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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그럼 나도 브루크너로 힐링을!

정녕 세상에는 이렇게나 상처 받은 사람이 많은 거냐? 페이스북을 훑다 보면 힐링, 힐링, 온통 힐링이다. 꼭 병원 복도를 걸어가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사는 게 곧 상처 받는 일, 이라는 식의 논리라면 뭐 그럴 수도... 그래도 걸핏하면 '힐링', '힐링' 하는 데는 좀 뜨악해질 수밖에 없다.


힐링은 치유라는 뜻이고 - '힐링'이라는 단어 자체의 뉘앙스에 뭔가 '쿨'하다는 느낌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어딘가에 상처가 있다는, 과거에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상처를 자주 입으시는가 (accident prone), 아니면 세상사에 과민하신가, 그도 아니면 그냥 멋으로 그 단어를 쓸 뿐인가?


말과 글은 다르고, 그래서 말로는 '내 1년 밑의 후배 아무개'라고 해도 되지만 글로는 '내 1년 후배, 혹은 '내 1년 밑의 아무개'라고 써야 맞다. 다른 많은 언어처럼, 힐링도, 좀 자제해서, 그 뜻을 새겨서 쓰면 좋겠다.


문득, 편집기자 시절 옛 직장 선배한테 핀잔 받은 기억이 난다. 제목을 ‘~의 애환’이라고 붙였더니 “이 기사 안에 즐거움이 있니? 애환은 슬픔과 기쁨이라는 뜻이잖니. 그런데 즐거운 내용이 있어?” “...없습니다.” 그러면 애환이라고 쓰면 안 되지.” 그래서 바꿨다. ‘~의 비애’로. 말이나 글의 뜻을, 가끔은 새삼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를 저 ‘힐링’의 홍수 속에서 문득 느낀다.


아, 힐링들에 치였어. 힐링이 필요해!




꼭 그래서 들은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브루크너의 테 데움을 유튜브로 감상했다. 레이저 디스크 - 혹시 기억하시는지? 'LD'로 약칭되는 LP 판 크기의 레이저 디스크가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 로 갖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키보드 몇 번 두드리면 척 나타난다. 


부활절 다음날인 Easter Monday에 들으면 더욱 각별할 것 같은 음악. 평생을 교회에서 봉직했던 안톤 브루크너의 '테 데움.' 카라얀의 명연 중 하나. 빈 필하모닉과 빈 필하모닉홀 전속 합창단이 연주와 합창을 맡았고, 안나 토모와-신토 (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 (알토), 데이비드 렌달 (테너), 안나 호세 반 담 (베이스) 같은 당대 최고의 성악가들이 솔로로 참여했다. 1978년 녹음. 내가 죽은 뒤에도 후세는 내가 연주한 음악의 아름다움을 즐길 것이라던 카라얀의 말을 새삼 상기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테 데움은 '주여,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Thee, O God, we prais)라는 뜻인데, 전체적으로는 크게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지만 실제로는 다음 다섯 섹션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출처).


1: Te Deum laudamus (주여, 저희는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2: Te ergo quaesumus (저희는 당신께 갈구하나이다)

3: Aeterna fac cum sanctis (저희도 성인들과 함께)

4: Salvum fac populum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소서)

5: In te, Domine, speravi (주여, 당신께 바라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