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 돌연변이·미토콘트리아 손상설등 연구활발…“10년내 밝혀질 것” | NEWS+ 1998년 1월15일치
그녀가 열다섯살 때만 해도, 마치 마녀의 저주처럼 보이는 유전자 결함의 징후는 밖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스물두살 때, 그녀는 백내장에 걸렸다. 서른살 때 그녀의 머리카락은 회색으로 변하면서 빠지기 시작했다.
서른한살에 폐경기를 맞았고, 서른여섯살이 되자 그녀의 피부는 고통스러운 만성 염증에 시달렸다. 40대가 되면서 그녀는 당뇨병에 걸렸고, 그녀의 목소리는 쪼그랑 할멈의 그것처럼 변해버렸다. 그리고 쉰일곱에, 그녀는 적어도 아흔살은 된 것 같은 모습으로 사망했다.
이 일본계 미국인 여성의 사례는 「베르너 증후군」(Werner's syndrome)이라는 급성 조로병(急性早老病)의 증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준 다. 베르너 증후군 환자는 전세계적으로 13만명 안팎에 불과할 만큼 드문 병이지만, 적잖은 과학자들은 여기에 「노화」의 비밀을 밝혀 줄 블랙박스가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베르너 증후군은 노화에 관한 한 자연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단서』라고 MIT의 레너드 개런트 박사는 말한다.
베르너 증후군은 독일인 의사인 오토 베르너(1879~1936)가 94년 전(1904년)에 학계에 처음 보고하면서 알려졌다. 그러나 본격적인 관 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2년 남짓, 95년 미 시애틀의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이 병의 유전자 결함을 규명하면서부터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간의 경우 「wrn」으로, 효모 세포에서는 「srs-1」으로 불리는 베르너의 유전자는 「헬리카제」(Helicase)라는 효소를 만 들어낸다.
보통 이 효소는 DNA의 이중나선을 풀어주는 기능을 하는데, 이는 세포의 단백질 생산 초기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단 백질은 신체내 모든 조직의 구조와 기능을 결정하는 생화학물질이고, DNA의 이중나선을 풀어내는 작업은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첫 단 추인 셈이다.
“산소 전달계 손상돼 노화 초래” 주장도
MIT의 연구자들은 최근 발간된 학술전문지 「세포」에 실린 연구 논문에서 효모에 들어 있는 헬리카제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세포로 하 여금 일반적인 노화와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유발케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미 워싱턴대학의 조지 마틴 박사팀은 베르너 증후군을 유발하는데 두 개의 돌연변이 복제 유전 자가 이용되며, 단 한 개의 돌연변이 복제 유전자를 가진 경우에는 정상인과 똑같아 보이지만 환경적인 돌연변이 유발요인에 대해서는 훨씬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과 다른 이론을 펼치는 과학자도 적지 않다. 예컨대 미 에모리대학의 더글러스 월리스 박사는 미토콘드리아의 손상을 노화의 배후 원인으로 꼽는다. 각 세포에 들어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일종의 에너지 공급원이다. 연료 공급이 끊기면서 세포가 제 기능을 못하고, 결국 노화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베르너 증후군과 노화의 관련성이 여전히 논란을 빚고 있는데 견주어 「미토콘드리아 손상설」은 점점 더 많은 증거를 얻어가는 이론이 다. 각 세포 안에 수천 개씩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연료삼아 영양분을 에너지로 바꾸는 발전소와 같은 구실을 한다.
이것이 제대로 기능할 경우 모든 전자는 산소에 의해 다른 전자와 쌍을 이루지만 산소를 함유한 분자가 쌍을 이루지 않은 전자와 결합할 경우 「자유전자」(Free Radical)가 만들어진다. 자유전자는 DNA에 손상을 입히는 주범이다.
미토콘드리아에 자유전자를 무력화하는 효소가 있지만 완벽하지 못하며, 이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아예 자유전자에 의해 손상되는 경 우도 있다. 월리스 박사는 『이러한 손상이 노화의 전적인 원인은 아닐지라도 상당 부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 분야의 또다른 전문가인 레너드 헤이플릭 박사(미 샌프란시스코대)는 『노화의 진짜 원 인은 세포의 치유 메커니즘이 손상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36년전 모든 살아 있는 세포들은 그들이 분열할 수 있는 횟수에 따라 정해진 수명을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른바 「헤이플릭 한계」다.
헤이플릭 박사는 『인간은 노화현상을 지닌 유일한 종』이라면서 『만약 장수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라 면 연구의 초점은 노화에 따른 「현상」이 아니라, 왜 인간은 그들의 번식 역할을 다 마친 다음에도 수십년씩 더 살아갈 수 있는지에 맞 춰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쭈글쭈글한 피부 때문에, 또는 흰 머리카락이나 폐경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은 왜 늙는가?」가 아니라 「인간은 왜 그토록 오래 사는가?」를 물어야 한다』그런가 하면 미 아이다호대학의 비교동물학자 인 스티븐 오스태드 박사는 다른 연구자들과 달리 이른바 「갈변증」(褐變症·Browning)에 주목한다.
이는 어떤 식으로든 산소 전달계가 손상돼 당(糖) 분자가 서서히 몸속에 축적되면서 단백질에 고착되고, 결국 세포의 전반적 인 기능을 저하시킴으로써 노화를 초래한다는 이론이다.
인간의 수명이나 노화에 관한 한 이론이 모자랐던 시대는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세포」, 혹은 「아(亞) 세포」 수준에서 노화의 비밀을 탐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전자 분석 기술, 분자생물학, 생화학 등 현대 과학의 놀라운 발전 덕택이다.
그럼에도 이 분야의 공감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노화에 대한 대부분의 이론이 분자 수준에 집중돼 있 기 때문이다. 노화가 DNA나 단백질, 미토콘드리아, 치료 메커니즘, 단백질 등의 손상에서 비롯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이를 종합할 수 있는 이론은 아직 요원한 형편이다.
개런트 박사는 『종합적이고 통일적인 노화 이론이 언제 나올지, 또 거기에 몇가지 메커니즘이 실제로 개입되어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 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답이 무엇이든간에 분명한 것은 비교적 이른 시일 안에, 아마도 다음 10년 안에, 노화의 비밀이 밝혀지 리라는 사실이다』김상현 기자