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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리고 신의 죽음

『Culture and the Death of God』

한글 제목 (가제): 문화와 신의 죽음

지은이: 테리 이글턴

출간일: 2014년 2월1일

출판사: 예일대 출판부

종이책 분량: 234페이지

 

개요

영국의 권위 있는 문화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이 무불통지의 지식과 능란한 언설로 펼치는 문화와 종교의 복잡다단한 관계망. 그리고 신/종교의 복권을 위한 제언. 계몽주의 시대(Enlightenment)로부터 시작해 이상주의 (idealism), 낭만주의 (romanticism),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아우르면서, 그는 예술, 문학 등 다양한 문화적 힘들이 어떻게 서서히 종교를 대치하거나 종교의 권력을 무너뜨려 왔는지 설명한다 (혹은 종교가 그러한 문화의 탈을 쓴 것일까? 이글턴이 제기하는 또 다른 질문이다).


‘문화와 신의 죽음’이라는 제목은, 그 때문에 책에서 펼치는 이글턴의 논조를 다소 그릇되게 전달하는 측면이 있다. 문화가 신의 죽음, 혹은 부재를 대신하거나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부면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제공해 온, 사람들을 한데 결집시켜주는 힘을 문화는 갖고 있지 못하며, 신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신의 가치, 신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기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의 죽음’이라는 제목과 달리, 이글턴은 신의 죽음을 승인하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정확히 말하면 신은 죽은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그의 숨은 권능을 넘겨준 것인데, 인간은 신의 불길한 부재를 통해 도리어 역설적으로 견딜 수 없는 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이글턴이 이 책에서 의도한 바는 신의 죽음이나 부재의 역설이 아니라, 신으로 대표되는 종교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묻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설

테리 이글턴(아래 사진, 구글에서 캡처)은 책의 앞머리에서, 신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신의 실종, 혹은 부재로 말미암아 초래된 위기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운을 뗀다. 그 위기를 좀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그는 역사적 주요 마디들에 기댄다. 종교의 이념적 권력이 다양한 철학적 사상들로부터 도전을 받기 시작한 계몽주의 시대에서 시작해 이상주의, 낭만주의,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을 거쳐, 급진 이슬람 정교의 부상과 이른바 ‘테러에 대한 전쟁’(war on terror)이 운위되는 당대에 이른다. 그 다양한 시대들에서 종교가, 신이 어떻게 위협 받고, 그 와중에서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어떤 시대적 사건이나 굽이를 타고 극적으로 복귀했는지 보여주면서, “무신론이 결코 겉으로 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라는 점을 차분하게 설파한다.



사회의 세속화는 사람들이 종교를 완전히 버릴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종교에 연연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을 때 일어난다”라고 이글턴은 말한다. 예컨대 2011년에 실시된 영국의 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61%가 종교를 갖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그들 중 실제로 종교를 믿는다고 (religious) 주장한 사람은 29%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일정한 종교 그룹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러한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해당 종교가 부과하는 의무나 요구에 대해 사실상 무심하다는 반증이고, 이는 그만큼 사회가 세속화했고, 따라서 신이 사라졌다는 (혹은 죽었다는) 한 징표로 읽힌다.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철학자들은 서구 문명의 기반으로 인식되어 온 종교를 세속적인 이성으로 대체하려 시도해 왔지만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후 낭만주의, 모더니즘, 그리고 극단적 상대주의로 요약되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서도 문제는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신의 존재, 신의 영향력, 신의 의미는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축소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 죽었다거나 완전히 사라졌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글턴의 표현에 따르면 “역사상 어떤 상징적 형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 존재 속에 깃든 진실 중 최상의 것들을 연결해 주는 종교의 힘에 필적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이성(reason)은 다중에게 파고들기 위해 신화와 이미지에 기대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어떻게 이성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글턴이 지적하는 또 다른 문제는 종교를 대리하거나 대치하는 제도, 실체, 시스템 등이 종교와 비슷한 의제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종교의 가장 강력한 대리인, 혹은 대치물로 부각되는 민족주의(nationalism)을 예로 들어 보자. 세계 여러 나라의 민족주의들에서 공통적으로 목도되듯 신화적 요소들, 제전, 성자(혹은 영웅), 순교자 등이 민족주의를 고양시키는 도구로 적극 활용되고, 이는 사실상 종교 그 자체의 특성들과 딱히 구별되지 않는다. 신이 민족주의의 탈을 쓰고 재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이글턴은 이성, 종교, 문화, 신화, 예술, 비극, 그리고 현대의 감성(sensibility) 등이 서로 얽히고 연결되면서 끊임없이 변모하는 관계망을 묘사한다. 과연 이성, 문화, 민족주의, 예술 등은 신을 몰아냈는가, 신을 대치했는가? 아니면 외양만 그처럼 다양하게 변모할 뿐, 결국 신은 여전히 살아 남아서, 그런 다채로운 외양 뒤에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는 것인가?


