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얘기

'그린 팀버' 도시 숲

아내와 아이들을 꼭 걷게 해주고 싶었다. 처가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그린 팀버 도시근교림' (Green Timbers Urban Forest)의 트레일. 총 183 헥타르 (약 450 에이커)에 이르는 커다란 숲이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숲 주위로만 걸어도 5 km쯤 된다. 나는 달리기를 주로 이 숲에서 했다. 해가 아직 떠 있을 때는 숲속 트레일들을 이리저리 돌았고, 어두울 때는 그 주변 인도로, 불빛이 있는 곳만 따라서 뛰곤 했다. 


'온대우림'이라는 이름답게 워낙 비가 자주 내리는 지역이다 보니 나무줄기는 하나같이 이끼를 덮고 있고, 고사리와 버섯이 지천이다. 부러진 나무는 저절로 썩어 비료가 되도록 내버려두었고, 그런 나무에도 이끼가 끼고 잎이 덮여 더더욱 '원시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지난 일요일, 늦은 점심을 일식집 '아카사카'에서 먹고, 가족을 데리고 숲에 왔다. 장인 장모께서는 너무 멀다고 먼저 집으로 들어가셨다. 동준이와 성준이도 빨리 집에 가자고 성화였다. 동준이는 그저 움직거리는 게 귀찮아서, 성준이는 한시라도 빨리 들어가서 아이패드를 봐야겠다는 조바심에서... 



하지만 막상 숲속으로 들어오니 성준이는 신이 났다. 이게 이끼야, 만져봐, 아주 부드럽지? 게다가 제 얼굴을 다 덮을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큰 잎 단풍' (Big Leaf Maple) 잎들을 보자 무척이나 신기해 하며 마치 깃발처럼 흔든다.



자주 내리는 빗물을 마시며 자란 버섯들도 지천이다. 썩은 나무둥치는 버섯들의 보금자리다. 



숲 한 가운데는 작은 호수 (연못?)도 자리잡고 있는데, 낚시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몰려든다. 하지만 내 눈에는 고기를 잡으려는 의도보다, 그저 낚시하는 그 '기분'을 즐기려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동준이는 그걸 걸었다고 벌써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잎을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튤립나무' (Tuliptree)의 잎들. 



이 숲에 특히 많은 '덩굴 단풍' (Vine maple). 잎이 부채 모양으로 퍽 귀엽고, 특히 햇빛을 받았을 때 더 예쁘다. 이 단풍나무는 대체로 크기가 작고 옹기종기 모여 자란다. 



숲속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1, 2도쯤 기온이 낮아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숲속을 채운 나무들 때문일까? 한결 더 서늘하고, 공기 또한 표나게 더 맑고 상쾌하다.



내가 하도 사진들을 찍어대서 그런가 동준이와 성준이의 '포즈' 잡는 기술은 이제 도가 튼 듯하다. 성준이가 종종 아빠를 파파라치 취급하며 사진 그만 찍으라, 모델 노릇 하기 싫다고 뻗대는 게 좀 문제지만...



여러 트레일 중 가장 길고 변화가 많은 '살랄 트레일' (Salal Trail)의 일부를 걸었다. 성준이는 트레일의 거리를 보여주는 표시목의 번호를 누가 먼저 찾느냐는 내기로 제법 긴 트레일을 힘들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신나게 뛰고 걸었다. 내 GPS 시계가 기록한 오늘의 산보 거리는 2.5 km 남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