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의 '영어 제국주의'

'영어 제국주의'까지는 아니어도, 인터넷의 영어 편중 현상은 여전히 심각하다. 가히 인터넷의 공용어라 할 만하다. 이 기사를 쓸 당시만 해도 인터넷 인구는 1억5천만여 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페이스북 이용자만 해도 이보다 5배쯤 더 많다. 인터넷 인구는 물론 10억을 이미 넘어섰다. 그새 중국의 영향력도 더욱 막강해졌지만,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중국어가 인터넷의 공용어로 쓰일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의 영향력이 더 세졌느냐 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각기 다른 언어로 쓰인 콘텐트의 절대량 자체가 워낙 늘었고,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영어나 중국어를 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각자의 모국어로 된 콘텐트의 양과 질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언어끼리의 통역이나 번역도 현실의 그것처럼, 적당한 수요만 있으면 언제든 소통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구글이나 다른 검색엔진들에서 제공하는 번역기의 기능이 나날이 더 좋아지고 있다는 점도, '영어 (혹은 중국어) 제국주의'의 우려를 다소나마 덜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2012년 3월2일)

영어는 지구촌 표준어? | 세계인구 4명 중 1명은 영어 사용 | 인터넷 확산 힘입어 갈수록 맹위
NEWS+ 1999년 3월11일치 

97년 1월 중국이 대만 부근 해역에서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할 계획이라는 기사가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동아시아 지역은 돌연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고, 수많은 인터넷 이용자들은 아시아 정세를 다루는 여러 온라인 뉴스그룹으로 몰려들었다. 곧 토론자들끼리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 중국의 계획을 비난하던 한 토론자가 갑자기 이렇게 비아냥댔다. "나도 당신들이 엄청나게 많은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당신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건 영어교육인 것 같다. 중국인들은 영어 철자법도 제대로 쓸 줄 모르나?"

다른 토론자가 즉각 감정적으로 되받았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너희 미국보다 훨씬 더 커져 봐. 중국인들의 문자 해득력이 미국인들보다 훨씬 더 높아져 봐. 그때는 우리 중국식 영어(Chinese-English)가 당신네 개떡 같은 양키 영어보다 훨씬 더 널리 쓰이게 될 걸."

인터넷 홈페이지 84%가 영어… 독일어의 20배

이후 양안(兩岸)을 감돌던 전운은 가라앉았고, 이들의 온라인 싸움도 시들해졌다. 그러나 인터넷 가상공간의 전운은 이후에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영어와 비(非)영어, 혹은 영어권 문화와 비영어권 문화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면서 여전히 삐그덕대고 있다.

영어를 모르면 인터넷에서도 괴롭다. 단순히 정보를 얻고 해석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또다른 정보원(源)인 뉴스그룹에 참여하는 것은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설령 참여한다고 해도 주제와는 동떨어진 영어실력 때문에 핀잔을 듣거나 소외되기 십상이다.

영어가 현실사회의 공용어로 행세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세계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5억명이 영어를 쓰고 있으며, 나머지 4분의 3에서도 그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책, 신문, 잡지, 항공관제, 국제 무역, 학술회의, 스포츠, 외교, 대중음악, 광고 등 영어의 영향력은 실로 전방위적이다. 단순히 인구로만 따지면 중국어에 이어 세계 제2위지만 실제 쓰임새는 그와 견줄 바가 못된다. 미 시카고대학의 언어학 교수인 에얌바 보캄바 박사는 "인류 역사상 영어만큼 많은 나라와 지역으로 확장된 언어는 일찍이 없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러한 영어의 위세가 세기말로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1억5000만명 이상의 사용자를 갖게 된 인터넷 때문이다. 60년대말 미국으로부터 태동했다는 인터넷의 '출신 성분'만 본다면 그 주축 언어가 영어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넘도록, 특히 급속한 대중화 바람을 타고 매년 100% 이상의 증가세를 보여온 90년대 이후에도 영어의 지배력이 요지부동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현재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80~85%는 영어다. 그 비율은 2~3년전보다 7, 8% 떨어졌지만 그 지배력만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순수 민간기구인 '인터넷 소사이어티'의 연구 결과는 인터넷의 영어 중심주의를 잘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무작위로 뽑은 3239개의 인터넷 홈페이지 가운데 2722개가 영어로 돼 있었다. 84%다. 4.5%를 기록한 2위 독일어보다 20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인터넷은 미국 문화제국주의 전도사?

