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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보스톤 마라톤 참사



"보스톤 마라톤에서 폭발 사고가 나 사람이 죽었대."


달리기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점심을 먹는데, 옆 자리의 동료가 칸막이 옆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내게 말을 건넨다. 평소 워낙 말수가 적은 전형적인 'IT 가이'여서 복도에서 서로 마주쳐도 눈 인사조차 드물게 나누는 사이여서, 나로서는 이 친구의 그런 태도 변화가 다소 의외였다. 그런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네가 달리기를 하고, 보스톤 마라톤 얘기하는 걸 들어서, 이 소식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친절하게 설명까지 붙였다. 


불과 몇십 분 전에 남녀 우승자와 기록을 확인한 터라, '보스톤 테러' 소식은 그야말로 큰 충격이었다. 그럴리가?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생각들이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토론토에서 함께 일했던 옛 동료가 내게 안부를 묻는 글을 올렸다. 너 보스톤 마라톤에 간다는 얘기 들었다. 괜찮으냐? ... 내년 대회에 등록하려 한다는 얘기를, 올해 대회에 나간다는 말로 잘못 알아들은 모양이다. 


아니다, 내년 대회에 등록할 계획이다. 나는 괜찮다. 걱정해줘서 고맙다...


심난하다. 그리고 화가 난다. 저런 짓을 저지른 자들의 생각과 의도를,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질 못하겠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42.195km를 달려온 사람들에게 환호성을 보내고, 격려의 박수를 쳐주는 그 무고한 사람들을에게 저렇듯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하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들도 인간인가?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만행 아닌가?!


환희와 감격과 드높은 자긍심으로 가득찼어야 할 마라톤의 결승점이, 피와 눈물과 비극의 아수라장으로 돌변해 버렸다. 그것도 북미에서 가장 유서깊고 큰 사랑을 받는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뜻하지 않은 비극의 희생자가 된 망자들께는 명복을, 그리고 부상한 이들께는 빠른 완쾌를 빈다. 


관련 기사: 뉴욕타임스뉴요커, 보스톤글로브, CNN


덧붙임: 온갖 못과 베어링 볼 등을 압력솥에 넣어 터뜨린, 이 비열하고 잔혹한 테러로 숨진 세 명중 특히 한 사람이 언론의 주목을 더 받았고, 내 눈과 마음에도 밟혔다. 바로 마틴 리차드라는 여덟살바기 사내아이이다. 폭발사고 당시 마틴은 여섯살 난 여동생 제인, 엄마 드니즈와 함께 결승점으로 들어오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승선을 통과한 아빠를 만나 기쁨을 만끽한 뒤 관중석 쪽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러나 사제 폭탄이 터지면서 마틴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엄마는 뇌상을 입었고, 여동생 제인은 다리를 잃었다고 한다. 


결승점을 통과해 아내와 아이들을 껴안으며 함께 기뻐하리라 기대했던 그 아빠 입장이 되어본다. 그 아빠의 마음이 되어본다. ...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