일으키면서 변화를 겪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은 또한 그 개인으로 하여금 정서적 애착을 불러일으키고, 같은 집단이나 공동체에 소속된 다른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공동의 가치와 정체성을 더욱 강화한다. 이런 흐름과 변화 양상은 온라인의 여러 커뮤니티나 특정한 정치적 지향성을 갖는 이익 단체, 시민 단체들에서, 또 심심찮게 발생하는 서로 대립하는 집단이나 단체들 간의 충돌이나 폭력 사태 등을 통해 쉽게 관찰된다.
귀버나우 교수는 또한 개인의 정체성과 특정 집단이나 공동체에 소속됨으로써 갖게 되는 변형된 개인 정체성 – 혹은 집단 정체성 – 을 일종의 정치적 기제로, 정서적 애착과 정치적 운동의 도화선으로, 독재 정권의 회귀를 부르는 단서로, 네오나치즘 같은 급우 세력의 발호를 야기하는 중대 변수로 바라본다. 그러한 시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영국, 스페인, 카탈루냐, 독일, 중동, 미국 등의 다양한 사례도 소개된다.
귀버나우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논점의 새로움은, ‘선택’을 통해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은 결국 그 개인의 ‘자유 의지’의 결과이며, 그로 인해 소속된 집단이나 공동체에 대한 자발적 헌신과 충성, 그리고 애착을 낳게 되는데, 이는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특정 집단에 소속된 경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질이라는 주장이다.
책의 구성
책은 감사의 말과 서문, 마지막 결론을 빼면, 모두 7장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장은 정체성 (identity)의 의미를 살펴본다. 그 가치가 현대 사회와 전통 사회에서 어떻게 다른지 짚는 한편, 전통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자아정체성 (self-identity)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개인이 누리는 자유와 사회적으로 존중되는 자유 의지의 정도도 두 사회에서 표나게 대비되는 항목이다.
부르카(burqa, 이슬람 교도의 여성이 착용하는 전신을 머리에서 푹 뒤집어 쓰는 느슨한 무릎 길이나 발목길이의 겉옷), 니카브 (niqab, 결혼한 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베일) 등을 입은 여성들이 서구 사회에서 불러일으키는 여러 논쟁 – 프랑스와 캐나다의 퀘벡 지역에서는 심각한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 – 을 통해 개인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설파한다. 그런 한편, 저자는 경제적 빈곤과 불확실성, 문화적 불안, 정치적 소외 등 현대 민주주의 사회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과, 도도하게 진행되는 글로벌화가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다.
2장에서 저자는 ‘선택에 의한 소속’의 의미와 결과를 따진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인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 단체에 소속되는 경우, 그는 그 집단이 요구하는 가치와 정체성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희생할 용의가 있다. 정서적 애착도 커지고 그 집단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도도 높아진다. 이는 ‘집단 정체성’ (collective identity)을 형성하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더 나아가 일종의 정치 세력화를 유도하는 엔진으로 작동한다.
3장은 소속된다는 것(belonging)의 이중적 속성, 즉 개인에게 일종의 힘/권력을 주는 한편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기도 하는 이중성을 언급하면서, 과연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를 위해 저자는 임마누엘 칸트, 에리히 프롬, 그리고 미셸 푸코의 저작들을 분석하고 그들의 이론과 주장을 요약하면서 그 주장의 맹점도 짚는다. 여기에서 저자는 또한 우리 각자의 생각과 견해는 유일하고 고유한 것이라는 주장의 ‘허구’도 밝혀낸다. 다시 말해 우리의 생각과 견해란 사실은 여론과 언론이라는 필터를 통해 우리 속에 자리잡은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견해는 우리 자신이 동의하고 소속되기를 원하는 가치와 집단의 정체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결론으로 연결된다.
이는 요즘 그 합의점을 찾을 길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한국 정치판의 극단적 좌우 대립이나 미국 정치판의 민주-공화 양당의 극한적 대립상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알려주는 한 단서로도 읽힌다. 또 자유는 개인의 독립성과 이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반면 소외감과 고독감도 안겨주게 되는데,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특정 집단이나 단체로의 소속은 그런 감정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로도 작동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4장은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의 자율적 선택에 의해 소속 집단과 단체, 혹은 공동체를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진행되는 극우 편향의 흐름이라든가 독재 치하에서 타율적으로 소속되어 휘둘릴 수밖에 없는 사례들을 전해준다. 또 그러한 극우파의 발호와 더불어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과 박해의 사례를 통해, 그러한 사회가 그 사회의 발전과 융성에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는 세력을 소외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5장은 어딘가에 소속되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제의나 의식을 다룬다. 또 특정한 집단이나 정치 운동이 거기에 소속된 구성원들의 결속과 충성심, 동질감을 북돋우기 위해 어떻게 다양한 ‘상징’(symbol)을 활용하는지, 2010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이른바 ‘중동의 봄’과, 스페인 내전이 끝난 뒤의 프랑코 정권을 통해 설명한다.
6장은 특정 집단이나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여러 형태의 압력에 못이긴 타율적 결과인지 따진다. 그를 위해 독재 체제와 민주주의 체제의 경우를 비교하는 한편, 같은 나라나 사회 체제인 경우에도 애국심이나 충성심이 평시와 전시에 어떻게 다른 가치와 잣대로 평가되고 요구되거나 허용되는지 짚는다.
7장에서 지은이는 특정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특히 그것이 정치 세력화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애착이 얼마나 긴요한 구실을 하는지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소속감이 주는 강력한 정서적 요소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거나 유도하느냐에 따라 해방의 기제로 선용될 수도 있고, 퇴행적 사회 운동으로 역행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 현상, 그리고 여러 구호성 단체들의 퇴행적 행태는, 귀버나우 교수의 책을 읽고 나면 놀라울 만큼 명료하게 분석되고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도저히 그 접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양 극단의 주의 주장도, 또 정서적 집착도, 저자가 제시하는 ‘힐링’ 프로세스를 통하면 어느 정도 치유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일정한 정서적 애착/집착이 주어진 공동체나 공적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가운데, 그 사회의 긍정적 발전과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여겨지는 정서적 애착을 골라내고 북돋우는 과정이다.
학술적 성격이 짙지만 현 한국 사회 – 그리고 미국 사회 – 의 퇴행적 정치 사회 현상을 고려하면 그 시의성과 설득력이 퍽 높을 것으로 여겨지는 책이다. 대중성은 없지만 진지하고 눈 밝은 독자들에게는 적잖은 시사점과 통찰을 안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