보캄바 교수는 "영어가 결국 다른 언어들의 발전을 가로막을 것"이라면서, 현재 중국에서 200여만명의 교사들이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든다. "중국이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고 국제문제에 관여하는 일이 늘면서 영어에 대한 수요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그는 전망한다.

언어는 단순한 미디어나 기호체계, 혹은 코드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영국 브리스톨대학의 언어학 교수인 앤드루 우드필드는 '사멸 위기에 놓인 언어의 보존'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언어는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문화적 전통, 생활 및 표현방식, 문화적 동질성 등을 담는 그릇이다"고 썼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비영어권 나라들이 인터넷에 대해 '미국의 문화제국주의를 전파하는 또다른 도구'라며 경계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그 중에서도 자국 문화에 대해 드높은 자긍심을 자랑해 온 프랑스의 경계심은 특히 더 높다. 프랑스는 영어 중심의 인터넷이 자국 문화를 파괴할지 모른다며 높은 담을 쳤다(부속기사 참조).

싱가포르 - 중국 - 중동선 인터넷 정보검열 등 통제

싱가포르는 인터넷에 만연한 개인주의와 저질 문화가 자국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할 위험성이 있다며 인터넷의 정치 및 종교관련 정보를 검열하고 있다. 중국은 인터넷이 국내 반체제 인사들의 무기로 전용되거나 자국 국민 사이에 자본주의적 가치를 전파할 수 있다며 엄격한 통제정책을 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들은 인터넷이 서방의 문화적 제국주의를 퍼뜨리는 도구라며 그에 대한 정보검열과 통제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들 나라로서는 '정보고속도로' 건설에 뒤떨어질까봐 노심초사하며 자국 언어나 문화에 미칠 파장을 뒤로한 채 인프라 구축에 열중하는 일본이나 한국 같은 나라들이 이상하게 비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대세다. 이미 전세계를 하나로 잇는 네트워크, 인류 지식의 집산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들 나라의 대응이 비현실적으로 비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디어 바이러스' '사이베리아' '카오스의 아이들' 같은 저서를 통해 뉴미디어 환경과 문화에 천착해 온 인터넷 전문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그에 대해 "인터넷의 본질과 특성에 무지한, 혹은 그를 무시한 실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터넷의 뿌리가 미국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바로 '인터넷은 미국적인 것'이라는 논리와 통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면서 "오히려 '미국이 인터넷화한 것'이라고 봐야 옳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인터넷이야말로 가장 '반제국주의적인' 도구다. "인터넷은 권력집중이 아닌 분산형이므로 소수 언어나 비영어권 국가들도 얼마든지 그 나름의 정보와 문화를 생산, 유통시킬 수 있다. 인터넷은 오히려 사멸하거나 박제화될 위기에 놓인 언어나 문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전할 수 있는 도구다"고 그는 주장한다.

미 서머언어연구소에 따르면 세계 228개국에서 통용되는 6700여 언어 중 절반 이상이 2050년 안에 사멸할 운명이다. 인터넷은 이를 가속화할 것인가, 아니면 막거나 둔화할 것인가. 열쇠는 양날의 칼인 인터넷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달린 것 같다.

프랑스는 '영어와의 전쟁'중 ... 인터넷 영어정보 일부 통제…자국어 사용 적극 권장

영어에 대한 프랑스의 경계심은 프랑스 기업 이름과 광고에서의 영어 사용을 제한한 이른바 '투봉법안'에서 잘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는 음악도 40% 이상은 프랑스 음악이어야 한다.

