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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퍼시픽 림' 로봇, 드디어 도착하다

성준이가 고대해 마지 않았던 영화 '퍼시픽 림' (Pacific Rim) 속의 로봇 '집시 데인저'(Gypsy Danger)와 '크림슨 타이푼'(Crimson Typhoon)이 지난 수요일 (6월26일),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영화 개봉일(7월12일) 전에 나오리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저 멀리 오타와의 완구점에서 배송되는지라, 7월 중순쯤 받으면 다행이겠다 싶었던 터였다. 그 동안 성준이는 '지금은 나왔을까?', '장난감을 실은 트럭이 아직 미국에서 오는 중일까?' 같은 질문 아닌 질문을 입에 달고 살아서, 가끔은 엄마나 아빠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성준이의 유별난 로봇 사랑). 


그러다 온라인 뱅킹 계좌에 들어갔다가 로봇을 선주문한 온라인 숍 - 이름이 '불타는 장난감'(toysonfire.ca)이다, 그만큼 잘 팔린다는 뜻일까, 아니면 인기있는 장난감만 판다는 뜻? - 앞으로 신용카드가 막 결제된 기록을 만났다. 아, 드디어 보낸 모양이구나,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 초면 받아보겠구나, 하고 짐작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오늘 우편함에 소포가 들어있는게 아닌가, 물건을 보냈다는 메일도 아직 날아오지 않았는데... 아마존 같은 대기업도 아니니 그런 면에서는 다소 허술할 수도 있었겠지만. 


성준이는 그래서 생일보다 두 주쯤 뒤늦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선물을 받았다. 꿈에도 단골로 출연한 선물이었다. 그런 각별한 의미를 지닌 마당이니 나도 이른바 '언박싱' (포장 뜯는 장면을 사진이나 비디오로 중계하는 요즘의 IT 유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편함에서 두툼한 박스를 들고 오자 성준이가 처음엔 아빠 소포인 줄 알았다가 엄마와 아빠가 서로 의미심장한 눈짓을 주고 받으며 킥킥 웃자 눈치를 마침내 눈치를 챘다. 오픈 잇! 오픈 잇! 아주 신이 났다.


크림슨 타이푼 (왼쪽)과 집시 데인저를 껴안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성준이. 


하도 오랫동안 노래를 불렀던 선물이라 엄마와 동준이까지 가세해서 기념 사진 찰칵!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낸 집시 데인저와 크림슨 타이푼. 영화 퍼시픽 림에는 총 다섯 대의 초거대 로봇이 나온다 (신장이 80m 안팎이니 우리가 익숙한 마징가 Z나 로보트 태권브이보다도 훨씬 더 크다). 미국산 집시 데인저, 중국산 크림슨 타이푼, 일본산 코요테 탱고, 러시아산 체르노 알파, 그리고 호주산 스트라이커 유레카. 안타깝게도 한국산은 없다. 한국 시장의 영화 흥행을 고려했다면 하나쯤 추가했을 법도 한데...


두 로봇 피겨는 생각보다 더 정교하고 정밀하게 잘 만들어졌다. 관절 부분도 다 움직이고, 신체 각 부위의 소소한 특징들도 충실하게 잘 표현됐다. 예컨대 위 사진의 크림슨 타이푼만 해도, 한자로 '홍적풍폭' ('폭풍적홍'이라고 읽어야 하나?)이라고 적혀 있고, 왼쪽 어깨 보호대에도 그럴듯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포장을 푼 다음날 퇴근해서 보니 두 로봇 앞에 이런 표지가 세 개 서 있었다. 가운데는 'Closed', 양 옆의 표지는 'Warning'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테면 접근엄금, 촉수엄금쯤 되겠다. 위 로봇들에 대한 성준이의 열광이 일주일이나 갈지 의심스럽다. 레고 블록처럼 분해 조립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터리를 넣어 움직이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세워놓고 감상하는 것인데, 그 관심이 얼마나 오래 가랴. 그래도 본인이 그토록 고대하고 원하던 선물을 줄 수 있어서 기쁘다. 먼 훗날, 성준이는 이 로봇들을 얼마나 절절하게 추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