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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너무 힘겨웠던 캘거리 하프 마라톤 캘거리 마라톤에서 또 하프 마라톤을 뛰었다. 지난 밴쿠버 대회 때와 견주어 너무 힘든 경기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준비를 제대로 못한 탓인지, 아침에 에너지 바 두 개만 먹고 뛰어서 힘이 달렸던 것인지, 컨디션이 별로인 왼쪽 허벅지와 오른쪽 인대 때문인지... 스스로 진단하는 원인은 체력 안배와 속도 조절 실패다. 6마일(10km 어간)인가 7마일(12km)을 지나면서부터 몸에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죽을 맛이었다. 이제 절반밖에 안 왔는데 연료 탱크가 벌써 바닥이 났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그렇게 힘들고 괴로울 수가 없었다. 모든 이들이 나를 제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템포! 호흡! 자세! 나머지 7마일은 주저앉고 싶은 욕망과의 싸움이었다. 주변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종치고 소.. 더보기
캘거리 하프마라톤 D-7 토요일. 캘거리 하프마라톤이 꼭 일주일 남았다. 번호도 이미 나왔다. 경기 전날 행사장에 가서 번호표를 받아 오기만 하면 된다. 지난 번과 달리 이번에는 다소 걱정이 앞선다. 몸이 시원치 않은 탓이다. 이 달 초, 밴쿠버 마라톤의 여파인지, 아니면 훈련 중에 사단이 난 것인지 오른쪽 무릎 뒤 인대가 불편하다. 뛰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데, 몸을 풀기 위해 발 뒤꿈치가 엉덩이에 닿을 만큼 높이 차는 '벗킥'(butt kick)을 할 때면 약간씩 당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약한 통증이 온다. 그런가 하면 왼쪽 엉덩이 부근 근육도 여전히 뻐근하다. 너무 무리를 한 것일까? 지난 2주 동안 쉬엄쉬엄 한다고 주의를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다. 평소 뛰던 거리보다 적게 뛰었다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도 든다. 게으.. 더보기
세상은 달리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무엇인가에 빠지면 적어도 그것에 푹 빠져 있는 동안은 주변 세상을 온통 그것을 중심으로 보게 마련이다. 그 관심사가 일종의 렌즈나 필터, 혹은 기준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음악을 들으면서는 늘 말러를 생각하게 되고, 캐나다나 미국의 정치판 소식을 접하면서는 한국의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며, 다른 도시의 축제나 이벤트 소식을 들으면 내가 사는 새알밭과 이웃 에드먼튼을 거기에 견줘 보게 된다. 이 달엔, 다음 달엔 어디를 가볼까, 무슨 일을 해볼까, 어떤 휴가를 즐겨볼까 생각할 때, 나는 먼저 '달리기'의 렌즈를 낀다. 찾아가려는 동네에는 어떤 트레일이 있을까, 혹시 휴가 간 동안 무슨 달리기 행사나 대회가 있지는 않을까, 그 동네나 근처에 달리기 좋은 길이나 환경이 조성되어 있을까...? 올해 일정은 이미 .. 더보기
미줄라, 몬태나 올해 여름 휴가를 보내기로 한 곳이다. 가는 김에 하프 마라톤도 뛰기로 했다 (사실은 그 반대로, 마라톤 대회 일정에 맞춰 휴가 날짜를 잡았다 하하). 보스와 미리 상의하고, 허가를 '득'했음은 불문가지. 미줄라 (Missoula)는 몬태나 주의 한 도시. 주도는 아니지만 몬태나 주에서 가장 번성하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 (주도는 그보다 훨씬 더 작은 헬레나 (Helena)다. 인구가 채 3만도 안된다). 도시 인구는 7만이 조금 못되고, 그 주변까지 더하면 10만이 조금 넘는 정도지만 몬태나 대학이 있는 대학 도시답게 무척 개명한 동네로 꼽힌다. 아웃도어 전문 잡지인 '아웃사이드'는 미줄라를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동네'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로키산맥과도 멀지 않고, 인구 밀도.. 더보기
