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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휘슬러 하프 마라톤


퍽 오랫동안, 몇 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하는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그 탓인가, 집에서 휘슬러까지 120km 남짓밖에 안 되는데도 꽤나 멀다고 느껴졌다. 구불구불, 휘슬러로 가는 길은 실로 장관이었다. 높은 산맥과 그 사이로 그림처럼 놓인 바다와 호수. 묵기로 한 호텔에서 경주 참가에 필요한 패키지를 받을 수 있어서, 더욱이 하프 마라톤 출발점이 도보로 1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지척이어서, 집에서 저녁을 먹고 밤 여덟 시 넘어 휘슬러에 닿았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여름이어서 여덟 시가 넘은 시간도 대낮처럼 훤했다.



대회장인 휘슬러 빌리지 올림픽 플라자. 투숙한 호텔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닿았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지만 방향을 잘 몰라 좀 헤맸다.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를 기념한, 거대한 오륜 조형물이 광장 한 가운데 서 있다. 

 


레이스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서 올림픽 플라자의 인파도 부쩍 늘었다. 사진에 보이는 인파의 대부분은 하프 마라톤보다 20분 앞서 시작되는 10K 경주의 참가자들이다. 10k 경주는 7시30분, 하프 마라톤은 7시50분에 시작된다.



중간 생략하고 곧장 결말이다. 이야기로 따진다면 기승전결 중 승과 전을 빼고 곧바로 '결'로 온 모양새다. 골인 지점을 막 통과하자마자 나를 반기는 가족을 만났다. 



이건 아내가 찍어준 사진. 휘슬러 하프 마라톤은 언덕이 많았다. 휘슬러가 산촌일 뿐 아니라 캐나다에서 가장 큰 '휘슬러 블랙콤 스키장'의 본고장인 것을 고려하면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다행인 것은 달리기 코스에 겨울철 스키장 코스는 들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덕은 많았으나 뛰어서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가파른 언덕은 코스에 없었다는 얘기다. 지난 주의 MEC 16k 트레일 경주와 견주면 이번 대회가 도리어 더 쉬운 편이었다. 그래서 내심 지난 주의 기록 (1시간37분) 안에 하프 마라톤을 끝내보자는 목표를, 뛰는 도중에 세웠다. 결과적으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휘슬러 마라톤은 여러 달리기 관련 잡지들에서 '코스의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하프 마라톤' 중 하나로 꼽는 대회이다. 그래서 주최측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프 마라톤 대회 중 하나라고 자랑했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좋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알타 호수 근처나 산보하기 좋은 숲속의 트레일이 아름답고 풍성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 세계 '탑텐'에 꼽힐 정도일까 살짝 의심스러웠다. 달리기 바빠 주변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고,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은 탓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코스 디자인은 '절대로' 탑텐에 들지 못할 것이라고. 기본적으로 커브가 너무 많다. 아래의 코스 지도에서 보면 잘 드러나지만 바투 돌아야 하는 코스가 너무 많다. 오르내리는 언덕이 많다는 것은 휘슬러라는 지리적 특성을 감안하면 당연하기도 하고, 휘슬러 대회만의 개성으로 내세울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코스 자체는 너무 꼬불탕 꼬불탕하면 바람직하지 않다. 후반 어느 지점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몰라 잠깐 헷갈리기까지 했다. 머뭇거리니까 누군가가 오른쪽, 오른쪽! 하고 소리를 질러주었다. 그래도 전체적인 감상은 긍정적이다. 매년 뛸 대회도 아니고, 경험 삼아 뛴 것이니, 너무 까탈스럽게 구는 것도 진상스러울 수 있겠다.




휘슬러 하프 마라톤이 다른 대회와 다르다고 느껴진 또 한 가지 대목은 - 찾는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 완주 메달 대신 그림을 준다는 데 있었다. 휘슬러 지역의 예술가가 그린 그림을 한 점씩 주는데, 올해 받은 그림은 아래 사진과 같다. 아마 휘슬러, 혹은 그 주변의 장려한 겨울 풍경을 묘사한 것일텐데, 분위기가 썩 괜찮았다. 표구해서 벽에 걸어둘 만해 보였다.



아래 머그는, 결론부터 말하면 잘못 집어 온 것이다. 골인하자 마자 그림이 든 튜브를 받고 돌아서는데 성준이가 곁에 늘어선 컵을 가리키며 하나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별 생각없이, 대회 참가자들에게 주는 기념품이려니 짐작하고 집어들었다. 호텔로 돌아와 컵에 적힌 글을 보니, 이런, 10k 참가자들에게 주는 상품이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