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준

雪国 밴쿠버 밤사이 눈이 내렸다. 적설량은 3 cm 안팎? 밴쿠버의 기준으로 보면 폭설이었다. 평소보다 늦잠을 자고 근처 정거장으로 나가 7시 버스를 기다렸다. 예정보다 5분쯤 늦게 온 버스는, 그러나 정거장 직전에서 210번이라고 적힌 신호등을 끄더니 그야말로 유유히, 그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나가 버리는 게 아닌가! 버스 안에 승객이 많았지만 더 이상 못태울 정도로 만원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고 비탈진 도로 - 명색이 '마운틴 하이웨이'다 -에 눈이 쌓여서 정차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눈은 이미 다 녹은 상태여서 미끄럽지도 위험해 보이지도 않았다. 대체 왜? "노쓰 밴쿠버 버스들이 저렇다니까요?" (Typical North Vancouver, eh?) 나처럼 그 버스를 기다리던 남자가 냉소적인.. 더보기
산타 할아버지께... 산타 할아버지께 보내는 성준이의 편지 봉투. 자기가 보이라는 사실을 분명히했다. 혹시라도 분홍색 여자 인형이 올까봐 걱정되어서였을까? 저 체크 마크는 성준이가 유난히 좋아하는 그림이다. 어디나 저 체크 마크를 표시한다. 됐다는 자기 확인? 하트 그림을 하나 덧붙여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약간의 애정 공세도 잊지 않았다. 너무 일찍 되바라져 버린 것인지, 아니면 엄마아빠가 시도 때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덥석덥석 잘 사준다고 느껴서 그런 것인지, 성준인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산타 할아버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쓰는 눈치였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부탁하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느냐고 물으면 아빠가 사주면 되지 않느냐면서 이 장난감 저 장난감, 수도 없이 다종다양한 장난감을 열거해 왔다. 하루에도 열두 번.. 더보기
'그린 팀버' 도시 숲 아내와 아이들을 꼭 걷게 해주고 싶었다. 처가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그린 팀버 도시근교림' (Green Timbers Urban Forest)의 트레일. 총 183 헥타르 (약 450 에이커)에 이르는 커다란 숲이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숲 주위로만 걸어도 5 km쯤 된다. 나는 달리기를 주로 이 숲에서 했다. 해가 아직 떠 있을 때는 숲속 트레일들을 이리저리 돌았고, 어두울 때는 그 주변 인도로, 불빛이 있는 곳만 따라서 뛰곤 했다. '온대우림'이라는 이름답게 워낙 비가 자주 내리는 지역이다 보니 나무줄기는 하나같이 이끼를 덮고 있고, 고사리와 버섯이 지천이다. 부러진 나무는 저절로 썩어 비료가 되도록 내버려두었고, 그런 나무에도 이끼가 끼고 잎이 덮여 더더욱 '원시림' 같은 .. 더보기
드럼헬러 캐나다의 크고 작은 도시들에는 유난히 '무엇무엇의 수도' (... Capital of Canada, 혹은 World) 같은 자가발전형 칭호가 많다. '랍스터의 수도', '나무들의 수도', '토너먼트의 수도', '와인의 수도', '미네랄의 수도, '중유의 수도', 심지어 '하루살이(shadfly)의 수도'도 있다. 드럼헬러는 '세계 공룡의 수도' (Dinosaur Capital of the World)를 자임하는데, 대개는 그 명칭이 스스로를 과대포장하게 되는 경우와 달리, 이곳만은 명실상부한 '세계 공룡의 수도'라고 할 만하다. '공룡의 계곡' (Dinosaur Valley)이라는 별칭이 시사하듯, 드럼헬러는 그야말로 공룡의 천국, 아니 공룡 화석의 보고다. 전세계 어느 곳도 드럼헬러에 버금갈 만한 양과.. 더보기
식스 캔 두 잇! 성준이가 가장 좋아하는 '집시 데인저' 피겨. 책상 위에 곱게 모셔져 있다. 내가 만지면 왜 만지느냐고 꼭 이유를 캐묻는다. 좋아서 그런다면 아뭇소리 않고 있다가 팔이나 다리의 자세를 바꿔놓으면 잽싸게 정상으로 돌려 세워서 제 자리에 갖다 놓는다. 지난 토요일에 이어 화요일에도 '퍼시픽 림'을 또 보았다. 이번에는 평소 가깝게 지내는 선배, 후배와 함께. 아내도 아내지만 성준이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커졌다. 3D 영화는 너무 충격적일 수 있으니 동네 영화관에서 2D로 보여줘볼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아내도 PG-13이라지만 본인이 그렇고 보고 싶어 하는데 한 번 물어나 보라고 했다. 다음은 대화 내용 (내 말은 우리말로 바꿨고, 성준이 말만 그대로 옮겼다). "퍼시픽 림 영화 보여줄까?""Today.. 더보기
