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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산타 할아버지께...


산타 할아버지께 보내는 성준이의 편지 봉투. 자기가 보이라는 사실을 분명히했다. 혹시라도 분홍색 여자 인형이 올까봐 걱정되어서였을까? 저 체크 마크는 성준이가 유난히 좋아하는 그림이다. 어디나 저 체크 마크를 표시한다. 됐다는 자기 확인? 하트 그림을 하나 덧붙여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약간의 애정 공세도 잊지 않았다.


너무 일찍 되바라져 버린 것인지, 아니면 엄마아빠가 시도 때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덥석덥석 잘 사준다고 느껴서 그런 것인지, 성준인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산타 할아버지에 대해 별로 신경을 안쓰는 눈치였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부탁하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느냐고 물으면 아빠가 사주면 되지 않느냐면서 이 장난감 저 장난감, 수도 없이 다종다양한 장난감을 열거해 왔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장난감의 내용이 바뀌었다. 다 사주는 게 아니라 어느 하나만 사줄 거라는 예감 때문에 목록은 수정과 개정을 거듭했다.


하긴, 아빠 집에서 자기랑 있으면 안되느냐고 물었다가, 네 장난감 사주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직장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일하러 가라고 말하던 녀석이다. 지금도 가끔 돈 많이 벌어왔느냐고 묻는데, 그런 질문을 듣는 기분이 가끔 이상하기도 하다. 아직 돈 개념이 덜 잡혀서, 은행에 가면 돈이 그저 술술 쏟아져나오는 줄 착각한다. 


어쨌든 아빠가 이사하느라 돈을 다 써서 너 선물 사주기 힘들 것 같으니 아무래도 산타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논픽션성 픽션을 썼더니 그럼 편지를 보내자고 했다. 결국 엄마의 도움을 받아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다. 



먼저 자기는 착한 아이였음을 뻔뻔하게 주장한 다음,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레고 불자동차를 주십사 하는 것이었는데, 확인해 보니 그 모델이 이미 단종되었단다 (성준이가 참고한 레고 카탈로그가 몇년 지난 탓). 하여 부랴부랴 다른 장난감 '스위치 앤 고' 공룡으로 바꿨다. 공룡이 자동차로, 혹은 자동차가 공룡으로 바뀌는 변신 장난감이다. 



이 그림까지는 미처 업데이트 하지 못했다 (혹은 잊은듯). 산타 할아버지가 여전히 레고 장난감을 들고 계시다. 옆에서 나뭇가지형 손을 벌려 반색하는 이는 물론 본인이다.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의 거주지가 남극이었나, 북극이었나? 엄마와 아빠는 후자라고 믿어 왔는데, 김성준 군의 강력한 주장에 따르면 남극이란다. 우리처럼 산타 할아버지도 이사하셨는가 보다 ㅎㅎ.


아무튼 저런 내용으로 큼지막한 서류 봉투에 넣어서, 날더러 출근길에 부쳐달라고 했다. 오늘 저녁 퇴근하니 쪼르르 달려오더니 편지 부쳤느냐고 묻는다. 물론 부쳤다고 대답했다 (실제 행방은 비밀). 그나저나 성준이가 바라는 '스위치 앤 고' 장난감은 오기나 할까? We'll see...



김성준 군이 요즘 한창 관심을 갖기 시작한 스타워즈 캐릭터들. 왼쪽 노란 그림은 루크 스카이워커, 오른쪽은 "I'm your father" 다스베이더다. 물론 레고에서 만든 모형. 스타워즈 영화를 함께 보자고 했더니 자기는 실사 영화는 넘 무서울 것 같고, '레고 스타워즈'를 더 보고 싶단다. 크리스마스 연휴 때 어느 영화든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