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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성준이의 '맥주 공룡'

어린이들은 모두가 예술가다, 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들은 기억이 난다. 성준이를 보면서 문득 문득 그것이 얼마나 옳은 말인가를 실감한다. 그와 동시에, 그런 예술가적 기질과 열정과 호기심과 에너지가, 도대체 언제 어느 순간에 사라지고 만 것일까,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된다. 그리고 성준이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천진한 호기심과 창의력, 열정을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그리고 부모로서 그런 꿈과 호기심이 꺾이지 않도록 배려해줘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어젯밤엔 갑자기 빈 맥주 캔으로 공룡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벌써 아홉 시가 다 된 시각이어서 너무 늦었으니 내일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니까 아니란다. 오늘 중에 꼭 해야겠단다. 대체 왜 갑자기 공룡이냐고 물었더니 '캘빈과 홉스'에서 캘빈이 공룡 만드는 장면을 봤다고 한다. 지문은 거의 읽지 않고 우당탕 자빠지고 넘어지는 그림에 주로 눈길이 팔려 낄낄 대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어쩐 일로 공룡 만드는 대목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하여 밤중에 공룡 제작이 시작되었다. 


일단 레고 블록으로 다리 부분을 만들고, 그 위에 몸통에 해당하는 맥주 캔을 올려놓았다. 팔과 손은 플라스틱 포크 두 개로 해결했다. 저 맥주 병을 캔 위에 올릴 모양인데, 너무 가분수가 되지 않을까? 밤 아홉 시가 가까운데 밖은 아직 훤하다. 해가 아직 중천이다. 


성준이의 공작에 가장 많이 소요되는 재료는 단연 스카치 테이프다. 요즘 우리집 테이프 소비량의 8, 9할은 성준이가 감당하는 듯. 오른쪽 팔에 감긴 것은 오늘 낮, 급우 마테오의 생일 파티에 가서 받아온 공 선물이다. 바닥에 통통 튀기면 빨갛고 파란 불이 번쩍번쩍 들어온다.


짜잔~! 스카치 테이프의 힘으로 어찌어찌 둔중하기 짝이 없는 맥주 병, 아니 머리를 얹었다. 하지만 위태로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게다가 몸통인 맥주 캔은 텅 비어서 지탱할 힘이 더 없는 형편이다. 어쨌든 이것은 1차 결과물.


머리가 너무 무거운 것 같으니 가벼운 요거트 병이 어떻겠느냐는 아빠의 제안을 너그럽게 수용하셨다. 하여 2차 결과물이 나왔다. 쿠어스 맥주캔으로 만들었으니 쿠어소러스 렉스 (Coorsaurus Rex) 쯤으로 이름을 붙이면 맞을까? 무시무시한 티라노소러스와 달리 이 공룡은 요거트와 맥주를 드시는 평화로운 공룡이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