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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캘거리


주말 동안 집을 비워야 했다. 팔려고 내놓은 집은 부동산업체에서 그럴듯해 보이라고 꾸며놓은 (staging) 온갖 장식들 때문에 도무지 마음 편하게 생활할 형편이 못되었다. '손 대지 마시오' '앉지 마시오' '기대지 마시오' 같은 경고문들로 가득찬 건물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거실의 소파는 초대형 쿠션 네 개에 점령되었고, 늘 몸을 던지듯 그 위에 앉곤 했던 동준이는 갑작스레 자리를 차지한 쿠션들 앞에서 감히 앉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마스터 베드룸 (안방) 또한 장식된 요와 쿠션, 베개들 때문에 접근 불허였다. 그걸 치우고 잠을 잔 뒤 다시 장식 상태로 복원하는 데 드는 노력과 시간이, 차라리 그걸 그대로 두고 옆 방에 요를 깔고 자는 것보다 훨씬 더 길고 고될 듯했다.

 


토요일 오후에 누군가가 집을 보러 오기로 했고, 일요일에는 오전에 두 곳에서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으며,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는 아예 '오픈 하우스'였다. 당초 토요일 오후 1부터 4시로 예정돼 있었지만, 짐작건대 다른 더 비싼 집의 오픈 하우스 시간에 밀려 일요일로 바뀐 듯했다. 어디서나 돈이 최고다 (money talks). 



금요일 오후, 마침 아내의 절친이 미국에서 다니러 왔다. 에드먼튼에 있어봤자 특별히 보여줄 것도 없다고 판단한 터에, 집까지 팔겠다고 내놓았으니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캘거리와 드럼헬러를 가기로 했다. 밴프와 레이크 루이즈로 가서 로키산맥의 한두 자락을 보여주는 게 어떨까도 생각했지만 1박2일의 짧은 일정 - 친구는 일요일 낮에 돌아가기로 돼 있었다 - 으로는 무리였다. 차라리 공룡 천국, 드럼헬러를 가보기로 했다.



캘거리는 언제 와봐도 쾌적하고 깔끔하고 단정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사람에 비유한다면 '차도남'쯤 될까? 그에 비해 에드먼튼은 다소 거칠고 투박하고 촌스럽고 어딘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 사람에 비유한다면 '블루컬러' 노동자의 느낌이라고 하겠다. 또 에드먼튼은 정체된 느낌인 데 비해 캘거리는 에너지로 넘치는 느낌이다. '돈이 흘러넘치는 느낌'이라고 해도 무방할듯. 알버타 주의 이른바 '오일머니'가 고스란히 모여드는 곳이 캘거리기 때문이다. 변변한 다운타운을 찾아볼 수 없는 에드먼튼과 달리, 캘거리는 다운타운의 위치가 확실하다. 온갖 유형의 카페, 커피숍, 레스토랑, 기프트샵, 갤러리 등이 밀집되어 있다. 금요일 오후의 기대와 흥분, 즐거움도 다운타운에서 고스란히 맛볼 수 있다. 우리는 오후 4시쯤 캘거리에 도착해 보우(Bow) 강가를 잠시 거닐다가 다운타운의 한 레스토랑에서 맛난 저녁을 들었다. 



토요일 아침 6시쯤 일어나 캘거리 다운타운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크레슨트 로드 (Crescent Road) 근처와 보우 강가를 뛰었다. 이른 아침 어둠 속에 잠긴 캘거리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위 사진은 해가 막 뜨기 시작해 캘거리 도심이 육안으로도 잘 식별되기 시작할 무렵에 찍은 것이다. 어둠 속의 풍경도 여러 장 찍었지만 아이폰에 담긴 그림의 해상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보우 강 위로 보행자용 다리가 여럿 세워져 있었다. 위 사진속 터널형 다리도 그 중 하나다. 뛰는 길에 보우 강과 일출 장면을 찍으려는 아마추어/프로 사진가들을 여럿 만났다. 지난 6월 캘거리 다운타운을 잠기게 했던 보우 강이, 이제는 적당한 수량과 높이로,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연출하며 흘러가고 있었다. 



보우 강 위로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물이 거울 노릇을 하며 자연 풍경을 대칭으로 보여줄 때, 나는 종종 감동한다. 캘거리에 좀더 자주 와볼 걸, 하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뛰어볼 만한 코스는 너무나 많았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다운타운 근처의 몇몇 풍경이나 기억 속에 담아갈 수 있을 뿐이었다.



불그스레한 아침해를 받으며 새로운 하루를 맞는 캘거리 다운타운. 페이스북에 이 사진을 올리면서 이렇게 썼다. 'Calgary - clean, neat, modern, young and beautiful.' 캘거리에 대한 내 느낌이 바로 그랬다. 조금만 높은 데 올라서면 로키산맥이 훤히 보이는 도시, 차로 50분 정도면 카나나스키스 컨추리, 캔모어, 밴프 등에 닿아 하이킹, 바이킹, 스킹 등 온갖 야외 스포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도시... 그에 비해 에드먼튼에서는 모든 것이 장거리 여행의 노고를 필요로 했다. 밴프까지는 6시간, 재스퍼까지는 4시간... 부족한 대로, 아쉬운 대로, 캘거리의 풍경과 느낌을 가능한 한 머리 속에 많이 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필스 레스토랑' (Phil's Restaurant)의 메뉴판 표지 그림. 캘거리나 밴프에 가면 거의 예외없이 찾게 되는 단골 아침 장소다. 음식의 푸짐한 양도 마음에 들지만 무엇보다 더 좋은 건 '맛'이다. 마치 집에서 한 듯한 느낌, 소박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음식과 적당한 가격, 레스토랑의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자주 찾게 된다. 



필스에서 아침을 먹고 곧바로 드럼헬러로 가는 대신, 일행을 이끌고 크레슨트 로드로 잠시 돌아왔다. 아침에 뛰면서 본 풍경이, 혼자만 보고 말기에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