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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빅토리아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흘간 빅토리아에서 열리는 '프라이버시와 보안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BC 주 정부에서 주최하는 연례 행사인데 올해로 15회를 맞았다. 프라이버시 관련 컨퍼런스로는 캐나다에서 - 아마 북미를 통틀어서도 -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프로그램 내용도 좋아 보였고, 강연자 면면도 퍽 탄탄해 보였다. 실제 만족도는 처음 기대에 다소 못 미쳤지만... 


오래 전부터 이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온타리오 주나 알버타 주에 있을 때는 일단 주가 달라서 다른 주로 출장을 가려고 할 경우 적어도 차관보의 재가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다 예산 부족, 예산 절감, 예산 삭감, 뭐 그런 이유였다. 알버타 주에 있을 때는 그나마 온라인으로 컨퍼런스의 몇몇 프로그램을 보기도 했지만 제 맛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빅토리아로 출장을 간 김에 그곳에서 찍은 사진 몇 장으로 '자랑'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일기를 몰아쓰는 기분으로...



BC주의 최대 도시는 밴쿠버지만 수도는 섬 (밴쿠버 아일랜드)에 있는 빅토리아다. 그러다 보니 밴쿠버와 빅토리아 간을 자주 오가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객들은 승용차까지 실어갈 수 있는 페리를 주로 이용하지만 너무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배로만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까지 가는 시간, 가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 페리에 차를 싣는 시간 등을 더하면 편도에만 서너 시간씩 걸린다. 그러다 보니 위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수상 비행기와 헬리콥터가 비즈니스용 교통 수단으로 더 널리 애용된다. 수상 비행기로 날면 편도로 약 30분 남짓 걸린다.



수상 비행기는 한 번에 15명 안팎을 실어나르는데, 자리가 여간 비좁은 게 아니다. 기체가 작아 바람이나 기류 변화에 자주 출렁거린다. 속이 메슥거릴 정도다. 하지만 이착륙은 대형 항공기들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안전하다. 빅토리아에 거의 도착해서 착륙지로 향하는 중이다. 



빅토리아는 밴쿠버에 비해 규모는 작은 대신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럽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많다. 빅토리아에 오는 사람치고 '아, 아름답다!'라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빅토리아는 캐나다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로 뽑히기도 했다. 경치가 아름다워 신혼 여행지로 오거나 나이들어 은퇴지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 '갓 결혼한 사람들과 곧 죽을 사람들의 도시' (home of the newly wed and the nearly dead)라는 별로 달갑잖은 별칭도 가지고 있다. 



수요일엔 '워크샵'이 열렸고, 본격 컨퍼런스는 목요일과 금요일이었다. 등록하러 가는 길. 사진에 잡힌 친구는 나와 짝(?)을 이루는 '보안 매니저'다. 프라이버시와 보안은 따로 뗄 수 없는 관계다. '보안 없는 프라이버시란 불가능하다'라는 말은 그런 관계를 드러내는 한 표현이다.



빅토리아에 와 있는 동안 날씨가 꽤 추웠다. 수은주 기온은 영하 2, 3도밖에 안됐지만 바람이 불어서 체감 온도는 그보다 훨씬 더 낮게 느껴졌다. 위 사진은 바다 밖으로 제방을 길게 뽑아낸 뒤 그 위로 길을 낸, '오그든 포인트' (Ogden Point)라는 데다. 길이가 1km쯤 됐다. 



그 오그든 포인트를, 빅토리아를 떠나는 수상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잡았다. 저런 모양이다. 작은 등대가 끝에 외롭게 서서 불을 반짝거리며 신호를 보낸다. 



그 오그든 포인트를 지나면, 바다를 따라 구불구불 형성된 트레일이 나타난다. 지척의 바다가 이제는 밖으로 뻥 뚫려서 불어오는 바람도 더욱 거세게 느껴졌다. 


내항 (Inner harbour)은 바람도 적고 파도도 낮기 때문에 이런 수상 가옥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집들은 원색일수록 더 그럴듯해 보인다. 



빅토리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BC 주의회사당이다. 정말 아름답고 품위 있는 걸작 건축물이라는 생각이다. 영국 제국주의 시대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BC 주의회사당은 밤에도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럽다. 이 풍경만 보면 BC 주의 정치인들은 어째 예외적일 것 같고, 선정을 펼 것 같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무능과 부패가 없다면 그게 정치인이랴 싶기도 하다. 그래서 늘 감시와 압력, 선거가 필요한 것이고... 



빅토리아 다운타운의 한 건물. 무슨 건물인지 간판 볼 생각을 미처 못했다. 캐나다 국기가 걸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 연방정부 건물일 것으로 추측한다. 



뛰는 길에 찍은 풍경 하나. 뛰는 걸 핑계로, 아니 달리기를 수단 삼아 이곳저곳 구경 다니기 바빴다. 사람 모양의 이눅슉 (Inukshuk)을 배경으로 멀리 펼쳐진 설산이 실로 장관이었다. 카메라 렌즈가 닿지 못해 안타까웠다. 디지털 줌이어서 화질이 떨어진다. 



컨퍼런스가 진행되는 동안 전직 교사 출신의 화가가 그림으로 발표 내용을 옮겼다. 발표 내용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은 채 그림 그리는 데만 몰두하는 모습이어서 미리 발표문을 보고 그리는 줄 알았더니 실시간으로, 그 자리에서 강연 내용을 이렇게 요약하는 것이라고 했다. 감탄스러울 밖에...!



저녁때 동료, 지인들과 함께 간 채식주의 전문 식당. 음식 맛이 일품이었다. 다른 날 저녁에는 이태리 음식 전문점 'Pagliacci'라는 데를 갔는데, 그곳 또한 기억해둘 만했다.



금요일에는 돌아오는 비행 일정 때문에 낮에 뛰기가 어려워 아침 일찍, 5시30분쯤 나왔다. 밝은 데만 찾아가며 뛴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온 거리가 불빛으로 환한 서울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 사진을 굳이 찍은 이유는 트레일 바닥이 톱밥이어서 발의 감촉이 더없이 좋았기 때문이다. 



내 나름으로는 멀리까지 간다고 갔지만... 위 지도는 수요일 오후에 뛴 코스, 아래 지도는 목요일 오후의 코스. 서로 다른 방향을 고루 보겠다는 심산이었는데, 아래 코스는 중간에 무슨 해군 훈련학교 비슷한 건물들이 흉물스럽게 바닷가 길을 막고 있어서 제대로 바다를 보기 어려웠다. 바닷가에 지을 건물이면 모양이라도 좀 신경을 쓸 것이지...



금요일 아침 햇빛을 받은 내항의 빌딩들. 내가 묵은 호텔 5층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돌아오는 길. 작은 섬 위의 등대와 부속 건물들이 더없이 낭만적으로 보였다. 



드디어 밴쿠버에 다 왔다. 웨스트밴쿠버 풍경이다. 



여기는 스탠리 공원이다. 그 너머는 노쓰밴쿠버. 



드디어 밴쿠버로 돌아왔다. 불과 2박3일밖에 안되는 일정이었는데도 집이, 가족이 퍽이나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