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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맑은 날


밴쿠버에서는 맑은 날 보기가 어렵다. 겨울은 우기다. 비 내리는 계절. 기온이 높다고, 따뜻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엄동설한보다는 낫지, 폭설보다는 폭우가 낫지, 라고, 나도 에드먼튼에 살 때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 비 내리는 나날을 지내 보니, 이것도 중뿔나게 더 낫다고 보기는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고들 하는 것이겠지. 



오랜만에 알버타 주정부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와 전화 통화를 했다. 서로 근황을 묻고, 날씨 얘기를 나누고... 거긴 사는 게 어떠냐, 아내와 아이들은 잘 지내느냐... 지난 한 주 내내 비가 내렸다. 이번 주 들어서야 해를 본다고 했더니, 에드먼튼은 내내 화창하고 눈부신 햇살이었노라고 약간은 자랑스러운 듯 말해준다. 물론이지. Sunny Alberta 아니냐...



사무실 창밖으로 화물선에 화물을 싣는 밴쿠버 항만 시설이 펼쳐져 있다. 러시아워에는 15분 간격, 그 외에는 30분 간격으로 밴쿠버와 노쓰밴쿠버를 오가는 '시버스'(Seabus)도 보인다. 시버스 정류장 곁은 밴쿠버와 밴쿠버 섬을 오가는 헬리콥터들 (헬리젯)이 뜨고 내리는 작은 헬리포드이다. 한편 내가 일하는 사무실 바로 맞은 편에는 고층 건물 두 개가 시립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지역의 양대 일간지인 밴쿠버 선(Vancouver Sun)과 프라빈스(Province) 사무실이다. 마침 그 건물 5층에서 매주 화요일 점심때 토스트마스터스 클럽 모임을 갖기 때문에 가끔 들른다. 그 건물에서 내다보는 풍경은 내 사무실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데, 창문에 약간 불투명한 비닐을 붙인 것처럼 풍경이 흐리다. 



어쨌든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끊임없이 오가는 행인들, 시버스, 헬리콥터, 거대한 화물선 - 가끔 한진해운과 현대 소속 배들도 볼 수 있다 - 등이 그 풍경에 변화를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날씨 따라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구름 낀 날, 비 내리는 날, 햇빛 찬란한 날, 눈앞으로 펼쳐진 그림이 다 다르다. 바닷물의 검푸른 빛깔마저 미묘한 변주를 보여주는 것 같다. 



위 사진은 싱클레어 센터를 구성하는 네 개의 건물 중 하나로 내 직장이 입주한 곳이다. 내 사무실은 3층, 오른쪽에서 세 번째 창문이다. 맨 오른쪽, 좁다란 창문 두 개가 난 쪽도 사무실인데, 창문 크기가 보여주듯 전망이 좀 미흡하다. 왜 저런 식으로 설계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어쨌든 네 건물 모두 역사적 가치가 제법 높은 'historic building'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