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 기사

인터넷 경영인들의 성공비결

"중간상인 없이 직접 팔아라" 
앤드루 그로브· 마이클 델·제프 베조스·빌 게이츠·손정의 5人의 경영전략 | NEWS+ 1999년 9월30일치

▶앤드루 그로브 인텔사 회장

편집광(偏執狂).

국어사전에는 '어떤 일에 집착하여 상식 밖의 짓을 태연히 하는 정신병자'라고 돼 있다. 한마디로 정상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앤디 그로브 인텔 회장은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한다. "정신착란증에 걸린 사람처럼, 초긴장 상태로 항상 경계하는 자만이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상품에 불량은 없는가, 충분한 검토 없이 제품을 시판하는 것은 아닌가, 너무 많은 공장을 세운 건 아닌가, 적절한 인재를 채용했는가, 윤리의식에는 문제가 없는가… 한마디로 경영 전반에 대한 편집증적 고민이다.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표지(標識)가 상징하듯 전세계 컴퓨터 산업의 한 상징 같은 기업의 총수치곤 너무 속좁은 고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를 '정신병자' 수준으로 몰아가는 진짜 고민거리는 그 스스로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lection Point)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언제 어떻게 닥칠 것인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어떤 사업 영역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는 시점'이다. 일개 기업 수준이 아니라 시장 환경 자체가 변하는 그 격변기를, 새로운 기술 도입이나 경쟁사들과의 싸움에 전념하는 정도로는 헤쳐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꼭 재난을 뜻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것을 잘 활용할 경우 도리어 엄청난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는 늘 전략적 변곡점의 제물이 아니라 그 원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그로브 회장은 말한다. 1980년대 중반 인텔이 일본 반도체업계의 역풍을 맞았을 때 메모리 사업을 포기하고, 당시로서는 새로운 분야였던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에 눈을 돌렸던 그의 결정은, 말하자면 인텔을 전략적 변곡점의 제물이 아니라 원인으로 만든 가장 극적인 선택이었다.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저서(한국경제신문사 펴냄)에서 드러나는 그로브 회장의 시각은, 기업적이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적이다. 그는 자잘한 기업 경쟁에 연연하지 않는다. "어떤 체계적인 계획으로도 (전략적 변곡점과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기업이 어떤 제품으로 승리하거나 패배했는지를 파악하는 데 매달리지 않는다. 수많은 경쟁, 혹은 제휴 기업들이 어떤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는지, 그리하여 어떤 시장 격변이 닥칠지를 전망하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다. 그의 모습은 한 기업의 경영자라기보다는 경영 환경의 흐름 전반을 꿰뚫어 보는 '그랜드 플래너'(Grand Planner)의 모습이다. 

▶마이클 델 델컴퓨터 회장

그로브가 다소 이론적이고 모호하며 광범위하다면 마이클 델(델컴퓨터 회장)은 지나칠 만큼 단순하고 명료하다.

'직접 팔아라'(Be Direct).

이것은 그의 저서에 대한 한글 제목(원제는 'Direct from Dell')이면서, 동시에 델컴퓨터의 모토이다. 델컴퓨터를 90년대 미국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과 투자수익률의 초우량 기업으로 키운 주문(呪文)이기도 하다.

1984년 단돈 1000달러로 시작한 델의 컴퓨터 판매업은 '중간 상인을 배제하고 고객 맞춤형 컴퓨터를 조립해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판다'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아이디어에 힘입어 기록적인 성장을 계속했다. 특히 인터넷의 대중화는 거기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어 지난해 델컴퓨터를 세계 제2위의 컴퓨터 제조업체로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델컴퓨터의 벼락 성공에는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 단순히 '중간 상인 없이 직접 판다'는 아이디어뿐일까. 그의 저서 '직접 팔아라'(동방미디어 펴냄)가 내놓는 답은 '노'(No)다. 그 이면에는 놀랍도록 다양하고 역동적인 델 회장만의 경영 전략이 숨어 있다.

예컨대 그는 "하이테크와 하이터치를 결합하라"고 강조한다. '하이터치'는 고객들과의 충분한 접촉을 가리킨다. 고객과의 충분하고 직접적인 피드백을 통해 양질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드러난 대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델컴퓨터의 성공을 뒷받침한 힘은 인터넷에 대한 델 회장의 깊은 이해다. 그는 "인터넷 시대에는 공급-수요의 방정식을 뒤집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넷에서는 오히려 '무한대의 공급, 한정된 수요'라는 독특한 원리가 작용한다. 그의 말이다. "가격은 절대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 경쟁력은 가격 그 자체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감하고 빠른 실행에서 더 쉽게 나타난다. 고객을 막연한 집단이 아닌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으로 개인화하고, 고객을 위한 최적의 편의성과 상호작용의 최대 용이성 등에 주목해야 진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콤 회장

