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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어둠 속의 아이

동준이가 또 발작을 일으켰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3시쯤이었다. 갑자기 아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후닥닥 동준이 방으로 뛰어간다. 왜, 왜? 동준이?


두 팔을 좀비처럼 앞으로 뻗은 채 꺼억 꺼억... 동준이는 발작하고 있었다. 눈은 초점을 잃었고, 입에서는 피와 침이 흘러, 베갯잇을 적시고 있었다. 온몸이 요동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동준아, 동준아, 가망없이 이름을 부르면서, 팔을 잡고, 어디 숨구멍이 막히지 않을까 확인해 주는 일말고는 달리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속절없이, 무기력하게, 발작이 끝나기를 지켜보는 수밖에, 그 수밖에는 없었다.


다시, 머릿속은 텅 비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어떤 감정이 솟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이,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다시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며 잠을 불렀지만, 잠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결국 잠이 안 온다며 돌아누워 전자책을 펴들었다. 하지만 그게 눈에 들어 왔을까. 


한 달여 만이다. 지난 번에도 한 달여 만에 발작을 일으켜서, 혹시나 혹시나 하면서, 동준이가 행여 이상한 소리라도 내거나 너무 잠잠하면 동준이를 부르곤 했다. "동준, 아 유 오케이?" ... "오케이!" 그러더니, 기어코, 또 다시 새벽에 사단이 났다.



며칠 전에 아내가 찍은 사진. 침대에서 잠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데 - 늘 그런 건 아니고 - 약간 과장해서 연기하며 읽어주면 성준이는 깔깔 웃는다. 동준이는 그저 함께 있어서 좋다는 반응이고...


어제, 동준이는 사고까지 쳤다.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학교에서 점심 시간에 갑자기 폭주해 복도를 내닫다가, 계단을 내려오던 동급생과 부딪혀 상처를 입혔단다. 경찰이 오고, 앰뷸런스가 오고, 잠시 학교에는 난리가 났던 모양이다. 다행히 동급생은 크게 다치지 않았고, 그도 동준이처럼 오티즘이 있는 아이여서, 아내가 사과 전화를 걸었을 때, 그 부모는 괜찮다, 이해한다, 라고 말했단다. 


평소에는 대체로 얌전하고 늘 싱글싱글 웃고 누구한테 해코지 할 줄도 모르는 아이인데, 어느 순간에, 미처 예기치 못하게 폭주를 한다. 몇 달 전에는 주차장에서 그렇게 갑자기 내달아, 잠시 식겁을 했다. 그게 차들 쌩쌩 달리는 대로변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니 모골이 다 송연했다. 그래서 늘 신경을 쓰려 애쓴다. 차에서 내릴 때도 조심을 하고, 차도 쪽이 아닌 인도 쪽으로 내리게 하고... 하지만 이미 키 180 cm에 몸무게가 100 kg 가까이 나갈 정도로 거한이 돼 버린 동준이를 엄마는 고사하고 아빠조차 제대로 감당하기가 힘들다. 그러니 더 걱정스러울 밖에...


출근해서 한두 시간 있다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 봤다. 동준이는 아직 자고 있단다. 자고 있는 동준이를 깨울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성준이는 학교 정문 앞까지만 태워줬는데 혼자 씩씩하게 잘 들어가더라고, 아내는 알려줬다. 


동준이의 발작을 막을 요량으로 복용 중인 약은, 아직까지는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복용량을 조금씩 늘려가려고 하는데, 혹시 그 약이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는 가외의 근심까지 생긴다. 두고 보는 수밖에. 그 수밖에 길이 없으니...



부모 노릇이 힘들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동준이 입장이 되어 보면, 되어 보려 애쓰면, 어떤 일도 힘들게 여겨지지 않는다. 저 어딘가 어둠 속에서,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소통할 줄 모르고, 그저 혼자 오도카니 떨어져 앉아 있는, 한 작은 아이를 상상한다. 그게 동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문득 눈물이 난다. 안쓰러워서,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아마도 이 세상을 뜨는 마지막 그 날까지, 동준이는 심지어 그 엄마나 아빠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했는지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이 세상 누구와도 소통 다운 소통 한 번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속이 먹먹해져 온다.  


동준아, 제발 건강하게만 살아 다오. 엄마와 아빠의 소원은, 오직 그것 하나 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