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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곧 인간의 본성인가 – 신경과학 결정론의 치명적 유혹

제목: Brainwashed: The Seductive Appeal of Mindless Neuroscience (뇌가 곧 인간의 본성인가 – 신경과학 결정론의 치명적 유혹)

지은이: 샐리 사텔 (Sally Satel), 스코트 O. 릴리엔펠드 (Scott O. Lilienfeld)

출간일: 2013년 6월4일

출판사: 베이식 북스(Basic Books)

종이책 분량: 226페이지


“내가 한 짓이 아니에요. 뇌가 그랬어요.”


범죄를 저지른 피고 변호인의 논리다. 피고의 뇌가 그렇게 하도록 강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일 뿐, 피고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 여기에서 두뇌와 그 두뇌의 임자는 돌연 별개로 분리된다. 말도 안 되는 논리 같지만 정신병을 이유로 감옥에 가는 대신 정신병원 감호 치료를 선고 받는 다수의 사례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을 반증한다. 뇌의 비밀을 더 깊이, 더 자세하고 완전하게 이해하게 되면 ‘뇌가 그렇게 하도록 강박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책임이 없다’는 논리가 더욱 일반적인 면책 사유로 굳어질지도 모른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사텔과 심리학자인 릴리엔펠드는 인간의 사고와 행태를 뇌세포 (뉴런)의 화려한 컬러 이미지로 변환해 보여주는 ‘기능성 뇌 자기공명영상’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 등 작금의 여러 뇌 주사 기법과 기술들, 그리고 그 내용을 선정적으로 과장하고 선전하고 보도하는 미디어의 행태가, 뇌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충분히 성숙했고, 따라서 그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마음을 읽는 일도 곧 가능해질 것이라는 위험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이 인간의 깊은 비밀을 모조리 벗겨내 줄 것이라는 ‘신경과학 결정론’, 그리고 그를 남용하고 때로는 악용하기까지 하는 시중의 갖은 장삿속 마케팅을 비판하는 한편, 그러한 흐름이 사회 전반의 문화적 인식, 정치사회적 시각, 그리고 법률적 맥락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검토한다. 흥분하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다양한 증거와 사례를 통해 작금의 신경과학 결정론의 허점을 지적하고, 뇌를 알면 인간의 마음도 읽을 수 있다는 기계적 단순화의 오류를 조목조목 짚는다.


이 책의 공저자 사텔과 릴리엔펠드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두뇌의 특정 영역들이 사랑, 증오, 기쁨, 슬픔 등 인간의 여러 심리적 경험을 드러내 준다며 그 증거로 자주 활용하는 fMRI 주사 기법이다. 이들은 그러나 fMRI는 사람들이 정신적인 직무를 수행할 때 벌어지는 두뇌 활동의 일부분만을 드러낼 뿐이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전체 양상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반박한다. 그러한 해석으로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예측할 수도 없을뿐더러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거대 제과 회사인 프리토레이(Frito-Lay)의 실험이다. 프리토레이는 더 많은 여성들에게 칩을 팔 요량으로 실험 대상이 된 여성들에게 fMRI를 시행한 결과 반짝이는 감자 칩 포장을 봤을 때 갈등이나 죄책감을 느낄 때 활성화된다고 알려진 전방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에서 더 왕성한 활동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판매량을 늘릴 목적으로 프리토레이는 감자 칩 포장을 무광택으로 바꿨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전방대상피질에서 나타나는 활동은 고통, 의사 결정 및 동기 부여 등과도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두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해서 그것을 어느 단일하고 특정한 생각이나 감정과 단순 연계하는 것은 위험할뿐더러 부정확하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또 한 사례는 2006년 인종 차별적 성격을 드러낸 내용으로 논쟁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고대디닷컴(GoDaddy.com)의 슈퍼볼 광고였다. 그에 대해 한 신경과학자는 이 회사의 광고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안겨주면서 두뇌의 ‘쾌락 센터’를 활성화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측했다. 그러나 광고 직후 고대디닷컴 사이트에 대한 방문자 수는 무려 16배나 급증하면서 그 전망의 오류를 보기 좋게 입증했다. 두뇌의 어느 부위가 인간의 특정 감정을 지배한다는, 1 대 1 연계(mapping) 시도는 지나친 단순화와, 두뇌의 복잡성에 대한 우리 이해의 부족을 시사하는 증거임을 다시 한 번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화려한 색깔로 활성화된 두뇌 부위를 표시한 사진은 신경과학에 무지한 대부분의 일반인들조차 눈길을 돌리게 만들 만큼 매력적이고 자극적이다. 언론 매체들에서, ‘이것이 사랑할 때의 당신의 두뇌 모습이다!’ ‘이것이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의 두뇌 모습이다!’ 등과 같이, fMRI 주사 기법을 통한 여러 연구 결과를 귀가 솔깃할 법한 내용으로 풀어 – 혹은 과장해서 – 보도하는 것도 그러한 매력과 무관하지 않다. 


