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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황당한 인터뷰

그림 출처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신문이나 잡지들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취업 인터뷰에서 해서는 안될 말이나 행위'의 사례를 읽으면서 종종 들었던 생각이다. 설마 이럴까... 예를 든다면 지원자가 인터뷰 도중 잠을 잔다거나, 인터뷰 도중 걸려온 개인 전화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받는다거나 (혹은 받으면서, 잠깐 실례, 하며 밖으로 나간다거나), 전 직장이나 상사를 욕한다거나, 캐주얼한 복장으로 인터뷰장에 나타난다거나, '고객 서비스' 담당직을 지원했으면서 "사람 상대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라고 자랑스럽게 고백(?)한다거나, 인터뷰 도중 머리를 매만진다거나 손톱을 물어뜯는다거나 등등... 정말 설마 그럴 리가...?


그런데 그런 일을 내가 겪게 될 줄이야! 


지금 '프라이버시 애널리스트' (Privacy Analyst)를 뽑는 중이다.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업무를 도와줄 내 부하 직원이다. 열 명 정도가 지원했고, 자기 소개서와 이력서를 바탕으로 그 중 네 명을 인터뷰 대상자로 정했다. '설마 그럴 리가...'라는 내 의심을 여지없이 깨뜨린 문제의 인물은 두 번째 후보였다. 경력으로 봐선 프라이버시 쪽과 별로 연관이 없었지만 의료 서비스 분야의 경험에 IT 지식이 그럴듯해 보여서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었다. 


당초 인터뷰 일정은 지난 금요일 오후 4시였고 좋다는 확인도 받았다. 그런데 수요일인가 목요일에 돌연 다른 일 - 그게 무엇인지까지 알려줄 의무는 없으니까 - 때문에 곤란하다며 인터뷰 일정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인터뷰 일정을 관리하는 인사부 직원이 월요일 오후 4시로 날짜를 바꿨다. 사실 나뿐 아니라 나와 함께 인터뷰에 들어갈 동료 매니저도 퇴근 시간이 4시 무렵이어서 4시라는 시간 자체가 탐탁치 않았지만 워낙 다른 일정들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오케이. (노파심에서 덧붙인다면 내 출근 시간은 아침 7시10분 안팎이다.)


그러더니 그 시간을 다시 4시15분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 왔다며, 괜찮으냐는 인사부 직원의 메일이 날아왔다. 그 메일을 확인한 것이 토요일 저녁, 집에서였다. 그러니까 금요일 오후 늦게, 내가 퇴근한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불쾌했다. 대체 누가 누구를 인터뷰하자는 거지? 더욱이 4시가 아닌 4시15분으로 해달라는 이유가, 자기의 퇴근 시간이 4시여서 인터뷰 장소까지 오는 데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이 친구는 우리가 자기더러 제발 와달라고 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걸까? 지원한 직업을 정말 원한다면 대체 30분이나 1시간 정도 근무 시간에서 빼는 게 얼마나 어려웠을까? 아니, 아예 하루를 휴가 내서 인터뷰 준비를 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을까?



월요일 오후, 문제의 인물이 나타났다. 몸짓도 부산하고 말투도 연극을 하는 듯했다. 편견을 갖지 말자 속으로 다잡고... 인터뷰를 위해 소회의실에 앉았다. "혹시 찬물 좀 갖다 주지 않겠느냐"고 그 친구가 요청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본래 인터뷰를 시작할 때 혹시 목이 마르지 않느냐, 마실 것 갖다줄까 묻는 거니까. 그래도 기분은 별로였다. 저런 친구를 내 밑에 두고 싶을까?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터뷰가 시작됐다. 질문서를 읽고, 면접을 받는 이가 뭐라고 대답하면 열심히 받아적는, 별로 재미없지만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 친구의 대답은 언뜻 듣기에 거창했다. 그러나 "그거 좋은 질문이네요!", "제 이력서와 링크드인에 나온 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말은 많은데 받아 적을 내용이 없었다. 허황한 말의 향연. 그러나 알맹이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말을 끊어야 했다. "그러니까 프라이버시와 직접 관련된 업무 경험은 없다는 거죠?" "... 그렇죠." 그리곤 다음 질문. 되풀이되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하는 말투도 귀에 거슬렸다.


실속 없는 허언 못지않게 기막혔던 것은 그의 자세였다. 질문을 던지는 나와 동료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단정한 자세가 아니라,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지시를 내릴 때 취할 만한 포즈, 다리를 꼬고 옆으로 앉은 자세였다. 그런 자세를 시종 유지했다. 대체 이 친구는 인터뷰 경험조차 없는 것일까? 10년 이상의 경력을 자랑하는 그의 이력서와 어투로만 보면 없을 수가 없는데... 그런데도 인터뷰에 응하는 그의 자세와 표정과 말투는 10년이라는 직업 경력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질문을 던지자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인쇄해 온 자료를 꺼내어 그것을 그대로 읽는 게 아닌가! 시험으로 친다면 노골적인 부정행위인 셈이었다. 아니지, 인터뷰도 시험이지.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 "찬물 좀 더 갖다 줄 수 있느냐"며 그 친구가 빈 컵을 들어보였다. 아놔~!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하면서, 나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자기가 어떤 실수나 결례를 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자의식 부족 - 혹은 자의식 과잉 - 증세를 보이는 인물의 실체를 확인한 듯한 느낌이었다. 1, 2년도 아니고 10년도 넘는 직업적 경력의 소유자가 이 정도밖에 안될 수 있나 싶어 서글퍼지기도 했다. 


하기사, 나도 10여년 전 캐나다로 이민 와서 한 회사 담당자와 인터뷰를 할 때 다른 경쟁 회사를 헐뜯는 말을 한 적이 있으니... 그게 캐나다에서 경험한 첫 인터뷰였는데,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무슨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