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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콜로라도의 학살극', 그리고 '총의 천국' 미국의 비극

Source: TIME


콜로라도 주의 총기 난사 사고를 둘러싼 미국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은 '본말전도'와 위선의 극치를 보여준다. 누구도 '본'인 총 얘기는 안하고 '말'인 기도, 위로, 애도 등 허망한 얘기로 진실을 가린다. NRA의 로비력 탓? 미국인의 맹목적 무지 탓?


총기 사고가 날 때마다 미국의 언론 보도는 판박이식 행보를 되풀이한다. 일단 사진은 사고 현장에서 서로 껴안은 사람들의 모습이나, 그 며칠 뒤 촛불 들고 기도 하는 모습. 그리고 기사는 범인이 얼마나 비정상적이었거나 어떤 정신병적 징후를 가졌는지, 평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따로 떨어져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았다는 식의, 몰아가기 식 보도. 거의 언제나 표나게 결여된 대목은 총 그 자체에 관한 지적, 총기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 월마트에서도 살 수 있을 만큼 온갖 총기류가 지천으로 널린 미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 


Source: Denver Post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총은 아무런 해악도 이익도 끼치지 않는 중립적 도구일 뿐이라는 NRA의 어리석기 짝이 없고 해괴하며 도착적인 궤변은, 참으로 괴이하게도 미국에서'만' 먹힌다. 그렇게 잘 먹힐 수가 없다. 인간이 만든 모든 물건에는 의도가, 목적이, 용도가 있다. 총의 의도는, 목적은, 용도는, 방어든 공격이든 결국 사람/생명에게 해를 가하는 데 있다. 죽이는 데 있다. 아무리 헌법에조차 자위권과 총기 소지권을 인정한 해괴한 나라라지만, 총에 대한 - 자동차와 함께 - 미국인들의 비틀린 인식은, 조금이라도 상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크나큰 미스터리이고, 인권의 차원에서 볼 때는 크나큰 비극이다. 


Source: Business Insider.


이번 콜로라도의 총기 사고에 대한 미국의 몇몇 언론 보도를 봤다. 그리고 혹시나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보도나 칼럼, 사설이 있는지 찾아 봤다. 사실상 전무했다. 미국 지식인들이 즐겨본다는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은 이번 사건을 놓고 그 본질을 파고든 게 아니라, 아예 시를 썼다. 한 마디로 나치즘, 공산주의 같은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목적을 띤 범죄가 줄고 아무런 목적도 명분도 없는 정신병적 범죄가 늘고 있어서 우려스럽다는, 한 마디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였다. 도리어 그 칼럼 밑에 적힌 한 댓글이, 그 칼럼의 10분의 1도 안되는 분량 속에서 더 날카롭고 명징하게 사건의 본질을 지적하고 있었다. 


"Of course you do not name the evil force behind these disturbed individuals. The NRA is their enabler making it possible for disturbed and sick humans to have access to weapons and paraphanalia that allows them to wreak havoc and death on many individuals who happen to be near when they cross the line into insane actions.


Then the NRA uses these same scenes off terror to further frighten Americans into accepting even more unrestricted access to weapons and thus more senseless violence."


대충 번역: "물론 당신은 이 정신병자 뒤에 숨은 악이 누군지 말하지 않겠지. 미국 총기협회(NRA)가 이 뒤틀리고 미친 인간들이 온갖 총기류를 습득해 참혹한 학살극을 도발할 수 있게 만드는 공범 아닌가. 그래놓고 NRA는 이 똑같은 비극과 공포의 현장을 이용해 미국인들을 겁줘서 더 많은 총기를 구입하게 부추기고, 그래서 더 많은 살인극을 낳는 것 아닌가."


"피해자 유족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라는 밋 롬니의 판박이 대응은 익히 예상한 바였으나, 그와 똑같은 말로 얼버무린 오바마의 반응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고, 400만 회원에다 초거대 방산업체의 로비력을 가진 NRA의 위세가 무서웠겠지. 그나마 정치인들 중에서 제 정신이라고 여겨질 법한 코멘트를 한 이는, 내게는 뜻밖에도, 블룸버그 뉴욕 시장이었다 (여기여기를 참조할 것). 


“Soothing words are nice ... But maybe it’s time the two people who want to b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stand up and tell us what they’re going to do about it, because this is obviously a problem across the country. And everybody always says, ‘Isn’t it tragic?’ ... I mean, there’s so many murders with guns every day. It’s just gotta stop. And instead of these two people, President [Barack] Obama and Governor [Mitt] Romney talking in broad things about, they want to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OK, tell us how. And this is a problem. No matter where you stand on the Second Amendment, no matter where you stand on guns, we have a right to hear from both of them, concretely, not just in generalities, specifically, what are they going to do about guns?”


대충 번역: "위로의 말도 좋지만 지금이야말로 미국의 두 대선 후보가 나서서, 미국 전역에서 되풀이되는 총기 사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말해야 할 때가 아닌가? ... 매일 너무나 많은 총기 살인이 자행되고 있다. 이런 사태는 이제 멈춰야 한다. 오바마와 롬니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막연한 소리나 하는 대신,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자위권과 총기 소지를 용인한) 수정 제2조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든, 총기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든, 우리는 그들 두 사람으로부터 대답을, 실질적인 방안을, 그저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총기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들을 권리가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고, 너무나 당연한 대응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말한 정치인은 블룸버그밖에 없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자주 하는 말이지만 다시 한 번, "미국은 참 이해하기 힘든 나라다." 얼마나 더, 이같은 비극이 되풀이 돼야만 그 비극의 본질을 미국 사람들이 보게 될까?


너무 자주 터져나오는 미국의 총기 살인 사건과 그에 대한 미국 사회의 대응/반응을 볼 때마다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말은 옛 속담이다. '총으로 흥한 자 총으로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