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얘기

그림으로 정리해 본 주말

금요일 저녁. 가깝게 지내는 이웃, 그리고 한 직장에 다니는 한국인 후배 가족과 저녁을 함께했다. 위 사진은 그 후배 가족의  아이 클레어(지윤). 이제 15개월. 성준이가 클레어를 무척 예뻐해준다. 이것저것 보여주고 차 태워주고 신났다.


토요일 낮. 동준이와 성준이를 오티즘센터의 놀이 프로그램에 맡기고 아내와 둘이서 영화를 보러 에드먼튼의 초거대 실내 쇼핑 센터인 '웨스트 에드먼튼 몰'(WEM)에 왔다 ('세계 최대'라는 기록은 깨졌지만 '캐나다 최대'라는 기록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간이 빠듯했던 데다 몰 주차장이 차들로 인산인해 아닌 차산차해여서 차 댈 곳 찾느라 헤맨 탓에 영화 앞부분 4, 5분을 놓쳤다. 


우리가 본 영화는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Yann Martel)의 2002년 만 부커상 수상작 'Life of Pie'를 각색한 동명의 영화. 소설을 읽은 지는 퍽이나 오래 됐지만 막판 반전으로 충격 받은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늘 수작을 내놓는 재주꾼 이안 감독의 뛰어난 감각과 솜씨, 소설에 대한 이해는 이 영화에서도 충분히 발휘되었다.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특히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통해 표현된 소설의 메시지, 삶의 비극적 아이러니는 시각적으로도 충격적이라 할 만큼 지극히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현되었다. 다만 영상미가 지나치게 빼어난 탓에 - '빼어난 영상미를 구현하는 데 너무 집중한 탓에'라고 해야 할까? - 파이 파텔이 바다 위에서 표류하며 겪는 고난의 감정은 도리어 축소된 느낌이었다. 아니, 호랑이와 한 배를 타고 표류한다는 파이 파텔의 이야기 자체를 일종의 환타지로 본다면 그런 식의 초현실적 영상미가 도리어 더 맞는 선택이었을까? 아무려나 영화의 전체적 완성도는 실로 감탄할 만했다. 특히 영화로 만들기 어렵다고 여겨진 일종의 우화 소설을 이처럼 훌륭하게 스크린에 옮긴 이안 감독의 감각이 돋보였다. ★★★☆


극장에서 나와서 재미삼아 인증샷. 카메라가 흔들렸다.


최근 큰 기대를 가지고 구입한 '핸슨 형제의 마라톤 훈련법.' 걸었던 기대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의 마라톤 훈련법이 가진 비과학성, 오류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훈련법이 가진 과학적 논리를 제시한다. 지금까지 느슨하게 따라 왔던 'Run Less Run Faster' 대신 이 책의 훈련 스케줄을 따라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버리는 것은 아니고, 인터벌 훈련에서 요구되는 페이스는 그대로 적용한다). 새 계획을 따를 경우 주말의 롱 런은 20마일이 아닌 16마일까지로 축소되지만 주중 달리기의 양이 늘어나고, 그 성격도 'Speed Work' 'Strength Training' 'Tempo Run' 등으로 더 다양해진다. 5월5일의 밴쿠버 마라톤까지가 첫 훈련 사이클이다.


핸슨의 마라톤 훈련법 시행 첫 날. 8마일 'Easy run'이 오늘의 메뉴였다. 내 경우 'easy'란 마일당 8분48초~9분28초대로 뛰는 것인데, 페이스를 조절하는 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 그보다 조금 더 빠른 기록 (8분40초)이 나왔다. 몸의 컨디션을 스스로 읽고 느껴서 정확한 페이스를 맞출 수 있어야 할텐데 그게 쉽지 않다. 주말이면 적어도 하프 마라톤 이상으로 뛰어 온 참이라 8마일 정도만 뛰고 돌아오니 몸이 날아갈 것처럼 상쾌했다.


뛰는 코스 중에 있는 새알밭의 곡물 창고. 두 개가 서 있는데 여기선 하나만 잡혔다. 더 이상 실제로 쓰이지는 않고 관광용이자 마을의 전통을 상징하는 건물로 서 있다. 


달리기 마치고, 점심 먹고, 새알밭 도서관에 왔다. 책 돌려주고, 책 빌리고... 더 오래 있으면 가방 터질 지경으로 성준이가 어린이 책들을 물어올 것 같아 곧바로 나왔다. 물론 성준이가 관심 갖는 책은 차나 비행기가 들어간 것들. 


새알밭 시청, 도서관, 박물관 등이 한데 입주해 있는 '새알밭 플레이스.' 거울에 비친 모습이다.


그리곤 집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 언덕에서 눈썰매 타기. 오늘은 날씨도 화창하고 기온도 그리 낮지 않았는데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타기에 한층 더 쾌적하고 여유가 있었다. 다들 크로스컨추리 스키 타러 갔나? 동준이의 눈썰매 기술은 이제 '달인'이 됐다 할 만큼 향상됐다. 


성준이는 아빠랑 주로 탔다. 엄마랑 몇 번 탔는데 그 때마다 눈썰매가 거꾸로 돌거나 언덕 중간쯤에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드물게, 아빠를 선호했다. 재미있었다. 


눈썰매 타러 서둘러 뛰어 올라가는 성준. 무척 오래 탈 것 같지만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언덕으로 다시 올라가는 게 제법 운동이어서, 10분여 타고 나면 땀이 난다.


주말을 이용해 시에서 새알밭 거리의 눈을 본격적으로 치웠다. 우리 집앞으로 대형 제설차가 와서 한동안 제설 작업을 벌였다. 봄이 오기 전에 이런 제설 작업이 한두 번 더 진행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쌓인 눈의 산. 그 둔덕 너머로 보이는 게 우리 집이다. 


집에 들러 눈썰매 타기로 젖은 옷 갈아 입고 다시 서버스 플레이스의 수영장에 갔다. 동준이와 성준이 둘다 무척이나 좋아하는 곳. 성준이는 이곳의 워터슬라이드 타는 데 재미를 붙여 짧은 코스와 긴 코스 합쳐 열 번쯤 탄 것 같다. 뱅뱅 돌아가는 물길 따라 놀기, 따뜻한 핫텁(Hot tub)에 몸 담그기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 엄마 아빠는 핫텁에 눌러앉아 몸이나 지지고 싶은 마음이지만... 어쨌든 이렇게 주말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