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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밴쿠버 섬 휴가 (2) 부차트 가든, 그리고 빅토리아

6월23일(화) - 부차트 가든

화요일 아침, 파크스빌을 나와 빅토리아에서 멀지 않은 '브렌트우드 베이'라는 동네로 갔다. 토론토에 관광을 가면 나이아가라 폭포를 빼놓을 수 없듯이, 밴쿠버 섬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 혹은 그런 것처럼 여겨지는 - 곳이 있다. 바로 부차트 가든 (Butchart Garden)이다. 로버트 핌 부차트와 그의 아내 제니 부차트가 1900년대 초, 본래 석회암 광산이던 곳을 개조한 부차트 가든은 문을 열자마자 높은 인기를 누렸고, 지금은 매년 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밴쿠버 섬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국립 사적지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후배도 "밴쿠버 섬에 오면 꼭 가봐야 되는 데가 있다던데...무슨 가든이라고 하던데요?" 하며 부차트 가든을 거론했을 정도다. 나는 아내와 결혼하기 직전인 97년에 아내의 부모를 뵈러 인사차 밴쿠버에 들렀다가 한 번 온 적이 있을 뿐이지만 부차트 가든의 한 코너는 기억에 남아 있다 (아래 사진). 아내는 95년과 97년에 두 번 왔었고... 



위 사진은, 온갖 다종다양한 유형의 꽃과 나무를 심어 관리하는 부차트 가든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침상원(沈床園) (sunken garden, 지면보다 한 층 낮은 정원). 정원은 주마간산 식으로 대충 훑기만 해도 족히 두어 시간은 걸릴 정도로 크다. 찬찬히 살펴보려 한다면 족히 하루는 잡아야 할 것이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장소라는 생각인데,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이 유독 많았다. 


일본 정원의 정자식 전망대에서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똬리를 틀고 앉아서 음식을 X먹고 앉아 있는 바람에 거기에 서서 사진을 찍거나 돌아볼 처지가 못되었다. 그 꼬락서니가 하도 보기 싫어서 못 참고 한 마디 했다. "다른 관광객들도 많은데 이렇게 자리를 독점하면 어떻게 합니까? 에티켓을 좀 지키셔야죠!" 그러자 한 남자가 "거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운운 했다. 대꾸도 하기 싫고, 더 언성이 높아지는 것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냥 등 돌리고 나와 버렸는데, 나중에 보니 그 자들도 몇 분 있다가 자리를 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싫건 좋건 더불어 살아야 한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고, 내가 좋으면 남도 좋다. 그러니 다른 이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심사와 욕망을 가졌음을 인정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마땅한 것 아닌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게 싫을 때가 종종 있다. 그 순간에도 그랬다.



6월23일 (화) - 빅토리아

빅토리아로 내려오니 아직 이른 오후다. 호텔이 아직 체크인을 받아줄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해서 짐만 부려놓고 주변을 산보했다.



호텔이 빅토리아 다운타운, 내항(內港)과 가까워서 인기 관광지들을 둘러보기에 그만이었다. 위 사진은 BC 주의회사당 앞에 선 성준이와 '아이언맨 마크 42' (그에 따르면 저 아이언맨은 '오리지널'이 아니란다. '42'는 그로부터 마흔두 번째 모델이라는 뜻). 



6월24일(수) - 빅토리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 하지만 급히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호텔 근처에 에밀리 카 하우스와 더불어 문화유적지로 지정된 '성 앤 아카데미' (St. Ann's Academy)와, 빅토리아에서 가장 큰 '등대 언덕 공원' (Beacon Hill Park)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 주변을 산보했다.




6월24일(수) - 귀가 

빅토리아에서 나나이모로 다시 올라가, 디파처 베이에서 페리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배 안에서 사 마신 커피 맛이 영 별로였다. 집에 와서 다시 커피를 내렸다. 좋다. 길든 짧든,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얼마나 크고 깊은 안도감이 몰려오는지... 


여행을 떠나는 목적이나 이유 중 하나가, 집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기 위한 일종의 자극제나 치유법은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짧았지만 즐거웠던 여행. 집이 주는 안도감의 다른 한 편으로, 다음에는 어디를 가볼까라는 방랑벽이 스물스물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