거대 로봇의 로망 '퍼시픽 림' 영화는 까만 화면 위에 두 단어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이주 (Kaiju): ‘괴수(怪獸)’를 가리키는 일본 말. 예거 (Jaeger): ‘사냥꾼’(hunter)을 뜻하는 독일 말. 그 두 단어는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카이주와 예거의 싸움. 괴수와 거대 로봇의 싸움. 올해 가장 기대하고 고대했던 영화 ‘퍼시픽 림’ (Pacific Rim, 환태평양)을 아내와 함께 보았다. 그것도 아이맥스 3D로. 우리보다 더 그 영화를 고대한 사람 – 우리집 막내 성준이 –이 있었지만 ‘부모 지도하에 13세 이상 관람가’(PG-13)라는 등급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실은 우리가 그 영화를 보러 간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다. 적어도 내 딴에는 먼저 보고, 혹시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보여줄.. 더보기
성준이의 '맥주 공룡' 어린이들은 모두가 예술가다, 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들은 기억이 난다. 성준이를 보면서 문득 문득 그것이 얼마나 옳은 말인가를 실감한다. 그와 동시에, 그런 예술가적 기질과 열정과 호기심과 에너지가, 도대체 언제 어느 순간에 사라지고 만 것일까,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된다. 그리고 성준이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천진한 호기심과 창의력, 열정을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그리고 부모로서 그런 꿈과 호기심이 꺾이지 않도록 배려해줘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어젯밤엔 갑자기 빈 맥주 캔으로 공룡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벌써 아홉 시가 다 된 시각이어서 너무 늦었으니 내일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니까 아니란다. 오늘 중에 꼭 해야겠단다. 대체 왜 갑자기 공룡이냐고 물었더니 '캘빈과 홉스'에서 캘빈이 공룡 만드는.. 더보기
'퍼시픽 림' 로봇, 드디어 도착하다 성준이가 고대해 마지 않았던 영화 '퍼시픽 림' (Pacific Rim) 속의 로봇 '집시 데인저'(Gypsy Danger)와 '크림슨 타이푼'(Crimson Typhoon)이 지난 수요일 (6월26일),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영화 개봉일(7월12일) 전에 나오리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저 멀리 오타와의 완구점에서 배송되는지라, 7월 중순쯤 받으면 다행이겠다 싶었던 터였다. 그 동안 성준이는 '지금은 나왔을까?', '장난감을 실은 트럭이 아직 미국에서 오는 중일까?' 같은 질문 아닌 질문을 입에 달고 살아서, 가끔은 엄마나 아빠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성준이의 유별난 로봇 사랑). 그러다 온라인 뱅킹 계좌에 들어갔다가 로봇을 선주문한 온라인 숍 - 이름이 '불타는 장난감'(toysonfire.ca)이다,.. 더보기
그림으로 본 성준이의 하루 성준이가 그린 하루의 '체크리스트'. 방학이 시작되어 한가로워진 데다, 오늘은 종일 비까지 세차게 쏟아져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있다 보니 이런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한 모양이다. 엄마와 성준이의 설명으로 풀어본 그림의 내용은, √ 아침으로 밥과 케첩이 들어간 치즈 샌드위치를 먹었고 (그래서 케첩 부분만 빨갛다), √ 식사 뒤에는 로봇과 자동차 장난감, 공을 가지고 놀았으며, √ 점심으로는 국수('씬(thin) 누들'), 우동 ('우동 누들')과 더불어 성준이의 단골 메뉴 중 하나인 핫도그 (소세지가 그럴듯하게 표현됐다)를 먹었고, √ 다시 놀기. 성준이는 웨건 장난감과 작은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중이고, 엄마와 동준이는 손잡고 성준이를 보는 중이란다. √ 그리곤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 성준이는 거.. 더보기
성준이의 여섯 번째 생일 6월12일(수)은 성준이의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여섯 번째 생일이었다. 퍼시픽 림의 '집시 데인저' 로봇 장난감을 갖고 싶다고 잠꼬대로까지 노래를 불렀으나 안타깝게도 장난감은 생일날이 될 때까지 'Available'하다는 연락이 없었다. 선주문은 이미 보름쯤 전에 오타와에 있는 온라인 완구점에 넣어놓았지만 영화 자체의 개봉일 (7월12일)이 아직 한 달이나 남은 시점에서, 장난감을 성준이 생일에 맞춰 받기를 기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생일 당일에는 정작 선물 하나 주지 않고 지나가는, 장난감이 도착하면 그게 곧 네 생일 선물이라는 '약속'만으로 넘어가는, 우리 집안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엄마 아빠로서는 무엇을 사줘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별로 불만스러워할 게 없었다. 게다가 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