문화와 신의 죽음, 혹은 무신론에 대한 이글턴의 시각은 다소 유보적이다. 신과 종교가 지닌 독특한 성격과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진정한 무신론 (atheism)을 만나고 있다”라면서, 그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구원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어찌 보면 상반된 견해도 피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 곳곳에서 발호하는 종교적 근본주의 바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글턴은 “종교가 일정한 감정적 욕구들(emotional needs)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대개는 천박하고 경솔한 일상의 삶에 정신적 깊이(spiritual depth)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또 그것은 이슬람 사회 깊숙이 자리잡은 문화적 불안으로부터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선언/생각은 옳았는가? 그의 말대로 현대 세계는 자본주의와 세속주의의 도도한 발호로 인해 신화와 수수께끼를 포용할 만한 능력을 상실했는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사실은 그저 외양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이글턴이 보는 신의 죽음은 과장된 주장이다. ‘신이 죽은 시대’, 즉 현대는 종교 밖에서 초월성을, 신을 찾는 시대이다. 과학 기술을 통한 세계 혁명과 구원의 신화는 그런 사례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신과 종교에 대한 이글턴의 유보적 – 하지만 균형 잡힌 – 시각은, 그가 살펴본 시대의 여러 지식인들의 시각과도 많은 대목에서 겹친다. 그것은 거칠게 요약한다면 “나는 신/종교를 믿지 않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믿는 편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유익하다”라는 것이다. 그와 함께 이글턴은 신앙, 문화, 정치 등이 새로운 국면과 관계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출발점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the poor and powerless)과의 연대에 있을 것이라고 결론 짓는다.

 

총평

‘문화와 신의 죽음’은 계몽주의 시대부터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종교적 근본주의의 발호 현상까지 포괄하면서 신의 존재, 신의 의미를 캔다. 각 시대 상황에서 신은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가, 그리고 어떤 논리와 제도에 의해 논박 당하거나 심지어 추방 당했는지 살핀다. 더불어 문화, 민족주의, 예술 등 신을 대신하거나 몰아낸 장본인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제도나 현상과 신/종교 간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이글턴의 문장은 종종 아포리즘적이다. 정교하면서도 위트에 넘치고, 풍부한 은유로 자신이 표현하려는 바를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글턴의 문제 제기는 현대 사회의 여러 병증과 위기 상황을 고려할 때 퍽 시의성이 높다.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끝없는 유혈극과 복수의 악순환은 이글턴이 날카롭게 펼쳐 보이는 신과 종교의 천변만화한 변형태, 특히 민족주의의 여러 속성을 비극적으로 현실 속에 체현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문화와 신의 죽음’은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이글턴이 다루는 시대의 철학적 풍경에 진작부터 익숙한 사람 – 대부분의 일반 독자들은 물론 여기에 들지 않을 것이다 – 이 아니면 따라가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대중서로서의 성공 가능성은 따라서 높지 않다. 그러나 책이 다루는 주제와, 그 주제에 대한 이글턴 특유의 통찰이 지닌 수명은 퍽 길 것으로 전망된다. 다시 말해 스테디 셀러로서의 가치는 높다. 별점은 ★★★☆ (다섯 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