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얘기

뒤숭숭한 금요일

“케빈, 어제 소식 들었어?” 동료 에버렛이 내 사무실 큐비클 안으로 얼굴만 쏙 내밀고 묻는다. 


“에버렛! 아니 어쩐 일이야, 이렇게 일찍?” 아직 7시30분도 안됐다. 나는 일찍 출퇴근하는 유연 근무제를 골라서 아침 7시30분 (대개는 7시15분)에 출근해 오후 3시30분(대개는 45분)에 퇴근하지만 에버렛은 보통 8시30분쯤에나 출근한다.

“어제 소식 들었어?” 다시 묻는다. 어제 발표된 2013년 알버타 주정부 예산안 얘긴가?

“어, 들었지.”

“로스한테서?”

“로스? 아니, 무슨 일인데?” 예산안 얘기가 아니었다. 그제사 문득, 어제 오전 10시쯤 디렉터의 호출을 받고 나서 로스의 종적이 묘연하다는 에버렛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내 사무실로 가서 얘기하자.” 에버렛의 사무실로 갔다. 문도 닫아 걸었다.

“로스가 어제 해고됐어.”

“뭐라고?!” 로스는 나와 같은 부서에 있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다. 사는 동네가 같아 가끔 버스 대신 그의 차를 얻어타고 퇴근하기도 했다.

“어제 10시에 CIO랑 인사부 사람과 만나 그 자리에서 해고 통보 받고, 곧바로 경비가 에스코트해서 데리고 나갔어.”

“해고 사유가 뭐였는데?”

“근무 성적 저조 (underperforming)였다더군. 로스 말고도 어제 아놀드, 팻도 해고됐어. 공석이 된 두 자리는 아예 채용하지 않기로 했고. 다섯 명이 해고된 셈이지.”


알버타 주의회사당 건물. 저 꼭대기 돔은 목하 업그레이드 중이다. 


오늘 따라 하늘이 파랗다. 햇살이 따뜻하다. 기온은 영하지만 눈부신 햇살 덕택에 세상이 더없이 안온해 보인다. 하지만 마음속 날씨는 온통 먹구름이다. 심난하고 을씨년스럽다. 어제 2013년 주 정부 예산안이 발표되기도 전에 교육부의 정규직원 30명, 파견 직원 35명이 해고됐다 (예산안 발표는 오후 3시였고, 해고 통보는 오전 중이었다).

어제 오후 네 시에 부서 긴급 회의가 있었는데 나는 일찍 퇴근하는 바람에 그런 일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오늘 출근해 보니 온통 뒤숭숭하고 놀라운 소식뿐이다. 오전에는 차관보가 내가 소속된 부서의 전직원을 긴급 소집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브리핑을 해줬다. 자신이 아는 한 정규직 중에서 추가 해고되는 일은 없겠지만, 관리자 급에서 추가 해고가 단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관리자 급’에 포함된다). 교육부 소속 관리자가 230명쯤 되는데, 그 중 10%를 덜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으니 23명은 해고의 비운을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공석이 된 뒤 미처 채워지지 않은 자리들, 정년퇴직을 염두에 둔 고령 관리자들을 고려하더라도 누구에게 해고의 철퇴가 떨어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온타리오 주를 떠나 알버타 주로 오고 나서 1년쯤 뒤에, 내가 소속된 부문 전체가 사라지고, 부문장인 차관보가 “다른 기회를 찾아보기로” - ‘해고’의 완곡어법, 혹은 위장어법이다 - 하는 사태가 벌어진 게 2010년이다. 그 때 이웃 부처는 100명이 넘는 직원을 잃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교육부도 큰 타격을 입었다. 아침에 출근해, ‘이 비디오를 꼭 보라’고 당부하는 교육부 차관의 이메일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서늘한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올해, 또 한번 알버타 주정부가 ‘예산 적자’의 경보를 발령하고, 바로 곁에 앉았던 동료가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몰리는 현실을 보면서, ‘공무원 = 철밥통’은 그저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다음 주 화요일부터 일주일간 휴가인데, 혹시 휴가 타이밍을 잘못 잡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 이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