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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6년의 비투멘 '겨울'

눈덮인 알버타주의회사당. 멀쩡한 저 돔을 얼마나 더 비까번쩍하게 손질하려고, 한겨울에도 덮개로 덮고 공사중이다. 이른바 '비투멘 거품'이 몰아치기 직전의 '돈 낭비' 사례 중 하나다. 


Bitumen Bubble


모든 문제는 저기에서 비롯했다. 비투멘 거품. 10년쯤 전의 '닷컴 거품'을 기억하시는가? 비투멘 거품은 닷컴 거품의 알버타 판쯤이라고 보면 된다. 알버타산 석유를 뽑아내면서 기업들이 내던 로열티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알버타 주 정부가 예측했던 매출액도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렇게 로열티가 갑자기 떨어진 직접적인 원인은 알버타가 석유 수출을 100% - 그렇다 100%다 90%도 아니고... - 의존했던 미국이 태도를 바꿔 그 동안 채굴하지 않았던 자국 석유를 활용하기로 결정한 탓이다. 그 때문에 석유가 나오는 노쓰다코타 같은 주는 요즘 난리다. 창고 같은 방 하나 빌리는 데 월 200만원 넘는 돈을 줘야 하고, 그나마도 없어서 문제다. 숱한 사람들이 트레일러에 살거나 승용차 안에서 기식하며 돈을 번다. 먼 옛날의 서부 개척 시대가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르포 기사).


물론 알버타의 석유 채굴지는 여전히 바쁘다. 포트맥머리 지역은 노쓰다코다보다 더 오래 전부터 황금광 시대, 혹은 서부 개척 시대를 연상시키는 풍경을 연출해 왔다 (캐나다 잡지 왈루스의 르포 기사). 하지만 작업량은 비슷한 대신 그로부터 정부에 떨어지는 로열티는 반토막났다. 그게 문제다. 본래부터 집권 여당이 지난 해 총선에서 이기려고 지나치게 장밋빛 시나리오로 예상 매출액을 잡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예상치와 실제 매출액 사이의 차이가 하루 평균 7천만달러 (약 800억원)씩 난다고 한다. 10억달러 정도로 잡았던 올해 예산 적자도 40억달러 수준으로 풍선 불리듯 늘어났다. 


앨리슨 레드포드 수상이 '비투멘 거품' 운운할 때부터, 우리 - 알버타주 공무원들 -은 이미 '감'을 잡았다. 아, 또 급여 동결 바람이 불겠구나. 아니나다를까, 어제 주정부의 차관 대표가 공무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거기엔 주 정부의 결정을 알리는 PDF 문서가 첨부 파일로 붙어 있었다. 2013년 회계년도가 시작되는 4월1일부로, 향후 3년간 관리자(manager)와 비노동조합원들의 급여를 동결한다는 것. 관리자들은 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노동조합에 소속된 직원들의 급여 문제는 조합과의 협상을 통해 결정될 것이다. 


문제는 그 발표의 내용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수라는 사실이었다. 급여 동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향후 3년간 관리자의 숫자를 10% 줄인다는 것 (나도 그 관리자들 중 한 사람이다). 알버타 주정부의 관리자는 4,800명 정도다. 480명 정도를 쳐내겠다는 얘기다. 그로써 절약되는 비용은 5,400만달러 정도란다. 40억달러 적자를 메꾼답시고 짜낸 생각이 고작 사람 자르는 거다. 수많은 경제전문가, 씽크탱크들이 판매세를 신설하거나, 더 나아가 세금을 신설해야만 지하자원에만 의존해 온 알버타의 취약한 경제 여건이 안정된다고 고언하고 직언하고 조언했으나, 도대체 무슨 생각에선지 수상과 여당 정치꾼들은 '세금 신설만은 안된다'라고, 마치 세금이 무슨 성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사래를 쳤다. 알버타주는 주 세금이 없다. 캐나다에서 유일하다. 이웃 BC 주나, 온타리오 주의 경우 연방세와 주세를 더해 13%의 세금을 주민들에게 물리지만 알버타주는 연방세 5%만 물려 왔다. 경제 활성화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사람을 자르고, 급여를 깎거나 동결하는 쪽보다는 급여는 시중 금리 수준에 맞춰 올릴 수 있도록 정상대로 가면서 
세금 - 직접세든 간접세든 -을 물리는 쪽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놈의 정치꾼들은 당장의 표를 의식해, 실제로는 만회할 수 없는 해법인데도 '우리 이렇게 절약하기로 했다'라며 헛 생색을 내는 쪽을, 다시 택하고 말았다. 


