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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잃어버린 세대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이 흔하다. 본래 그 말 'lost generation'이 가리키는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중에 자란 세대를 가리키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통해 대중화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어디에서나 대충 갖다 쓰는 듯하다. 이를테면 한국의 요즘 대졸자와 20대들을 그렇게 일컫기도 하고, 어제 집어든 이 지역의 주간지 'North Shore Outlook'에 따르면 치솟는 집값을 감당 못해 태어나고 자란 노쓰밴이나 웨스트밴 (웨스트 밴쿠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요즘 젊은 세대를 지칭하기도 한다. 


별로 치밀하게 잘 취재된 것 같지 않고, 그저 '카더라'에 많이 의존한 기사 아닌 기사로 비쳤지만, 어쨌든 노쓰밴의 신참인 내게는 퍽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 내용은 나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그저 풍문인지는 이 기사에서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대목들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 1980년대만 해도 노스 쇼어 (North Shore) - 노쓰밴과 웨스트밴을 통칭하는 표현 - 지역의 집값은 15만불 (약 1억5천만원) 정도였다. 
  • 이 주간지는 흥미롭게도 1999년 11월 창간호를 통해 '잃어버린 세대'라는 제목으로 당시 천정부지로 치솟던 집값과 젊은 세대의 절망감을 취재했는데,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집값은 더더욱 뛰어올란 노쓰밴은 162%, 웨스트밴은 무려 239%나 더 높아졌다.
  • 14년 전의 경우 평균 집값은 노쓰밴의 경우 36만불, 웨스트밴은 55만불이었지만, 현재는 각각 95만불, 188만불로 올랐다. 하지만 더 중요한 대목은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온' 집값은 그보다 더 높은 110만불, 220만불이라는 점이다. 
  • 밴쿠버는 물론 노쓰밴과 웨스트밴의 집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든 주범이자, '부동산 거품론'에도 불구하고 밴쿠버 지역의 높은 집값을 떠받치는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이들은 중국 본토 사람들이다. 집을 사는 데는 꼭 이민자일 필요도, 캐나다 국적일 필요도 없기 때문에, 노쓰밴과 웨스트밴의 럭셔리 집들을 산 이들의 국적이 캐나다인지 중국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웨스트밴 집의 절반 정도는 중국 본토 (출신) 사람들이라고 한다.
  • 14년 전과 견주어 달라진 또 다른 지표는 주민의 연령대다. 1999년만 해도 노쓰밴과 웨스트밴의 평균 연령은 각각 37세, 45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각각 43세, 50세다. 웨스트밴의 경우 학생이 없어 문을 닫은 학교가 적지 않다고 한다. 
세인트앨버트에 살 때, 그 동네의 가계 평균 소득 수준을 보면서 "우리가 저 평균 값을 까먹고 있구나"라며 아내에게 농반진반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노쓰밴에 와서도 비슷하다. 우리가 이 동네의 집값 평균을 많이 까먹었구나, 라는 생각. 그게 무슨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어쨌든 비교할 수치가 나오면 내 수준과 견주어 보는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 

솔직히 지금의 내 심정은 부끄럽거나 자랑스럽기보다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쪽이다. 평균 집값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그럭저럭 살 만한 내 집 하나 마련했으니 운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