출처: 10 ways to trick your brain into feeling like you're in love


이를 장삿속에 이용하는 것도 따라서 놀라운 일은 아니다. ‘뉴로마케팅’, 혹은 ‘신경 마케팅’은 어떤 제품의 광고나 정보에 노출됐을 때 사람들의 뇌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연구해 그 결과를 마케팅에 응용하는 기법으로, 구글, 페이스북 등 내로라 하는 회사들이 예외 없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뉴로마케팅의 실제 효용성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이 분야의 관심과 (섣부른) 응용과 시험은 지나칠 정도로,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활발하다.


저자들이 한 장을 할애해 심도 깊게 논의하면서 의문을 제기하는 또 한 가지 주제는 두뇌가 약물 중독, 범죄 활동, 윤리적 사고를 통제한다는 세간의 주장이다. 이는 그렇기 때문에 두뇌의 독특한 활동과 연계된 것이 분명할 때, 그러한 약물 중독이나 자행된 범죄의 결과를 장본인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와 이어진다. ‘내가 한 게 아니에요, 내 두뇌가 한 짓이에요’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것이 옳지 않다고 반박한다. 약물 중독이나 범죄 활동은 ‘내 의도나 뜻과는 무관하게 두뇌가 그렇게 강박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장본인에게 분명히 물어야 하고, 이것을 알츠하이머나 치매 등과 같은, 실제로 개인의 의지나 생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질병 현상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적절한 치료가 동반될 경우 약물중독자들의 대부분은 정상으로 돌아갔고, 약물 중독 증세도 사라졌다. 결국 본인의 의지와 동기의 문제이며, 그것과는 무관한 만성 뇌 질환들과는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이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런 한편 이들도 인정한 대로, 신경과학/뇌과학 결정론적 사고와 추세는 요즘의 도도한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거기에 심각하고도 근본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 두뇌가 단지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뜻이 된다. 이는 사회적 규범과 우리 자신의 윤리적 제도를 무화하는 결과를 낳고, 이는 과학의 차원을 넘어 철학 차원의 논의를 요구하게 된다면서, 저자들은 마지막 장에서 진지하고 깊이 있는 철학적 논의를 시도한다. 그리고 윤리적 책임성, 어떤 행위는 질타하고 어떤 행위는 칭찬하는 사회적 규범의 중요성을 차분하게 역설한다. 


사텔과 릴리엔펠드의 접근법은 시종 침착하고 중립적이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직설하지도 않고, 특정인을 공격하거나 깎아 내리지도 않는다. 현실의 다양한 사례와 연구 결과,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와 주장을 적절하게 인용해, 저자들만의 일방적 주장이나 견해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소지를 최소화하면서 균형된 시각을 잘 유지했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움도 있다. 하나는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샐리 사텔이 미국의 공화당계 정책 연구 기관으로 기후 변화를 부인하는 ‘미국 기업 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상임 연구원이어서, 책 자체의 내용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후 변화를 둘러싼 저간의 정치적 역학 관계를 아는 독자들에게는 꺼림칙한 느낌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책 자체에 대한 아쉬움으로, 150페이지 남짓한 짧은 분량이 뇌과학/신경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체 왜 뇌과학 결정론이 그처럼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는지, 현재와 같은 뇌과학 연구와 그 적용이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까지 좀더 구체적으로 밝혔다면 더 종합적인 비평서가 됐을 것이다. 내 별점은 ★★★☆ (다섯 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