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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몸의 소리


지난 주말 (6월6일)에 뛴 휘슬러 하프 마라톤의 한 장면. 트레일이 퍽 아름다웠지만 비탈을 오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진 출처는 Rob Shaer Photo.


어제는 정말 긴 잠을 잤다. 일곱 시를 갓 넘은 시점부터 졸리기 시작해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그의 지블리 스튜디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넷플릭스로 보다가 절반도 넘기지 못하고 TV를 껐다. 그리곤 이 닦고 잠자리로 직행했다. 중간에 잠깐씩 잠이 깨기는 했지만 오늘 아침 6시 반이 가깝도록 자고 또 잤다. 


꿈도 꿨는데 - 늘 꾸겠지만 꿈의 기억은, 대개는 눈 뜨면 즉각 휘발해 버리지 않는가 - 그 중 하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마 우스워서 그렇겠지. 언덕에 놓은 자전거 헬멧이 바람에 떠밀려 길고 아득한 언덕 아래로 떼구르르 굴러 달아나는데, 마치 축구공처럼 아주 빠르게 잘도 달아났다. 가파른 초원 주위로는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꿈 속에서조차, 저렇게 멀리 굴러가버렸으니 되찾기는 틀렸다. 이 참에 새 헬멧 장만할 핑계가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하. 


지난 몇 주간 피곤하다고 느끼기는 했다. 내 운동량이 지나친 것은 아닐까 자주 자문하기도 했다.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데 소모되는 칼로리만 해도 1,000 칼로리가 넘는다는 점이 일단 문제다. 출근할 때는 400칼로리 안팎, 퇴근할 때는 오르막길이 많아 보통 600칼로리를 넘는다. 자전거를 타기 전까지는 5-6마일(8-10 km) 달리기를 해도 하루 500-600칼로리를 운동으로 소모하는 데 그쳤다. 자전거를 타면서부터는, 달리기를 하지 않고도 그 두 배 가까운 칼로리를 소모하게 되었다. 거기에 5-6 마일 정도의 달리기를 추가하면 1,500-1,600칼로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 않다. 게다가 여름철에는 새벽에 뛰기 때문에 점심 때는 뛰는 대신 걷는다. 3-4km는 족히 걸으니까 이것도 200-300칼로리… 그러니까 자전거를 타면서부터 평소 운동량의 두 배가 넘는 칼로리를 매일 소모하게 된 셈이다.


어제의 경우만 따져봐도 새벽 달리기 5.6마일 (607 C) + 자전거 출근 7.52마일 (381 C) + 점심 걷기 2.68마일 (274 C) + 자전거 퇴근 8.3마일 (789 C) 해서 총 에너지 소모량은 2071 칼로리였다. 



Lower Seymour Conservation Reserve (LSCR)을 탈 때 찍은 사진. 저 빨간색 짐바구니 (Pannier)는 Thule 제품인데 (Pack'n Pedal Commuter Pannier), 디자인도 예쁘지만 실용성, 내구성, 편의성 등 거의 모든 면에서 'A'를 받을 만하다.


물론 칼로리 소모량을 곧장 피로도의 지표로 삼는 데는 문제가 있다. 정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몸이다. 몸이 두뇌로 알려주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 최근 몇 주일 간은 계속 ‘피로하다’였다. 주말에 연이어 16k 트레일 레이스와 하프 마라톤을 뛰었고, 그 사이에 매일은 아니지만 하루 이틀 건너 달리기를 지속했다. 평일에는 물론 자전거 통근을 고집했고… 


사실 여기에서 ‘고집’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자전거를 통근의 수단으로, 계절과는 상관없이, 삼겠다고 오래 전에 이미 결심한 터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자유다!'라는 식의 거창한 표어를 내세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온전히 내 다리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의 매력은, 타면 탈수록 거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온몸 가득 맛보는 짜릿한 쾌감은,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혹은 내 몸이 헤치며 나아가는 바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버스를 기다릴 필요도 (시간표에 맞춰 나타나주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얼마나 많았나!), 만원 버스 안에서 차가 급출발 급정거를 할 때마다 괴로워 할 필요도, 버스 안에서 누군가 새된 기침을 해대서 힐끗힐끗 그 쪽을 쳐다보며 속으로 불안과 짜증을 삭일 필요도,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차 안에 갇혀 오도가도 못한 채 무력감과 짜증을 느낄 필요도 없다. 온전히 내 뜻과 바람대로 어디로든 갈 수 있게 해주는 자전거의 매력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울 만큼 크고 깊고 다채롭다.


어쨌든 일주일 단위의 달리기/주행 거리는 보통 100마일 (160 km) 안팎이다. 실은 ‘안’보다는 ‘팎’인 경우가 더 많다. 자전거 타기와 달리기 사이에서 아직도 균형을 못 찾고 있다. 다른 누구에게 물어본다고 답이 나올 사안도 아니다. 결국 ‘내 몸’ 아닌가.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 따라서 좀더 꾸준히, 시행착오를 통해 최적의 균형을 찾아내는 수밖에...


오늘과 내일, 달리기를 쉴 참이다. 일요일에 15마일 (24 km) 정도 장거리를 천천히 뛸 계획이고… 내 몸이라지만, 그 몸의 소리를 제대로 듣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