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기

피터 로빈슨과 마이클 코넬리의 아쉬운 두 신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스릴러 작가들인 피터 로빈슨과 마이클 코넬리의 신작들을 읽었다. 로빈슨의 신작은 예의 앨런 뱅크스 경감 (Inspector Alan Banks)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혁명의 아이들’(Children of Revolution)이고, 민완 형사 해리 보쉬 시리즈와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미키 핼러 시리즈를 번갈아 선보이는 코넬리의 신작은 후자를 내세운 ‘심판의 신들’(Gods of Guilt)이다. 


혁명의 아이들

한 전직 대학강사가 한적한 철길 위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다리에서 철길 위로 던져져 살해된 것인지, 아니면 자살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한편 시체의 주머니에는 5천 파운드(약 9백만원)가 들어 있었다. 사망자가 연전에 학생 성추행 혐의로 대학에서 해고된 사실을 알게 된 뱅크스 경감 팀은 대학 주변 인물을 탐문하는 한편, 그의 과거에서 기록이 비어 있는 에섹스 대학 시절의 행적을 캔다. 학생 데모와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이 높았던 70년대는 이른바 ‘혁명의 시대’였다. 뱅크스 경감 팀은 그 시절에 사망자와 관계가 깊었던 수수께끼의 여성을 찾아나선다. 


수사의 전망은 밝지 못하다. 사망자의 타살, 자살 여부조차 불분명한 데다, 타살 쪽으로 가닥을 잡은 뒤에도 사망자가 몇 년 동안 은둔자에 가까운 생활을 해온 탓에 용의자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용의자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여성은 정치적 영향력이 높은 상류층이어서 인터뷰조차 어렵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둘 단서가 나타나고, 한 단서는 다른 단서로, 다시 새로운 사실로 연결되면서, 사망자를 둘러싼 복잡다단한 사연들이 윤곽을 드러낸다. 


로빈슨의 전작들이 그렇듯이, 스릴러임에도 전체적인 기조는 비교적 차분하고 잔잔하다. 이 살인 사건에 무슨 큰 사연이 깃들어 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로, 그 시작조차 미미하다. 그러나 그 위로 한 단 두 단 겹이 쌓이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살을 붙이고 생동감을 얻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뱅크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 중에서는 다소 처진다는 느낌이다. 긴장감도 적고, 플롯도 약하다. 별 ★★★ (다섯 개 만점).


심판의 신들

소설의 제목은 배심원들을 가리킨다. 유죄냐 무죄냐를 판정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판정을 받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신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미키 핼러는 살인 혐의로 체포된 남자의 변호 의뢰를 받는다. 알고 보니 피살자는 핼러의 과거 의뢰인이었다. 피살자는 매춘부로 핼러가 여러 차례 법적 도움을 제공하며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애쓴 상대였다. 새 삶을 찾겠다며 하와이로 간다는 말을 믿었던 핼러로서는 그녀의 피살이 충격이었다. 살인 용의자를 인터뷰하고 주변 정황을 캐낼수록 핼러는 사건이 보기처럼 단순하지 않으며 배후에 한층 더 복잡하고 위험한 세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낀다. 


코넬리의 소설은 군더더기가 없다. 속도감이 높고, 언제 어디에서든 뜻하지 않은 위기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긴장감을 독자에게 계속 상기시킨다. 차분하게, 천천히 물을 끓이듯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여가는 로빈슨과 달리, 코넬리의 이야기 전개는 대개 처음부터 ‘뭔가 박진감 넘치는 사건이 전개될 것 같다’라는 느낌을 안겨주는 방식이다. 로빈슨의 소설이 영국 드라마를 연상시킨다면, 코넬리의 소설은 확실히 ‘할리우드’적이다 (로빈슨은 영국과 캐나다 두 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고, 소설의 주무대는 영국이지만 그의 주거주지는 캐나다 토론토다). 


하지만 ‘심판의 신들’도 코넬리의 전작들에 비하면 다소 불만족스럽다. ‘이런 식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사건의 플롯은, 뜻밖에도, 소설 끝까지 그대로 전개된다. 코넬리 특유의 극적 반전이 없다. 처음에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뒤에 가서 충격적인 반전이 있겠지’라는 기대를 계속 간직하고 있었는데, 코넬리답지 않게, 그 기대를 저버리면서, 독자의 예상대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다만 법정에서 마무리되는 클라이맥스를, 덜 극적이지만 현실성은 높은 시나리오로 먼저 보여준 다음, ‘하지만 영화로 만든다면 이렇게 마무리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방향의 대체 결말을 보너스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독자 서비스인 셈. 별점은 ★★★☆ (다섯 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