'Penny-wise, pound-foolish'라는 속담이 있다. 돈을 헛쓴다는 얘기다. 평소에는 이리저리 방만하게 수백만, 수천만, 심지어 수억 달러씩 낭비하다가,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사무실의 불을 끄자, 전기를 아끼자, 급여를 동결하자 난리를 친다. 정말 놀고들 있다. 정치 체제의 비논리성, 정치꾼들의 탐욕과 우매함은 만국 공통인 듯하지만, 그런 비논리와 탐욕과 우매함의 뜻하지 않은 희생자가 될 때, 그러면서도 되받아칠 만한 힘과 위치를 갖지 못했을 때, 그 때 맛보게 되는 절망과 분노는 실로 깊고 강렬하다. 입으로는 수없이 '비전'을 말하고, '전략'을 짖어대지만, 막상 몸이 보여주는 것은 한치 앞 위기만 어떻게든 회피해보려는 너절하고 초라한 근시안적 반응뿐이다. 최소한 3년은 유지돼야 한다는 저 비전이, 저 전략이, 외부의 변수에 휘둘려 채 1년도 못가는 마당이니 밑도 끝도 없는 한치 앞 몸가림에 급급한 처지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지난해 타계한 전 알버타 주수상 피터 로히드는 탁월한 정치력뿐 아니라 현명하고 장기적인 비전 때문에 더욱 존경받았다. 그는 지하자원(석유, 천연가스)에 의존한 알버타 주의 경제가 언제든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취약성을 가졌다고 판단하고 그 때를 대비하자며 '헤리티지 펀드'를 조성했다. 그게 30년 전이다. 한편 노르웨이도 알버타 주를 본받아 비슷한 펀드를 10년 뒤에, 그러니까 20년 전에 조성했다. 지금 노르웨이의 헤리티지 펀드에 예입된 금액은 약 6,600억달러(약 700조원), 하지만 10년이나 더 오래 저축해(?) 온 알버타 주의 펀드 금액은 300억달러에 불과하다. 로히드의 경고를 무시하고, 후임자들이 꾸준히 예금하지 않은 탓이고, 저 펀드의 이자를 곶감 빼먹듯 전용한 결과다. 


알버타 주의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가 돌자 그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다른 주들은 서로 짜맞추기라도 한듯 입 모아, 알버타 주 정치인들의 근시안적 국정 운영, 장기적 전망이 결여된 정책 결정이 빚은 예상된 결과라고 지탄하고 있다. 그 지탄 속에서 '내 그럴 줄 알았지!', '잘코사니다!'라는 잔인한 심사를 느끼는 것은 꼭 내가 알버타 주민이어서만일까? 


3월7일, 레드포드 주 수상이 2013년의 예산안을 발표한다. 그게 어떤 내용일지, 그 얼개는 그려지지만, 주 정부 공무원들에게 가해질 고통의 정도는 예상되지 않는다. 나는 2009년 알버타 주로 오자마자 3년간 급여 동결 폭탄을 맞았다. 작년에 처음으로 4% 인상의 단맛을 봤는데, 1년 만에 다시 '3년간 급여 동결' 폭탄이 날아왔다. 이번 3년을 더하게 되면 도합 6년이 된다. 아니, 그 이전에 관리자 숫자를 10% 줄이겠다는 더 무서운 지뢰밭을 과연 무사히 피해갈 수나 있을지 여간 걱정스럽고 심난하지 않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내용을 더욱 그럴듯하게 갈고 닦으면서 다른 기회를 미리미리 찾아보는 것도 한 생존 방법이겠지.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