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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건강 검진


린 계곡 상류 지역 (Lynn Headwaters)의 트레일과 시모어 보전 지역 (Lower Seymour Conservation Reserve, LSCR)은 이런 비포장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출퇴근용 '도시형' 자전거로 덜컹대며 트레일을 타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 덜컹거림이 재미의 절반은 넘었다. 저 위로 가는 길은 라이스 호수 (Rice Lake)로 가는 길인데, 자전거 옆 표지판이 알려주듯 개도 자전거도 출입 금지다. 나는 그냥 노르코 자전거를 모델로 사진만 찍었을 뿐, 저 길을 타지는 않았다. 정말이다. 


오늘 하루 휴가. 3월이 끝나기 전에, 그러니까 2014년 회계년도가 끝나기 전에 소진해야 할 휴가 일수가 며칠 남아서,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하는 날 중 하루다. 회계연도가 끝나갈 무렵이면 늘 그렇듯이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그렇다고 휴가까지 내놓은 마당에 집에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내일 더 바빠지겠지만…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 그런데 이런 속담이 정말 있기는 한 거냐? - 쉬는 김에 신체 검사를 예약했었다. 몸에 이상은 없는지 혹시 암이나 뭐 그런 병징은 나타나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건강 검진인데, 이번이 3년여 만인 것 같다, 알버타 주에 살 때 한 번 했으니... 


한국은 보통 회사에서 거의 강제로 직원들더러 건강 검진을 받으라 독려하는 모양인데, 그건 참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여기는 그런 게 없다. 내가 다닌 직장들에만 없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그래도 온타리오 주정부, 알버타 주정부, 해서 둘 다 정부 기관이었는데, 그런 곳에 '의무 건강 검진' 제도가 없었다면 다른 기업이나 기관들에도 없다고 보는 게 영 억측 같지는 않다.) 


그게 이해도 되는 것이, 이 나라에는 사람들에게 ‘너 이거 해야만 해!’라고 강제로 시키는 게, 아마 세금 신고 말고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사실 흔히 부각되곤 하는 게 ‘큰 정부가 문제’라고 하는 터에 이거 해, 저거 해, 개입하면 문제만 더 커질 공산이 크겠지. 


독감 예방 주사도 본인이 안 맞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백신이라는 게 거대 제약회사와 정부 기관이 결탁한 음모이며, 특히 어린이들의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지극히 비과학적인 주의주장에 경도된 부모들이 대거 자녀들의 백신 예방 주사를 거부하는 계기로 작용했고, 몇 년 전에 완전 퇴치되었다고 UN이 선언한 홍역 같은 질병이 회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은 게 아닌가. 



심지어 병원 간호사들 중에도 독감 예방주사를 맞지 않으려는 이들이 적지 않아서 병원들이 골머리를 앓고, 급한 대로 내놓은 미봉책이, 그러면 환자를 진료할 때 마스크를 써라 뭐 그런 것, 빅토리아의 한 병원에서 찍은 위 사진에서 보듯이... 아무려나, 웬만하면 이러저러한 ‘의무’ 조항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적은 게 이 나라의 한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렇게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은, 그런 풍경을 보는 일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삼 실감하게 하는 계기일 뿐 아니라, 인생의 축복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열 시 검진 약속인데8시40분쯤 자전거로 집을 나와 린 계곡의 비포장 트레일을 타고 시모어 보전 구역의 포장 트레일을 탔다. 기온은 영상 5도였지만 바람이 제법 찼다. 트레일은 아직 안개에 싸여 있었고, 빼곡하게 선 삼나무 숲 사이로 아침 햇빛이 막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런 데를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로 누빌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지만, 현실은 늘 바람대로 가는 게 아니다. 


의사가 일반적인 건강 문제를 물어보는 단계는 오늘 순조롭게 끝났다. 다음 주나 다다음 주쯤 혈액 검사와 다른 정밀 진단을 전문 검진 센터에서 받게 된다. 캐나다의 의료 제도상 이런 식으로, 먼저 가정의의 일반 검진을 거친 다음, 그를 통해 정밀 진단 일정이 잡힌다. 아내의 일반 검진은 오는 목요일로 잡혔다. 나와 같은 날 하기는 아이들 건사 때문에 어려워서 그렇게 나누었다. 


그나저나 다음 주에도 사흘 휴가를 내놓았다. 그 때는 가족과 함께 어디든1박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작 다음 주는 아이들의 봄 방학이 끝난 시점이어서 그것도 쉽지 않다. 하긴 봄 방학 중에도 이러저러한 캠프와 야외 활동으로 바빴지만... 아이들 학교 간 사이에 아내와 시모어 보전 구역에서 자전거를 타볼까? 머리 속으로 계획만 무성하다. 


요즘은 노르코 자전거 - 이름이 '인디 2' (Indie II)다 - 를 모델로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 데 재미를 붙였다. 혼자 심심하니까 하는 놀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