프랑스의 그러한 경계심은 인터넷의 급격한 대중화와 함께 더욱 깊어졌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인터넷 교통량의 90%가 영어 정보라는 사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프랑스 문화계 인사들은 '문화 전쟁'까지 선포했다.

인터넷 정보 할당제와 '라 프랑코포니'(La Francophonie·'프랑스어 사용권(圈)'이라는 뜻)는 그런 위기감의 산물이다. 인터넷 정보 할당제는 방송량의 40~60%를 유럽 당사국의 작품으로 채우도록 의무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나 유럽 나라들로 유입되는 인터넷 정보를 일정부분 통제하면서 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많은 양의 자국 정보를 유통시키겠다는 발상이다.

한편 '라 프랑코포니'는 인터넷 가상공간에서의 프랑스어 사용을 권장하고 보전하기 위해 프랑스의 문화계 인사와 관련기관들이 만든 그룹이다. 인터넷에 홈페이지도 열었다.

프랑스의 이러한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인터넷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가뜩이나 자체 통신망인 미니텔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뒤떨어진 네트워크 환경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죽어가는 언어' 인터넷이 살린다 ... 중국 하카족 등 인터넷 통해 소수 언어 보존

1961년 미 인디애나대학에 설립된 비영리 그룹 '몽골협회'는 90년대 초부터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기 시작했다. 몽골의 연대기를 비롯해 몽골 음악, 관련 학술논문 등을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오클라호마 원주민어 프로젝트'는 체로키, 오사지, 촉토 등 사멸 위기에 놓인 언어들을 보존하고 홍보하는 데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해당 언어를 리얼오디오로 듣는 것도 가능하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하카족(Hakkas)의 언어도 인터넷을 통해 새 삶을 얻었다. 기원전 200년경부터 중국 일대에 흩어져 살던 하카족은 강력한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해 왔는데, 조나단 테오라는 사람이 그에 착안해 영어와 하카어 두 개로 서비스되는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다. 테오는 "전화기로 160명을 한데 모을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하카족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토론하고 채팅하는 것을 보며 인터넷의 위력을 실감한다"라고 말한다.

8년째를 맞은 '차이나 뉴스 다이제스트'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영어로만 세계 곳곳의 중국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뉴스를 전해 오다 중국어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면서 '하우 지아 웬 자이'라는 중국어 온라인 잡지까지 만들었다. 지금은 43개 지역과 나라들에서 2만여명의 중국인들이 전자우편을 통해 자국어로 된 잡지를 읽는다.

그래서 뉴욕대 영문과의 스티븐 비숍 교수는 "인터넷에서 영어는 다른 언어에 대한 위협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돕는 보완물이다"고 말한다. <김상현 기자>

---

"한글도 먹힌다고? 글쎄올시다"  | 인터넷 활용 잘하면 우리말 세계에 알릴 호기

"오 마이 갓!"(Oh, My God).

개그맨 김국진의 능청스런 한 마디에 방청석과 시청자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린다. 이 말은 요즘 신세대들 사이에서 "이런!" "아이쿠!"라는 우리말 감탄사를 대신해 즐겨 쓰인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주병진의 데이트라인' '김혜수의 플러스 유'(이전에는 '이승연의 Say Say Say'였다) 등 영어의 활용이 예전보다 한층 다양해지고 다채로워진 느낌이다.

외국영화 수입사들은 제목을 한글로 번역하는 수고를 아예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Shakespeare in Love),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 '씬 레드 라인'(Thin Red Line) 등 영어를 발음대로 옮겨적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제목이 도리어 튀어보일 정도다.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이나 '벅'스 라이프'(Bug's Life)에 이르면 영어의 축약기호를 한글에 덧붙이는 '새로운 표기법'까지 창조된 양상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좁아진 세계, 지구촌 시대에 미국 문화의 위세는 날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미국 문화와 우리 문화 사이의 간극이나 전달되는 과정의 거름 과정(Filtering)은 사실상 사라져 버렸다. 우리 생활에서 영어는 더이상 번역되거나 '외래어'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 영화 제목에서처럼 즉각적으로 소통된다.

