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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송별회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한국인 동료들. 온타리오 주정부에서 일하면서도 단 한 명의 한국 사람도 만나지 못했는데, 그보다 도리어 더 규모가 작은 앨버타 주정부에서는 제법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이번 주 내내 점심 도시락을 쌀 일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덜 미안했다. 지난 한 달간 집을 팔기 위해 짐 싸고, 버리고, 옮기고, 숨기고, 정리하느라 무진 애를 쓴 아내는, 어제 저녁 결국 몸살 기운을 드러내고 말았다. 지난 월요일에 집을 사겠다는 제안(오퍼)이 두 개 들어왔고, 두 제안 모두 좋은 조건이어서 더없이 다행스러워했지만, 집을 완전히 팔기 위해서는 '주택 검사'(home inspection)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집에 큰 하자 - 특히 구조상의 결함 - 가 없다는 주택검사 전문가의 판정이 나와야만 거래가 성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일인 어제 저녁, 우리가 수락한 구매자의 주택검사 전문가가 약 세 시간 동안 집 안팎을 꼼꼼히 살펴보고 갔다 (실제로 세 시간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예약된 시간이 저녁 5-8시였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우리로서는 아직 안갯속이다. 집에 별 문제가 없으리라고 보지만 구조 자체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집안 깊숙이 어딘가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는지는 우리도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직장에서는 모든 게 정리와 파장 분위기다. 내 사무실에 들르는 사람들도 이곳 이야기보다는 저곳, 밴쿠버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개중에는 밴쿠버 지역을 잘 아는 축도 있어서, 그들로부터 이런저런 정보도 얻는다. 그들이 예외없이 하는 이야기는 "너 이제 달리기는 원없이 뛰겠다"라는 것. 에드먼튼에 살면서도 열심히 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눈과 혹한이 없는 밴쿠버 쪽이 달리기에 훨씬 더 수월하리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지난 4년여 동안 나와 가장 가깝게 일했던 동료들. 


지난 주부터 이 동료, 저 동료 들과 송별회를 겸한 점심을 먹었다. 주로 저녁에 몇 차씩 넘어가는 회식으로 송별회를 거듭해 가끔은 떠나가는 동료를 이 세상으로부터 송별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만들기도 하는 한국과 달리, 캐나다의 송별회는, 특히 직장 송별회는 거의 100% 점심 때 열린다. 그리고 막판, 오후의 업무 시간 중 한두 시간을 따로 내어 공식 송별회성 '티 파티'(tea party)를 연다. 물론 이것도 당사자가 별 탈 없이, 본인의 의사로 직장을 떠날 경우의 얘기다. 해고를 당하는 경우에는 직장에서 1년을 근무했든 10년을 근무했든, 해고 통지와 동시에 사무실 밖으로 쫓겨난다 (이런 경우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어쨌든 나는 운이 좋은 셈이다. 아직까지는. 이런 이별의 절차랄까 양식이 보여주는 한국과 캐나다의 차이는, 달리 보면 1차적 관계가 승한 사회(한국)와 2차적 관계가 승한 사회(캐나다) 간의 차이이기도 하고, 집단주의와 서열적 수직 질서에 기반한 사회(한국)와 개인주의에 뿌리박은 수평적 사회(캐나다) 간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캐나다에서의 이별, 특히 이직에 따른 송별의 의식은 가볍고 얇다. 김준현의 열연이 돋보이는 개콘의 인기 코너 '편하게 있어' 같은 상황은, 캐나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16개월짜리 '리더십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다른 부처의 다양한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는 우리 팀의 멘토 노릇을 한 분이다. 


어느덧 목요일이다. 30번 가까이, 매달 만들어온 부서의 뉴스레터만 마무리하면 이곳에서의 일도 모두 끝이다. 오늘 점심은 이곳에 근무하는 다른 한국인 동료들과의 '2차 점심'이다. 지난 주에 한 번 점심을 먹었는데, 그래도 한 번쯤 더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와서 또 하기로 했다. 오늘 오후 2-4시에는 부서에서 마련한 송별 티 파티가 있고, 저녁에는 평소 친하게 지냈던 직장 동료의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내일 점심은 역시 가깝게 지냈던 중국인 동료 두 사람과 함께하기로 했다. 


동료 샌디가 만들어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샌디는 Telus에서 25년을 일하고 은퇴했다가 다시 알버타 교육부로 들어온 시니어 매니저인데 늘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성실함으로 나를 감탄시키곤 했다. 배울 점이 정말 많은 분이다. 이번에도 온라인 교육 코스를 날더러 들어보라고 추천했다.


한국의 '눈물나는 송별회'에 견줄 바야 못되겠지만, 그래도 이곳의 만남과 헤어짐 또한 퍽 인간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토론토에서 송별회를 할 때도, 늘 '북미 사람들의 인간 관계는 얕다'라고 삐딱하게 여겨왔던 내 생각을 고쳐먹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도, 마치 한국에 가서 새삼 실감했던 것처럼, 그저 막연히 '동료 몇 명과 점심 한두 끼 먹으면 그만이겠지'라던 생각은 오산이었음을 확인한다. 스스로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이렇듯 많은 동료들과 추억을 공유하고, 정을 쌓았구나, 라고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좀더 잘할걸, 하는 후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