마이클 델 회장이 인터넷을 적절히 활용하는 쪽이라면, '지구 최대의 온라인 서점' 아마존을 일군 제프 베조스 회장은 아예 인터넷을 중심으로 살고, 호흡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인터넷의 월마트'로 불릴 만큼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취급하는 아마존이지만 95년 6월 첫발을 뗄 때만 해도 그것은 무(無)에 가까웠다. 반스앤노블이나 보더스처럼 방대한 체인점도 없었고,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같은 막강한 브랜드 파워는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아마존이 뛰어든 무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직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가상의 서부였다. 몸집이 작다는 것도 인터넷에서는 큰 무기였다. 반스앤노블이나 보더스는 수백개에 이르는 체인점 때문에 인터넷 사업을 마음대로 펼 수 없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60억달러(99년초 현재)로 반스앤노블과 보더스의 시가총액을 더한 것보다도 많다.

아마존을 인터넷 기업의 '신화'로 만든 베조스 회장의 전략은 무엇일까. 저널리스트이자 경제 분석가인 레베카 손더스는 '아마존의 성공비밀'(리드북 펴냄)에서 이를 10가지로 요약했다.

①전자상거래를 중심으로 살고 호흡하라. ②창의적인 기업인들로 자리를 채워라. ③초점을 맞춰라. ④사이트를 브랜드화하라. ⑤가치 있는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확보하고 지켜라. ⑥탁월한 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⑦작은 몸집을 유지하라. ⑧기술력을 연마하라. ⑨혁신과 세련된 개조에 힘쓰라. ⑩최고와 더불어 성장하라.

인터넷의 특성을 더없이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보이는 ① ④ ⑦ 세 항목외에는 종래의 경영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한 전략. 그러나 베조스 회장은 이 원칙들을 철저히 실행에 옮김으로써 아마존을 최고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청림출판 펴냄)가 보여주는 빌 게이츠의 경영론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DNS'라는 한 단어다. Digital Nervous System의 약자인 DNS는 흔히 '디지털 신경망'으로 번역된다. 호흡, 혈액 순환, 소화 작용 등 생명체의 유지 발전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생물학적 신경망처럼 세계 곳곳의 기업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디지털 신경망)를 구축, 끊임없이 변화하는 새 정보를 빠르게 입수하고 적용함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는 마치 선언과도 같은 말로 자신의 책을 시작한다. "기업 경영에서 80년대가 품질, 90년대가 리엔지니어링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속도'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는 2000년대가 비즈니스의 본질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비즈니스 그 자체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를 확인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원동력은 '디지털 정보'의 유통. 따라서 책 제목처럼 '생각의 속도'로 경영하지 않고는 2000년대의 시장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머리 속에 새로운 아이디어나 정보가 퍼뜩 떠오르는 순간, 그것을 곧바로 현장에 적용하는 초고속 기업 경영이다. 그가 속도와 디지털 신경망을 결합해 내놓은 경영 비법은 모두 12가지. 그러나 그 핵심은 베조스의 것과 유사하다. 인터넷 속에서 살고 호흡하라는 것. 인터넷과 기업 경영을 얼마나 잘 통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갈린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꿈과, 그리고 아무 근거도 없는 자신감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그의 이 회고담은 이제 막 기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힘이 된다.

그의 경영 기법도 마찬가지. 주로 동양, 특히 중국과 일본의 병법가들로부터 그 핵심을 얻어온 것이어서 우리에게는 다른 외국의 기업가들보다 더 친숙하고 모방 가능하게 여겨진다.

그는 정보화 사회를 네 단계로 나눈다. TV, 라디오, 잉크 등 아날로그 정보를 제공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주역인 ①아날로그 정보 기술(AIT) 단계, AIT를 이용하는 언론사 출판사 영화사 등 미디어가 주역인 ②아날로그 정보 서비스(AIS) 단계,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인프라 같은 테크놀로지를 제공하는 회사가 주역이 되는 ③디지털 정보 기술(DIT) 단계, DIT를 도구로 써서 ④디지털 정보 서비스(DIS)를 제공하는 단계. 결국 앞으로의 경영 성패는 ④단계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그가 제시한 해답은 손자병법을 모태로 한 '손의 제곱병법'이다. 그중 손정의의 창의성이 돋보이는 것은 네트워크형 조직이나 제품군(群)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강조한 '일류공수군(一流攻守群)'과 7할의 승산이 있을 때만 싸운다는 '정정략칠투(頂情略略七鬪). 강온 양면 전략을 적절히 구사, 소프트뱅크를 최고의 콘텐츠 기업으로 키운 그의 비결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