먼지, 그리고 흙탕물과 함께 오는 봄 오늘 갑자기 기온이 올라갔다. 그냥 올라간 수준이 아니라 '치솟은' 수준이다. 아침부터 영상이더니 점심 무렵에는 두자리 수를 넘어섰다. 나갈 때는 9도였는데, 돌아와 다시 확인하니 12도다. 늘 입던 재킷을 벗고 반팔로 나섰다. 그래도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지 않았다. 마치 도둑처럼, 그렇게 갑자기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가 "이제 봄인가봐" 했더니 "너 지금 산통 깬 것 알지?" (You just jinxed it, you know)라고 농담 했다. 아직 3월 중순도 안된 마당에 영상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반가워 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불안해 한다. 언제 어느 때 또 기온이 곤두박질 치고, 눈보라 쳐대려고? 하는 눈치다. 하지만 대개는 "있을 때 즐기자"라는 주의. 내일 눈보라가.. 더보기
일용할 양식 "아침에 가방에 도시락 넣을 때마다 일하러 가는 건지, 먹으러 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해서, 아내에게 하곤 하는 농담이다. 농담이지만 진담이기도 하다. 오늘 바리바리 싸온 것만 해도, 물 두 통, 미숫가루 한 통, 스포츠 음료 한 통 (뛰는 날만), 과일 (오늘은 사과), 요거트 (그리스 요거트를 먹어보니 참 좋다 ^^), 그리고 점심 (대개 갖은 야채를 섞은 샐러드)... 내게는 정말 한 상이다. 오후에 퇴근할 때 들리는 배낭이 한결 더 가뿐하다. 당연하지 다 뱃속에 들어갔으니... 문득 이솝 우화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먼 길을 떠나면서 주인이 노예인 이솝에게 어떤 짐을 들겠느냐고 했을 때, 그는 가장 무거운 음식 짐을 들겠노라고 대답했다는... 처음에는 다른 노예들의.. 더보기
금요일의 달리기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오늘 뛰기로 한 코스의 풍경이 좋아서 언젠가 한 번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해 온 터였다. 마침 햇살도 눈부신 오후여서 사진 찍기엔 그만일 듯싶었다. 하지만 기온은 퍽 낮아서 무척 추웠다. 영하 12도, 체감 온도는 영하 18도. 이따금씩 바람이 불 때 좀 괴로웠다. 오늘 달리기의 '테마'는 언덕길 오르기. 주로 언덕만 찾아 달리면서 다리 힘을 기르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바로 아래 고도(elevation)가 들쭉날쭉이다). 워밍업을 포함한 달리기 거리는 7마일 남짓 (약 12km), 그리고 마무리 운동으로 걷기와 스트레칭 10분 정도. 더보기
달리기에 관한 책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알게 되면 참으로 아끼게 되고, 아끼면 참으로 볼 수 있게 되며, 안목이 트이면 이를 수집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저 쌓아두는 것과는 다르다." - 조선 정조시대 문장가 유한준(兪漢雋, 1732 - 1811) 나는 이 말을 유홍준의 에서 처음 봤다 (그런데 한자를 보니 뜻이 조금 다르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유홍준씨가 좀 심하게 의역을 한 것이었다. 원문은 아는 것(知)이 먼저인데, 유씨는 도리어 아끼는 것(愛)을 앞에 세웠다. 이래도 되는 거야?...). 그 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 속에서 아슴해진 지는 오래되었으나, 저 말은 아직도 .. 더보기
요즘 읽는/듣는/훑는 책들 종이책으로 읽는... 마이클 코널리의 'The Drop.' 명불허전. 범죄 소설계의 거장답다. 해리 보쉬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코널리가 꾸며내는 이야기의 사실성과 속도감, 긴장, 스릴 또한 여전하다. "다른 작가들과는 차원이 달라"라는 게 아내의 촌평. 동의. 대체로 플롯의 기발함과 신선함, 범죄 소설의 공식을 다소 변주한 여느 범죄 작가들과 견주어, 코널리는 거기에 문학성을, 현실성을, 사회성을, 그리고 정치성을 녹여낸다. 진도가 빨라 조만간 끝낼 수 있을듯. 현재까지는 당근 10점 만점에 10점. 이 제목도 이중적이다. 하나는 피 한 방울이라는 뜻, 다른 하나는 건물에서 떨어지는, 추락. 해리 보쉬가 수사하는 두 사건을 한 마디로 잘 요약한 제목이다. 전자책으로 읽는... 테리 팰리스(Terry Fa..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