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신문-잡지등 '아성' 흔들
지난해 말 미국 유타주 오렘에서 창간된 일간지 ‘오렘 데일리 저널’(http://www.ucjournal.com/)은 7월29일로 종이 신문 발행을 중단하고 8월25일부터 인터넷 신문만 발행할 것이라고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이 신문의 레버 올덤 발행인은 “신문의 미래가 인터넷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는데, 오렘 데일리 저널은 종전까지 분류 광고(Classified Ad)만을 인터넷으로 제공해 왔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이 신문이 갑자기 주목받게 된 것은 인터넷으로 ‘투항’한 첫 일간신문이라는 희소성 때문이지만 잡지쪽은 그렇지 않다. 특히 컴퓨터 관련 잡지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인터넷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인터넷의 잠재력과 시장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해온 컴퓨터 권위지 바이트(Byte·http://www.byte. com/)지가 올해초 종이 잡지를 접고 인터넷으로만 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그 반향은 매우 컸다.
인터넷 사업으로 속속 전환
그뿐이 아니다. 최근에는 PC매거진과 함께 최고 부수를 다투던 윈도즈매거진(http://www.winmag.com)이 종이 잡지 발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줄어드는 광고 수입, 그에 비해 점점 더 늘어나는 유통비용의 부담을 감수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그 첫번째 이유였다. 그러나 윈도즈매거진측은 “이미 전세계 600여만명의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우리 잡지를 읽고 있기 때문에 장래의 수익성은 매우 높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종이 매체의 효용은 사전쪽에서 더욱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지식의 집대성’으로 불려 온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7월27일 인쇄본 발행을 중단하고 CD롬판만 내겠다고 발표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브리태니커측은 “유럽에서만 매년 15만개의 CD롬이 팔리는데 견주어 인쇄본은 거의 팔리지 않고 있다”며 “이는 총 32권으로 권당 평균 1000페이지인 인쇄본 1세트가 900파운드(약 1백71만원)인데 비해 똑같은 분량의 정보를 담은 CD롬은 89파운드(16만9000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리태니커측은 또 “소비자의 요구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더 이상 인쇄본을 출판할 계획은 없다”면서, “종이 매체본을 출판하는 것보다 전자출판 쪽에 힘을 쏟는 것이 수익성 면에서도 훨씬 더 낫다. 전자출판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이제 종이 신문, 종이 잡지의 시대는 끝난 것일까.
라디오가, 또 TV가 등장할 때마다 종말이 예견됐으나 꿋꿋이 살아남았던 종이 매체의 유구한 생명력을 고려하면 이러한 질문은 그리 온당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뉴미디어―이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신문과 견줄 때는 라디오가, 또 라디오와 TV를 견줄 때는 TV가 뉴미디어이다―가 힘을 얻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올드미디어를 대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과 상호 보완관계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 학자들 사이에서 공인된 이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인텔의 앤디 그로브 회장이 내놓은 ‘과격한’ 견해에 따른다면 이 질문은 온당하다. 온당할 뿐 아니라 그 대답 또한 명쾌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지난 4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언론인 연례회의에 참석해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여러분(종이 신문 관계자들)은 광고와 기사 양쪽에서 공격받고 있습니다. 광고 쪽에서는 인터넷 경매 기업이나 정보 사이트들에 의해 분류 광고를 빼앗기고 있으며, 기사 쪽에서는 온라인 뉴스 서비스에 밀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제 3년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인터넷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거나, 아니면 망하거나….”
신문 ‘분류 광고’ 인터넷에 계속 뺏겨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웹에 속박된 신문’(Caught in the Web)이라는 제하의 특집 기사를 통해 종이 매체의 미래가 매우 척박하다고 진단했다.
일단 종이 신문의 ‘외모’만 놓고 보면 아직은 안녕한 것 같다. 라디오와 TV의 현란한 시각(視覺) 공격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신문의 경우 98년 광고 매출액은 439억달러(약 52조원)로 97년보다 6.3%나 증가했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종이 신문의 광고 매출액이 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상 전체적인 광고 매출액은 그보다 훨씬 더 가파른 추세로 늘었다. 신문의 몫은 도리어 줄어든 셈이다.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93~98년 사이에 24.4%에서 21.5%로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종이 신문의 발행부수가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35년간, 프랑스는 30년간 이같은 하락세를 경험했다. 유독 강세를 보이는 곳은 독일인데,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에 따르면 공산주의 몰락 이후 흥미를 끄는 기사가 많아지면서 독자층도 그만큼 더 두터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것도 91년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미국도 80년대 말을 기점으로 지속적인 하향세를 보여준다. 미국 신문협회(NAA)와 신문편집인협회(ASNE)의 98년 미디어 이용 연구에 따르면 77년까지만 해도 전체 인구의 67%가 규칙적으로 신문을 읽었으나 97년에는 51% 선으로 떨어졌다.