인터넷의 급속한 대중화가 이러한 흐름에 가속도로 작용했다. 우리나라에서의 인터넷 성장세는 해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97년 2월 한국 아이네트가 집계한 인터넷 이용자 수 70만명은 98년 11월에 180만명(IDC집계), 99년 1월에 310만명(한국전산원 집계)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것은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표 참조).

이러한 자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터넷이 담은 언어, 인터넷이 담은 문화가 그만큼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우리나라에 퍼졌다는 뜻이다.

인터넷을 일상적으로 쓰는 사람들에게는 '전자우편'이라는 말이 '이메일'(E-Mail)이라는 말보다 한층 더 낯설게 들린다. '월드와이드웹'(WWW) '유알엘'(URL) '하이퍼링크'(Hyper-link) '홈페이지'(Home page) '사이트'(site) '서치 엔진'(Search engine) 같은 용어도 고스란히 쓰인다. 다만 한글이라는 '문자'로 변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영어는 자연스럽게 한글과 혼용되고, 우리 문화의 한 부분으로 편입된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우리말과 글을 파괴할 것인가. 집어삼킬 것인가. 적어도 국어 순수주의자의 눈으로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더 널리 본다면 우리말과 글은 새로운 진화를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한글 사멸론'은 지나치게 성급할 뿐 아니라 잘못된 예측이라는 사실이다. 적어도 국내 상황을 보면, 수많은 우리말 '사이트'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인터넷의 우리 정보나 이용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우리말 사이트-한글정보 이용자 꾸준히 늘어

'인터넷이 우리말과 글을 파괴한다'는 주장도 일면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인터넷이 그런 면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거꾸로 우리말과 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때 한글 대신 영어를 써야 한다는 점이 또다른 역설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인터넷이 과거의 그 어떤 통신 매체보다도 훨씬 더 강력하고 광범위하며 지속적인 전파력을 지닌다는 점에 비춰 보면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도구이기도 한 셈이다.

삼성문화재단이 제공하는 '코리아 인사이츠'(korea.insights.co.kr) 같은 홈페이지는 우리가 인터넷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 좋은 참고자료를 제공한다. 한글과 영어로 제공되는 이 사이트는 우리말과 글, 문화, 자연, 풍습, 역사 유적 등에 대한 정보를 유려한 디자인으로 풍성하게 전하고 있다.

'인터넷'은 도구일 뿐이다. 반드시 우리말이 영어에 '먹힌다'고 볼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영어를, 전세계를 잇는 인터넷의 '공용어' 쯤으로 간주한다면 좀더 넉넉하고 자유로운 활용 가능성이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경계하고 비판하는 것만으로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김영신 기자>

---

인터뷰/독일 슈피겔 마틴 되리 편집부국장 | "중요한 건 자국어 다듬는 노력"

전세계에서 1억명이 사용하고 있으며 인터넷 공간에서도 영어에 이어 제2의 언어로 꼽히는 독일어. 그 미래는 과연 어떨까.

마침 2월25일 내한한 독일 최대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마틴 되리 편집부국장을 만나 독일어와 독일문화의 미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예컨대 남미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독일어를 공통언어로 사용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세계인들이 서로 의사소통하는 '제2의 언어'로서 영어의 현실적인 기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나름대로 풍부함을 자랑하는 독일문화도 세계인의 시선에서 점차 멀어질텐데.…

"물론 아쉽습니다. 유럽연합 안에서도 20~30년전에 비해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이 줄었습니다. 이런 추세는 당연히 문화간 교류를 줄이고 각문화의 풍부한 발전도 제약할 겁니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동구권에서는 독일어 학습 열기가 대단하다는데….

