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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슬픈 한글

페이스북을 통해 삼성경제연구소가 쓴 보고서 한 편을 일별했다. 'CEO가 휴가 때 읽을 책 - 경제 경영 7, 인문 교양 7'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였다. 어떤 책들을 추천했나 싶어 들어가 보았다. 다음과 같은 표 목록이 나왔다.

말로는 경제 경영과 인문 교양을 나눴다지만 거개의 성격은 경제 경영 쪽으로 치우쳤음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였는데, 나는 책들의 내용보다 먼저 제목들에서 충격과 불쾌감을 맛보았다. 


더 체인지, 디맨드, 멀티플라이어, 바로잉, 러쉬!, 시빌라이제이션...에라잇! 도대체 이게 무슨 흉칙한 제목들이란 말인가?! 시빌라이제이션이라고? 영어 제목을 고스란히 뽑아오면서도 정작 지은이의 이름을 제대로 표기하지 못한 - 니얼이 뭐냐 니얼이...나이얼이지! - 대목에서는 이거 혹시 의도적인 블랙코미디인가? 하고 생각했다.


저 제목들이 끔찍해 보이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우리말이 엄연히 존재하고, 따라서 모든 이들에게 더 익숙한 한글로 바꿔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말로 바꿀 수 없는 영어 신조어라면 또 모르겠다. 그저 영어 제목을 그대로 뽑아오면 그게 더 세련돼 보이거나 있어 보인다는 건가? 정말 그런 사고 방식에서 저런 저질 제목들이 나온 건가?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Quiet>의 한글 제목도 <콰이어트>였다.  대체 출판사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대체 뭘하자는 걸까? 그냥 책 한 권 더 팔아먹자는 심산밖에 없는 걸까? 우리말을 더 아름답고 정교하게 갈고 닦아야 한다는 소명 의식은, 정말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실종된 걸까? 방기된 걸까? 


변화, 요구 (혹은 수요), 승수 (혹은 곱하는 수), 빌려오기, 돌진, 문명화...같은 번역어도 그 뿌리는 한자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외어가 아니라 이미 오랫동안 널리 쓰여서 친숙해졌고, 굳이 한자로 쓰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외어라는 점이 중요하다. 시빌라이제이션과 라디오는 다르다. 전자는 외국어지만 라디오는 외래어다. 시빌라이제이션이라는 단어 또한, 시빌리제이션이라고도 발음된다. 생경한 외국어라는 얘기다. 그게 저자에서 문명이나 문화라는 말처럼 널리 이해되고 통용될 가능성도 별로 커보이지 않는다. 왜 굳이 바로잉이고 디맨드며 콰이어트고 시빌라이제이션이란 말인가? 


한국인들은 정말 자기 나라 말과 글에 대해 자존심도 자긍심도 없는가? 과거의 중국(어) 숭배에서 이제 정말 영어 숭배로 방향을 튼 것인가? 이런 서글픈 '트렌드'에서 더욱 비극적인 대목은, 이런 기형적이고 추잡한, 한글의 저질 영어화를 주도하는 것이 다름아닌 언필칭 '지식인'이라는 점이다. 출판사, 영화 수입업자, 교수, 방송인, 정치인 등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배알 없는 헛똑똑이들의 위험성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실 하나는, 우리말을 잘 쓰는 사람이 외국어도 잘 쓴다는 점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우리말의 뜻과 내용을 잘 이해하고 이를 명확하게 쓸 줄 알아야, 외국어도 제대로 쓸 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되잖은 외국어 단어 한두 개를 우리말 속에 섞어 쓴다고 해서 그의 되잖은 외국어 구사 능력이 가려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글은 한글대로 잘 가꾸고 다듬어 쓰고, 영어나 다른 외국어는 그것이 꼭 필요한 부분에서 제대로 쓰는 게 중요하지, 되도 않게 이들을 뒤섞고 교잡해서는 죽도 밥도 안되기 십상이다. 양쪽 다 죽이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더 크다. 


한글의 저질 영어화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문은 수입 영화판이다. 이 질문의 답을 생각해 보시라. 얼마전에 개봉한 'Snow White and the Huntsman'의 한글 제목은? 


정답은 '스노우화이트 앤 더 헌츠맨'. 이 제목이 '백설공주와 사냥꾼'이라는 제목보다 더 '쿨'해 보인다는 근거를 나는 보고 싶다. 저기, 삼성경제연구소가 추천한 책들 중 한 제목처럼, 제발 지식인들이, 우리말을 가꾸고 다듬는 데 앞장서야 할 그들이, 정말 '가끔은 제정신'이었으면 좋겠다. 그만하자.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