종이 신문 관계자들은 신문 독자들의 연령 분포도를 보면서도 진저리를 친다. 노년층이나 중년층에 비해 젊은층의 구독률이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신문의 미래가 밝다고 보기 어렵다. 조사기관인 머서 매니지먼트 컨설팅의 피터 크라이스키 대표도 “우려할 만한 결과”라고 말한다. “신문 구독은 흡연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에 형성되는 일종의 습관이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식탁 앞에서 신문을 펴는 것을 보며 그것을 ‘어른됨’의 징표로 받아들인다. 만약 이런 습관이 어린 시절에 형성되지 않았다면 그가 나중에 신문에 대해 어떤 호감이나 애정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신문의 쇠퇴는 몇몇 사례에서 이미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가령 미국 뉴욕시의 경우 5년 전만 해도 4개의 신문이 있었다. 그 중 뉴스데이지는 95년에 뉴욕 중심가인 맨해튼을 빠져나와 교외 지역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뉴욕데일리뉴스나 뉴욕포스트의 형편도 그리 좋은 편이 못된다. 뉴욕데일리뉴스는 계속되는 적자로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으며, 뉴욕포스트는 어느 정도 구독자 수를 늘리는 데 성공했지만 그야말로 생산비의 최저선까지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이룬 결과였다. 결국 뉴욕타임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위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영국의 신문 사정도 좋지 않다. 4개의 전국지 가운데 흑자를 기록하는 곳은 두 곳밖에 없다. 더 타임스와 인디펜던트는 그 세계적 권위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몇년 전까지 두 개였던 석간신문도 하나로 줄었다.
인터넷 대중화가 급류를 타기 시작한 95년 전후만 하더라도 신문업계에서는 이를 새롭고 값싼 유통 채널 정도로 여겼다. 수많은 신문들이 앞다퉈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고 그 복제본을 게시하던 시절이었다. 이 때만 해도 신문의 인터넷 적응도(?)는 놀랄 만해서, 미국의 경우 97년 현재 3600여 신문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러나 사정이 급변했다. 인터넷이 급속히 독립된 미디어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해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은 다름아닌 신문, 그 중에서도 분류광고였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이나 영국의 신문들은 그 수입의 30% 정도를 분류광고에 의존한다. 지방지의 경우는 50%에 육박하기도 한다.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 갖춘 신문은 산다”
인터넷은 바로 이 부분, 신문의 핵심 수입원을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AOL 워크플레이스 채널, 몬스터(이상 구인/구직 광고), 아마존, 이베이(이상 경매 광고), 리얼터, 렌트넷(이상 부동산 광고), KBB, 카포인트(이상 자동차판매 광고) 등이 신문의 분류광고란을 점점 더 썰렁하게 만든 것이다. 인터넷의 분류광고는 발빠른 정보 갱신, 뛰어난 검색 기능, 전세계 어디에서나 손쉽게 접속할 수 있는 접근성 등 어느 모로 보나 신문의 그것보다 월등했다. 승부는 처음부터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터넷 분류광고의 여파는 곧바로 나타났다. 미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98년 분류광고는 97년보다 8~15%나 떨어졌고, 실리콘밸리의 대표 신문인 새너제이머큐리뉴스의 분류광고도 비슷한 비율로 하락했다. 여러 대규모 신문사들이 힘을 합쳐 커리어패스(http://new.careerpath.com·구인/구직), 아파트먼츠(http://www.apartments.com·부동산), 카스(http://www.cars.com·자동차) 같은 인터넷 분류광고 서비스 회사들을 차리기도 했지만 종이 신문의 하락을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일반 사람들의 뉴스 접촉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전문 조사기관인 주피터 커뮤니케이션스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의 12%가 뉴스를, 그 중에서도 속보를 보기 위해 접속한다고 대답했다. 10명 중 1명 이상이 속보의 원천으로 신문 대신 인터넷을 더 찾는다는 얘기다. AOL이나 야후처럼, 전통적인 의미의 ‘언론’이 아니면서도 뉴스원(源)으로서의 위세를 점점 더 늘려가는 인터넷 사이트가 늘고 있다는 점은, 따라서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스포츠나 연예 분야도 비슷한 현상을 보여준다. 신문보다 인터넷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ESPN, 스포츠라인 같은 스포츠 전문 사이트나, 이온라인(e-online)이나 아이빌리지(iVillage) 같은 연예 및 여성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가 높은 인기를 누린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종이 신문의 운명은 ‘몰락’일 뿐인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인터넷이 신문 산업을 붕괴시킨다 해도, ‘뛰어난 분석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양질의 기사’에 대한 수요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쉽게 쓰이고 쉽게 발표되는 글일수록 그것이 ‘쓰레기’일 위험성도 그만큼 높은 법이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전망하는 장래 종이 신문 시장에서 여전히 살아남은 것은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춘 신문,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는 신문이다. 결국 그렇지 못한 대다수 종이 신문들로서는 앤디 그로브 회장의 경고대로 ‘3년 안에 인터넷에 적응해 살아남거나,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셈이다. <김상현 기자> NEWS+ 1999년 9월2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