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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꿈, 그리고 다시 밴쿠버

오늘 아침 달림 길에서 만난 거미줄. 그 위에 맺힌 이슬. 사는 일은 이처럼 팍팍하다. 혹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밴쿠버냐 에드먼튼이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눈을 뜨니 새벽 4시다. 악몽...까지는 아니지만 찜찜한 꿈을 꾸었다. 심난한 꿈 때문에 깬 것인지, 오줌이 마려워 깬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잠이 들지 않았다. 꿈은 군대, 그 중에서도 소위로 임관해 훈련받던 시절의 것이었다. 내가 소속된 중대를 찾지 못해 헤매는데, 이미 부대는 각 중대별로 나뉘어 훈련지로 이동하고 있었다. 화장실을 들어갔는데 - 그것도 뜬금없는 예술의전당 화장실 - 세면대마다 구멍이 막혀 오물이 가득차 있어서 손을 씻을 수도 없었다. 문도 온통 오물 투성이어서 밀고 나오기가 여간 끔찍하지 않았다. 내 소총과 철모, 군장은 어디로 갔나? 길은 꼬불꼬불 아득하고, 내 소속 중대는 여전히 보이지 않은 채, 상관의 겁주는 명령 고함이 사방에서 들리는 가운데, 훈련병들은 저마다 정해진 훈련지로 사라지고 있었다. 


꿈을 정확히 기억내기는 대개 어렵고, 설령 제대로 기억한다고 해도 글이나 말로 옮겨보면 도무지 이치에 닿지를 않는다. 다만 그 꿈의 행복하거나 찜찜하거나 슬프거나 무섭거나 한 '느낌'만이 생생하게 남았다가 시나브로 잊혀지기 십상이다. 꿈의 다른 대목은 잘 모르겠지만 더러운 화장실은 포항에서 단양으로 올라오던 길에 만난 한 휴게소의 화장실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꼭 사우나실처럼 무덥고 후텁지근했던 그곳 화장실의 세면대 하나가 씻고 난 더러운 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는...모르겠다. 이미 제대한 지 20년이 넘었다. 예비군 훈련까지 착실히 마치고 이민을 떠난 마당이다. 그런데도 군대 꿈은 가끔씩 컴백한다. 제대한 직후에는 자주도 꾸었다. 남들처럼 다시 입대하는 식의 악몽은 아니었고, 점호를 취하고, 모든 병사들이 잠자리에 든 다음, 어둑신한 내무반들을 순찰하는 꿈이었다. 병사들, 특히 소대원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꿈이었다. 그런 꿈에서 깰 때마다, 소대원들에게 좀더 잘해주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 때문이었을 거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훈련 중에 허덕대는 꿈은,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무려나 군대 꿈은 이제 사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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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늘 어렵다. 어느 쪽을 고르든 안갯속처럼 흐릿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가깝고도 먼 밴쿠버'라는 제목으로 밴쿠버로 갈 뻔한 이야기를 쓴 게 한달 전이었다. 그런데 그 밴쿠버의 꿈이 다시 돌아왔다. Job offer를 재고해 줄 수 없겠느냐는 연락이 다시 날아온 것이다. 내가 제의를 고사한 직후 다시 구인 정보가 웹 사이트에 붙은 걸 봤는데, 그 결과가 마뜩치 않았던 모양이다. 중뿔나게 인터뷰를 잘한 것도 아니고, 커버레터와 이력서말고는 나에 대해 제대로 알 만한 정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닐텐데, 저쪽에서는 나를 너무 좋게 본 것 같았다 (그것도 실은 부담이다). 커버레터 (Cover Letter)는 자기소개서와 비슷하지만 무슨무슨 직책에 대한 광고를 어디에서 봤고, 그 일자리를 지원한다, 상세한 내용은 이력서를 참조하시라는 내용의, '소개서'라고 부르기도 부족한, 1/2~2/3 페이지짜리 짤막한 편지여서, 지원자의 실체를 파악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 얼굴을 본 적도 없다. 한 시간 남짓 온라인 화상 통화로 진행한 인터뷰가 전부다. 


이번에 달라진 내용은 이사비를 대주겠다는 것, 그리고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 2주간 -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를 스스로도 민망하다고 여길 만큼 높게 봐주는 이가 나와 같은 한국계여서일까? Job offer를 수용한다면 내 직속 상관이 될 프로그램 디렉터는 나보다 열 살쯤 어려 보이는 한인 2세다.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 정도밖에 못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무늬만 한국인인' 캐나다 친구인데, 적어도 온라인 화상 통화로 본 인상은 퍽 쿨하고 명민해 보인다. 함께 일하면 재미도 있고, 배울 것도 많을 사람 같았다. 


내가 가부를 결정해야 할 말미는 다음 주 금요일(23일)까지다. 가뜩이나 피서 아닌 입서(入暑)를 하게 된 셈이어서 하루하루가 고역인 마당에, 가외의 고민까지 떠맡고 말았다. 짐짓 아무일 아니라는듯 생각 밖으로 밀어내 버리면 잠을 청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오늘처럼 잠깐 잠이 깬 틈에 그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버리면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건 어떻게 하고 저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사는, 집은, 애들은...등등 온갖 시시콜콜한 고민이 밀물처럼 엄습해 잠을 잃어버리고 만다. 


벌써 다섯 시가 다 됐다. 동네 한 바퀴나 뛰고 와야겠다. 하루종일, 아니 밤까지 한증막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은 한국의 낯설기 짝이 없는 여름의 열기 속에서, 뛰는 일은 과히 유쾌하지 않다. 그래도 마음의 탈출을 가능케 해주는 유일한 출구로 달리기만한 것은 아직 없다. 머릿속을 잠시 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