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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영혼의 지도

책 제목: 『Jung’s Map of the Soul』(‘융의 영혼의 지도 – 융 심리학 개론’)

지은이: 머레이 슈타인 (Murray Stein)

분량: 262페이지

출판사: 오픈 코트(Open Court)

출간일: 1998년 3월1일


프로이드와 더불어 20세기의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이자 ‘분석 심리학’ (Analytical Psychology)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 (1875-1961)의 이론을, 융 심리학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머레이 슈타인 박사가 쉬운 언어와 적절한 비유로 설명한 개론서. 


‘영혼의 지도’라는 제목이 시사하듯이, 저자는 융의 분석 심리학 이론을 지도 제작 과정에 빗대어 그 영혼의 맨 위 표면에 해당하는 자아(ego)로부터 출발해 콤플렉스, 리비도 (libido) 이론, 그림자 (shadow), 아니마/아니무스, 자기(自己, self), 개성화 (Individuation), 동시성 (synchronicity) 등 점점 더 복잡한 영역들로 탐구해 들어간다. 


그 결과는 그저 밋밋한 2차원의 평면 지도가 아니라 융 심리학을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3D 지도이다. ‘융의 영혼의 지도를 30년 가까이 연구해 정제한 결실’이라는 지은이의 자신에 찬 서론이 그저 허언이 아님을, 이 책은 튼실한 내용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융의 영혼의 지도’는 총 9장으로 짜여 있다. 표면 (surface)에서 시작해 점점 더 내면 깊숙이 파고든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잘 보여주는 서론과 융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주요 용어 설명이 본문의 앞뒤에 놓인다. 차례를 일별하면 이 책의 구성이 명료하게 들어온다.



칼 융의 사상과 이론은 현대에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일반 대중으로부터도 높은 관심과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단지 심리학뿐 아니라 철학, 신학, 사회학, 인류학, 신경과학, 천문학, 물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고 가로지르는 융 심리학의 깊고 넓은 배경과 바탕은 그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일반 독자들에게 막막한 벽과도 같다. 여기에 그의 분석 심리학이 한두 해가 아닌 60여 년에 걸친 온축의 결과이고 그것이 무려 18권의 두텁고 밀도 높은 저작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용이한 경로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쳇말로 ‘넘사벽’이나 다름 없다. 머레이 슈타인은 그 벽을 낮춘다. 아니, 허물어준다. 수십 년 동안 융의 심리학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이해한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표현, 비유들로 재미지게 설명해 준다. 


이 책을 읽으며 경험하게 되는 매력 중 하나는 적절하고 절묘한 묘사와 비유이다. 예를 들면, 무의식의 세계를 ‘불가사의의 바다’ (혹은 미스터리의 바다)라고 한다거나, 융을 내면 세계 (inner world)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탐험가이자 지도제작자로 표현한 것, ‘존 글렌과 닐 암스트롱이 외부의 공간에서 한 탐험가로서의 역할을 융은 내부의 우주에서, 미지의 정신 세계에 대한 용기 있는 여행자 노릇을 했다’라는 표현, ‘모든 심리학은 개인적 고백’이라는 대목 등이다. 융이 여러 저작들에서 표현한 용어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에 대한 설명은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다듬었다. 


‘융의 영혼의 지도’라는 매혹적인 제목이 전혀 무색하지 않은, 칼 융의 분석 심리학에 대한 매력적인 가이드이다. 때때로 가벼운 에세이처럼, 대개는 별다른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읽히는 이 책은, 웬만큼 철저하고 깊이 있게 융을 연구하고 이해한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렇게 쉽게 쓰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거칠고 딱딱하고 팍팍한 음식을, 잘게 부수고, 부드럽게 빻고, 적당히 양념을 섞어 누구나 서슴없이 맛나게 먹을 수 있도록 재가공하는 과정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융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고, 여러 논문이나 저작, 블로그 등에 다양한 층위의 난이도와 정확성 (혹은 부정확성)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처럼 불균질적이고 파편화된 지식 시장에서, 머레이 슈타인의 ‘융의 영혼의 지도’는 단연 충실하고 종합적인, 그러면서도 더없이 대중적으로 잘 요약 정리된 융 입문서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