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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북세일, 환풍기, 그리고 대통령의 욕조

퍼스트 하프 마라톤을 뛰고 난 직후에 몸살에 배탈까지 나서 다소 고전했다. 그래서 금요일을 쉬었고, 그 덕택에 금토일 사흘을 내리 쉬는 또 한 번의 '롱 위크엔드'를 보냈다. 일요일인 오늘부터 역순으로, 사흘 간의 '놀멘놀멘'을 적는다.


2월22일, 일요일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혹은 최선을 다해 뛴 하프 마라톤의 후유증을 던다는 변명으로, 목요일과 금요일, 토요일까지 달리기를 쉬었다. 목요일까지는 자전거로 왕복 24 km 정도를 달렸으므로 운동을 아예 안한 것은 아니었고, 그래서 마음도 덜 불편했다.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의 퇴근길은 정말 힘들었다. 씨버스로 자전거를 싣고 건너가서 아내를 만나 차로 귀가할까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참았다. 잘 참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금요일과 토요일을 아무 운동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고 나니, 일요일에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죄책감이 들었고, 조바심이 일었다. 물론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향한 죄책감이고 조바심이었다.



그래서 자전거로 시모어 보전 구역의 트레일을 탔다. 달리기의 교본에 따르면, 또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는 충고에 따르면, 하프 마라톤 레이스를 뛴 다음에는 최소한 일주일 정도, 그리고 마라톤을 뛴 다음에는 적어도 2주 정도, 달리기와 절연해야 한다. 몸이 회복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물론 이 경우의 전제는, 하프 마라톤과 마라톤 레이스를, 평소 연습 때처럼 쉬엄쉬엄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온몸의 진이 다 빠질 정도로 레이스를 뛰었으리라는 것이다.


어쨌든, 왕복 32 km 정도를 탔다. 갈 때는 오르막이 많아 꽤나 허덕거렸지만, 대신 내려올 때는 그만큼 수월했고 몇몇 지점에서 스피드의 짜릿함도 느꼈다. 아내와 아이들도 데리고 와서 자전거를 타야 할텐데, 하는 생각만, 이번에도 여러 번했다. 문제는 '어떻게?'인데, 그게 생각만큼 간단치가 않다.




2월21일, 토요일

집의 벽 한 쪽에 달린, 화장실의 환풍기와 연결된 파이프 틈새로 벌들이 집을 지었다. 지난 여름이다. 벌들이 촘촘한 파이프의 필터 사이로 용케도 드나들고 있었다. 한여름, 벌들이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 겁없이 뜯기도 주저되어서, 외벽의 필터에 벌 잡는 스프레이만, 마치 하얀 샴푸 거품을 모아놓은 것처럼 잔뜩 코팅하듯 뿌려대고 말았었다. 그 때문인지 벌들의 출입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환풍기의 성능 또한 눈에 띄게 약해졌다.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본 뒤 냄새를 빼내기 위해 환풍기를 돌려도 별무 효과였다는 뜻이다. 평소였다면 10분 안팎이면 충분했을텐데 한 시간 넘게 돌려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부득부득 봄이 오고 여름이 오는데 또 벌들이 돌아오면 어쩌나 싶어 토요일에 외벽 쪽 필터를 뜯었다. 그랬더니 저런 참상이 드러났다. 벌집이 사실상 환풍기와 통하는 파이프를 막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구멍만이 겨우 화장실 안과 바깥을 연결하고 있었다. 저러니 한 시간을 돌려도 냄새가 나가질 않지... 다행인 것은 살충 스프레이가 효과를 발휘해 벌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열심히 손을 넣고, 갈퀴를 넣고, 벌집 - 사실은 벌집의 형해 - 를 긁어냈다. 



2월20일, 금요일

시사저널 시절 내 데스크셨던 워싱턴 DC의 이흥환 선배께서 당신의 근저 '대통령의 욕조'를 보내주셨다. 금요일에 도착했다. '김상현 씨께, 이흥환'이라는 간단한 자필 서명에 고마운 마음이 새삼 고개를 쳐든다. 막 읽기 시작했는데 참 술술 잘 넘어간다. 국가의 정보를 기록하고 보전하고 관리하는, 언뜻 생각하면 지극히 따분하고 어려울 듯한 주제를 다루는데, 놀라울 정도로 흥미롭게 읽힌다. 내 직업이 정보 관리와 프라이버시라는 점이 얼마간의 이유로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저자의 탁월한 문장력, 그를 통해 전달하는 이야기의 곡진함이 더 큰 이유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 이게 연륜이구나! 술술 읽히지만 술술 읽지 않고 찬찬히, 꼭꼭 앂어가면서 읽어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