"일부 그런 현상이 있으나 그것은 전환기적 현상일 뿐입니다. 결국은 모두 영어를 제1 외국어로 선택할 겁니다."

유럽의 독일어권을 벗어난 지역에서의 독일어의 위상을 전망한다면….

"현재 유럽만을 놓고보면 독일어 사용 인구가 1억명으로 제일 많습니다. 그러나 배우기가 어려워 앞으로는 독일어권이 '섬'처럼 되고말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영어의 지배력을 '제국주의적'이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어느 한 민족이나 나라가 다른 민족이나 나라를 집어삼키겠다는 의도로 그런 현상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테니까요. 그리고 영어와 미국문화의 영향력이 증대된다고 해서 각 민족문화의 '특별한 내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18세기 유럽 귀족들이 모두 프랑스어를 사용하던 것에 비하면 지금 영어의 영향력은 오히려 그보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각 민족이 자국어와 문화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의 문제겠지요." <김창희 기자>

---

영어 몰라도 OK… '통역 도우미'뜬다 | '알타비스타'등 소프트웨어 개발 활기 | 언어장벽 허무는 '바벨 프로젝트'도 진행중

인터넷은 결국 영어와 영어권 문화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그리하여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나라가 자국의 고유한 문화를 상실한 채 저급한 미국 오락문화에 흡수돼 버릴 것인가.

적어도 몇몇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그에 대해 단호히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바로 통역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들이다. 이들은 비록 세계의 모든 언어를 보전할 수는 없겠지만 수천만명 이상이 쓰는 영어 이외의 주요 언어들은 그 본래 용도를 결코 잃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대로 각자 다른 언어를 쓰면서도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매력적인 대안도 없을 듯싶다. 알타비스타(babelfish.altavista.com/cgi-bin/translate?)의 통역 서비스는 미흡한 대로 그러한 미래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컴팩컴퓨터가 소유한 알타비스타는 일반 검색 서비스에서 자랑해 온 '신속성'을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아무리 긴 문장이라도 불과 몇초면 충분하다. 단점이라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5개 국어와 영어간의 번역만 가능하다는 점. 문장 구조와 어순이 비슷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어려움도 적다.

몇몇 국내 온라인 기업들이 제공하는 자동 한-일 번역 서비스도 언어의 장벽을 일정 부분 허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직 번역 수준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그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수록 기술적 발전 속도에도 힘이 붙을 전망이다. 인터넷에서는 한국통신이 제공하는 정보탐정(www.infocop.com)을 통해 일본어-한글 번역 서비스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한-일 번역' '정보탐정'등 한-일 언어장벽 허물어

세계의 다종다양한 언어들이 자유롭게 소통되도록 하는 꿈은 이미 여러 민간기구들을 중심으로도 심도있게 진행되고 있다. 그 중 인터넷 소사이어티와 알리스 테크놀로지사가 손잡고 진행중인 '바벨' 프로젝트(www.isoc.org:8080/)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인터넷 소사이어티는 인터넷 개발에 기여해 온 관련 전문가들이 결성한 비영리 민간 단체. 한편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알리스 테크놀로지사는 다국어 브라우저인 '탱고'를 개발해 비영어권 국가들에 판매하고 있는 회사다.

'바벨' 프로젝트는 전세계 언어들의 다양성과 특질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자유롭게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담고 있다. 인터넷 소사이어티는 그를 위한 전단계로 세계의 주요 언어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아랍어 독일어 중국어 말레이어 등 16개국 언어로 작업 진척 상황을 알리고 있다.

그 연원(淵源)과 구조가 다른 수천 종의 언어를 자유롭게 소통시키는 일은 무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그 성공의 대가, 즉 영어 지배시대에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보존할 뿐 아니라 확산시킬 수 있는 지렛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을 유혹하는 결정적 요소이기도 하다.

그것은 과연 바벨탑이 무너지고 세계 각 민족이 의사소통의 도구를 잃은 이후 최대의 빅 이벤트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김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